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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흑의 시대가 있었다. 크고 작은 국가들이 건국되거나 멸망하였으며, 무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중세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시대다. 사료가 희박하고, 사건 간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은 더없이 까다로우며, 역사적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은 캄캄한 밤을 등불 없이 헤매는 일과 같다. 암흑의 시대라는 것은 야만과 몰지성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중세의 시대적 배경을 꼬집는 것 이상으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중세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면서 학계의 조명을 받은 고대국가는 단연 이베르타다.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을 치르고, 가장 짧은 통일시기를 누린 것으로 알려진 이 고대국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중세 국가를 통틀어 가장 많은 기록물을 남겼다. 시대를 앞서 걸어온 천재가 함께 하였기 때문이다. 황금별. 이베르타에는 그 자신의 역사와 시간의 흐름을 낱낱이 포착하고 증명하고 고발하고 기록할 황금별이 있었다.

 오셀로 C.카르스텐(Before Esther.4(?)~Esther.26(?))은 이베르타의 중세를 대표하는 유일무이한 천재다. 그는 화가이자 극작가, 발명가, 건축가, 조각가, 식물학자, 해부학자, 도시 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 조선공이었다. 호기심이 많고 창조적인 인간이었으며, 어려서부터 세상만물을 사랑하고 관찰할 줄 알았다. 그는 종전 직전에 출생, 귀족 카르스텐 가문의 사생아였으나 그 재능을 인정받아 본적에 들었고, 후원을 받기 시작하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는 에스더라고 불리는 이베르타의 짧은 전성기를 누렸으며, 격동의 시대였던 중세의 변화 그 자체를 대표하는 인물로 남았다. 또한 그는 중세 최초로 금성을 관측하고 기록을 남긴 인물로서 이베르타의 황금별로 불리고 있기도 한다.

 오셀로 C.카르스텐의 대표적 저서로는 총 7권의 분량에 달하는 해부학서적이 있다. 나란히 쌓아두면 그 높이가 성인 남성의 평균 키를 압도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생가에 남겨진 후술 자료를 포함하면 그 무게가 72.6kg에 육박한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저술된 내용이 단순 해부학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저서에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초의 효능과 섭취·제조 방법, 이베르타 전역의 지리와 그에 따른 민간 생활양식, 지역에 따른 진단법, 부상의 경도를 다섯 단계로 나누어 만든 응급치료법, 외과시술의 성공과 실패의 기록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7권의 저서는 중세시대에 막 싹트기 시작했던 의학의 발상을 총망라하는 집성체이자 근대의학의 기초가 되는 뿌리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저서에 기록된 방대한 의학지식들이 민간으로 전파되어 오늘날까지 다양하게 쓰이고 있으며, 실제 에스더 시대 이후의 많은 이들이 남겨진 민간의학을 통해 목숨을 구했다. 그가 해부학자, 식물학자, 지리학자로 불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저서에는 많은 설이 잇따른다. 오셀로 C.카르스텐의 짧은 생애의 대부분은 동부에 위치한 파멜라 항만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타지생활은 서른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 전 2년 간 북부 산맥의 작은 마을에 거주한 것이 유일하다. 이베르타 전역은 물론 국경선 너머의 고산지대, 바다 건너의 동방국가의 기록물을 포함하고 있는 저서를 기록하기에 그가 가진 전생全生의 반경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좁은 것이다. 오셀로 C.카르스텐 역시 서두에 밝히고 있듯, 실제 본 저서 대부분의 초안을 작성했을 중요한 조력자가 있었다. 그리고 이 조력자의 존재는 오랜 시간 학계의 주요 연구대상이었다. 사료가 풍부하고, 사건 간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비교적 용이하며,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 역시 고되지 않았던 이베르타의 황금별의 일생이 우리에게 남긴 유일한 암흑이 있다면 바로 이 조력자의 존재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중세가 낳은 천재 오셀로 C.카르스텐의 생애가 암흑의 시대로 불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그 자신의 생애로 시대 그 자체를 증명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암흑 속에서 등불을 들었으니. 우리의 임무는 그가 생애 곳곳에 남긴 기록의 조각을 모아 조력자의 퍼즐을 완성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을 우리 모두가 알게 되었을 때, 어두컴컴한 길을 걸어 나갔던 그가 앞서서 걸어놓은 등불들이 일제히 타오르고, 문 앞에 선 누군가가 고개를 돌릴 것이며, 마침내 시대는 새벽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곳에 새벽의 시대가 있었노라고 우리 모두가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시대를 기다리던 유일무이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위하여.

 이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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