mas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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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르다르, 들었어? 푸른 매의 히라이드가 아드리나를 좋아한대. 벌써 우리 중 절반은 알고 있을 걸. 사르다르는 잠자코 듣다가 되물었다. 어느 아드리나?

 바람거미의 아드리나. 사르다르의 시큰둥한 반응이 비난처럼 느껴졌던 건지 도도나는 변명처럼 덧붙였다. 놀리려고 꺼낸 말은 아니었어. 그냥, 언젠가 걔네 둘이 결혼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런 기분이 뭔지 궁금했거든.

 사르다르는 수평선을 응시했다. 뭐, 둘만 좋다면 결혼하는 거지. 그는 바람거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우리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청혼을 하게 되려나.”

 “글쎄, 모르지.”

 사르다르가 꿩을 세며 대답했다.

 “우리 중 하나를 좋아하게 된다니, 상상이 잘 안가.”

 “음, 그것도 모르는 일이지.”

 도도나는 벌렁 모래 위에 드러누웠다.

 “난 누구랑 결혼하게 될까?”

 “오아시스에 물어보는 건?”

 흔한 주술이었다. 태양이 하늘 꼭대기에 정확히 걸렸을 때 나무 아래 흙을 한 줌 집어다 오아시스에 뿌리고, 물이 다시 깨끗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얼굴을 비추면 되는 것이다. 아무도 깨지 않은 낮이어야 한다는 점이 조금 까다로운 조건이기는 했지만, 어떤 아이들은 정말로 성공했다고, 그래서 수면에 비친 다른 누군가의 얼굴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그렇게까지 궁금하지는 않아.” 도도나는 질색하다가 되물었다. “넌 해본 적 있어?”

 “아니.” 사르다르는 어깨를 으쓱였다. “조건이 까다롭잖아.”

 “그건 그래.” 도도나는 콧잔등을 찡긋거렸다. “우리 중 하나랑 결혼한다면 누가 좋을까?”

 “글쎄….” 사르다르는 꿩을 전부 셌다. “이다이라?”

 도도나가 벌떡 일어났다.

 “뭐?!”

 “예쁘잖아.”

 사르다르는 모래를 털며 일어났다.

 “스물일곱 마리 전부 있으니까 이제 돌아가자.”

 다음 날 사르다르가 일어났더니 마을 아이들 절반이 그가 이다이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실 확인 차 찾아온 몇몇 아이들은 비장한 표정이었다. 사르다르는 부정 대신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고, 며칠 뒤 이스니야의 모든 아이들-심지어는 일부 어른들까지도 사르다르가 이다이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루는 한낮에 일어나 노나임을 짜고 있으니, 누워서 잠을 자던 사르다르의 어머니 자드나가 웅얼거리며 물었다.

 “이다를 좋아한다며?”

 “음, 네.”

 사르다르가 입으로 직접 인정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고백했니?”

 “아뇨.”

 “그럼 이미 늦은 것 같구나.”

 자드나가 하품하며 말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잖니….”

 실을 너무 잡아당기고 있어. 사르다르는 생각했다. 여길 잡아당겨도 다른 실이 딸려올 것 같지는 않았는데, 아니었네. 다 엮여 있는 부분이었구나. 하지만 그는 실을 끊어버리는 대신 손에서 놓아버렸다. 노나임을 망친 사르다르는 자드나를 바라보았다. 그새 잠에 빠져든 자드나는 몸을 뒤척이며 긴 숨을 내쉬고 있었다.

 다음 날 계시처럼 이다이라가 찾아왔다. 물 항아리를 얹은 채였다. 무릎을 조금 굽히고, 한 손으로는 항아리의 손잡이를, 다른 한 손으로 카프탄의 끝자락을 들어 올리더니 중심을 잡으며 천천히 항아리를 내려놓았다. 찰랑이는 물소리가 들렸지만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이다이라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침착했고, 사르다르는 엉망으로 꼬인 노나임을 떠올렸다.

 “안녕, 이다이라.”

 사르다르가 인사했다.

 “안녕, 사르다르.”

 이다이라는 사르다르를 바라보았다.

 “할 말이 있어서.”

 어쨌든 자드나가 사르다르에게 충고하는 대부분의 일은 들어맞는다. 관계에 관한 문제라면 말할 것도 없다. 사르다르는 돌아서는 이다이라에게 나중에 보자고 대답했다. 이다이라의 옷자락이 모래에 끌려 희미한 흔적을 남기고 있었고, 사르다르는 그것을 쫓는 대신 반대 방향으로 걸어 나갔다.

 떠들썩하던 소문은 금방 잠잠해졌다. 아이들은 평상시처럼 맥 빠진 표정으로 “어, 그래. 난 이다이라를 좋아하지.”라고 대답하는 사르다르에게 오히려 질린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다가 그만두는 건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었으므로 아이들은 이다이라에 대한 사르다르의 기호가 그의 표정처럼 흐지부지 되었다고 결론 내렸다. 이다이라와 나란히 서있기만 해도 엄숙한 얼굴로 사르다르의 표정을 감시하던 마지막 아이까지 뿔뿔이 흩어지자, 사르다르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이다이라에게 말했다. “끝난 모양이야.”

 그 뒤에도 사르다르와 이다이라는 예전과 다를 것 없이 지냈다. 어느 순간에는 이다이라조차 사르다르가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구만 구천 걸음의 날에도 다를 바는 없었다. 마주쳤을 때에도 처음 만났을 때처럼, 혹은 거절하고 거절받은 날처럼, 혹은 그 뒤의 나날들처럼 “안녕”하고 서로 인사를 건넸다. 이다이라는 물 항아리 대신 짐을 이고 있었고, 그녀가 걸어온 길에는 옷에 끌린 모래 위에 희미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두 사람은 보따리 틈에 짐을 끼워놓고 탑을 쌓기 위해 오아시스를 빙 돌았다. 호수를 반 바퀴쯤 돌았을 때 이다이라가 걸음을 멈추었다. “저게 뭐지?”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경사진 길을 매끄러운 자세로 내려갔다.

 이다이라가 발견한 것은 오아시스 가장자리 한 구석의 움푹 파인 발자국이었다. 그 일대에 뿌옇게 흙이 올라와 수면이 자욱했다. 누군가가 삶을 걸고 마음을 빼앗기게 될 얼굴에 대한 질문을 던지다 말고 포기해버린 흔적이었다. 뒤따라 내려온 사르다르는 발자국을 살폈으나 오르막길에서 느닷없이 뚝 끊어져 시선으로는 추적할 수가 없었다. 사르다르는 이다이라에게 주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봤을까?”

 이다이라는 무릎을 접고 앉아 심각하게 수면을 들여다보았다.

 “음, 흙이 가라앉기 전에 떠났으니까 못 봤을 걸.”

 “우리 소리를 들었나봐.” 이다이라가 진지하게 의견을 내놓았다. “누군가 깨어있으니까 어차피 못 볼 거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사르다르는 이다이라의 옆에 서서 수면을 내려다보았다. 흙이 가라앉고 있었다. 수면이 점점 투명해지는 동안 바람이 불었다. 물 위로 부서지는 수십 개의 빛들이 찰랑이며 땅과 부딪쳐 흩어졌다. 이다이라처럼 마음을 편안하고 충만하게 하는 적요한 평화였다. 사르다르는 깨끗한 수면 위로 떠오른 이다이라의 얼굴을 보았다. 이다이라의 보랏빛 눈이 스스로를 바라보다 말고 사르다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순간 움찔거렸다. 이다이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자.”

 사르다르는 뽀얗게 먼지가 묻은 이다이라의 카프탄 끝자락을 내려다보면서 대답했다.

 “그래.”

 화들짝 놀라거나 얼굴을 붉히며 우물쭈물해야하나? 그건 어쩐지 이다이라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다. 모래 위 희미한 한 줄기의 자국처럼 남아서 사르다르를 그 안으로 이끄는 것이 있다. 마음을 어떠한 태도로 다루고 말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라면 이다이라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걸어들어간다면 좋을 것이다. 탑을 쌓고 집으로 돌아가서 노나임을 짜야겠다고 사르다르는 생각했다. 꼬인 실을 풀고 원래 계획했던 문양을 짜 넣는 일이다. 그 문양을 포기하겠다고 생각한 적 없었다. 그는 실을 끊지 않았다.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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