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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진명이 교사가 된 것은 그녀가 스물아홉이 되던 봄의 일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진명은 선배들이 운운하던 첫 발령지의 불운-“첫 발령지에 좋은 학교에 가는 건 글러먹은 일이다”-에 대해 고려해본 적이 없었다. 당시 진명은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좋은 학교는 학생과 교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후 진명은 일산 변두리에 위치한 공장 단지 부근의 남자 고등학교(학교폭력 문제로 빈번이 시끄럽던 학교였다)로 첫 발령을 받게 되는데, 이로써 선배들이 말한 첫 발령지의 불운은 어느 정도 증명이 된 셈이다. 훗날 동료 교사는 그녀의 발령지를 두고 “그곳은 최악의 공간이었다.” 라 말하기도 했다. 당시 임산부였던 진명의 건강을 염려한 남편 이준호 씨는 그녀에게 공기청정기를 선물했는데, 이를 두고 최진명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녀가 걱정한 것은 일산 공단의 탁한 공기가 아니라 음울한 학교의 분위기였다. 발령지에 근무하기 시작한 진명은 일기장에 자주 이런 문장을 썼다. ‘나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몇 달 뒤 최진명은 한 언론 사이트에 인터뷰를 요청했고, 포털 사이트에서 몰매를 맞으며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게 된다. 동료 교사는 교직에 있던 시절 진명이 불안 증세를 자주 보였다고 증언했다.
 남편 이준호는 그녀의 사건이 공론화되기 전까지 그녀가 겪고 있던 성희롱과 성추행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진술했지만, 그녀의 일기장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이내 진술을 번복하고 일부 사태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고 시인했다. 그가 부인한 일기장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배는 나를 방치하고 있다.’ ‘선배가 나를 바닥에 밀치고 고함을 질렀을 때, 나는 이 남자 앞에서 다시는 울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준호 씨는 진명이 교직을 그만 둔 6월 진명으로부터 이혼 통보를 받았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진명의 교직 생활이 그녀의 유산에 치명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던 P모군은 진명이 자신을 도우려다 일이 잘못된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 애들은 수업 시간이면 선생님에게 그렇게 하고, 쉬는 시간이면 나한테 그렇게 했어요. 선생님이 하지 말라고만 하니까 애들이 재미있다고 더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 더러운 말들이죠. 난 주먹으로 두들겨 맞았지만 선생님은 말로 두들겨 맞은 거예요.” 당시 인터넷을 떠돌던 영상 안에서, 진명은 집단 린치를 당하고 있던 P모군에게 달려가다 말고 한 학생에게 머리채를 붙잡혀 바닥으로 쓰러진다. 그 이후 영상은 끊어졌다가 편집된 장면부터 이어지는데, 그녀가 린치의 주동자 학생으로 추측되는 검은색 파카의 뺨을 강하게 내려치는 장면은 각종 커뮤니티 내에 캡처 화면으로 올라가 다음과 같은 제목이 붙었다. ‘대한민국 학생 인권의 현실.’ 모자이크 처리된 진명의 얼굴은 SNS 내에서 신상 털이로 이어졌으며, 진명은 두 달 동안 총 세 차례 휴대폰을 교체해야만 했다. 그녀는 우울증과 함께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당시 진명이 쓴 일기장의 내용을 보면 환청에도 시달리고 있었던 듯하다. 다음은 일기의 전문이다. ‘밤마다 내 휴대폰으로 카톡과 문자가 밀려드는 상상을 한다. 나는 그들을 모르지만 그들은 나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눈치다. 휴대폰을 바꾸었지만, 그런 문자와 카톡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오늘 받은 문자에서 34로 시작하는 번호는 나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고 협박했다. 어떤 문자들은 현실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몇 주 전에는 웬 어린 학생들이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고 웃음을 터뜨렸다. 삼십분 동안 두려움에 떨었다. 선배에게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학교 측은 진명이 받은 모든 정신적 물리적 피해를 부정했다. “교사 하나의 문제를 들고 저희 측에 뭘 요구하시면 저희도 곤란합니다……(이하 생략) 애들이 가해자라니요. 보복성 린치죠. 학교 폭력 운운하면서 한 아일 과하게 감싸주니까 사태가 커진 겁니다. 듣자하니 가해자 학생들을 대놓고 차별하기도 했다더군요. 수업 시간에 질문해도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고.” 학교 측은 실제로 사건이 공론화 되자 가장 먼저 나서 비슷한 진술의 인터뷰를 수차례 한 전적이 있다. 왜곡된 기사가 포털 사이트에 올라가자 누리꾼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녀를 물어뜯었다. 가해자 학생 측과 학교 측은 사건을 은폐하고자 동영상을 철저하게 이용했다. 카페와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동영상(문제의 2분 21초)캡처본이 떠돌아 다녔고 여론은 분노로 물들었다. 교사로부터 학교 폭력을 경험했다는 피해자 학생들의 회고록이 이어지며 댓글 창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모 SNS 상에는 해시태그를 이용한 학교 폭력 근절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진명의 행동을 지탄하고 있었다. 몇 달 후 한 케이블이 짧게 교사 최진명과 학교 내에서 벌어졌던 성희롱과 학교 폭력에 대한 진상 규명을 다루었고 두 차례의 정정 기사가 떴지만, 며칠 후 터진 연예인 세금 비리로 인해 큰 조명을 받지 못 했다. 교사 최진명을 죽인 사건은 그렇게 잊혀졌다.
 ‘사람의 존재가 아 걔? 로 압축되는 순간, 누군가는 기꺼이 죽을 결심을 할 수 있다.’ (최진명 일기장 발췌) 그 이후의 그녀의 행적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남편은 진명이 이혼 이후 자신의 연락을 받아주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카카오톡도 안 받고 번호도 자주 바꿔서 연락할 방도가 없었어요.” 아직 진명에게 미련이 남아 있던 진호는 진명의 지인들에게 그녀의 행방을 추적했다고 하는데, 진명의 마지막 바깥 행적은 산부인과에서 끊겨있었다. 진호는 착잡한 목소리로 고했다. “유산이었어요.” 가을, 임신 4개월 차의 일이었다. 그러나 진명이 교단을 내려온 데에는 좀 더 복합적인 이유가 존재했던 것 같다. 최진명 사건에 대한 정정기사가 뜨던 날, 진명은 해당 기사를 일기장에 스크랩한 후 아래에 이렇게 썼다. ‘짐을 정리하던 날 편형이 나를 찾아와 고백했다. 선생님, 죄송해요. 그 동영상 제가 올렸어요. 그 말을 듣는데 무어라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편형이가 엉엉 울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맞을까 봐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 올렸다는 그 아이한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여기서 편형은 학교 폭력 피해자 P모군이다) 각종 기사와 언론 물타기로 몰매를 맞으면서까지 보호하려 들었던 피해자 학생이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린 동영상의 최초유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진명은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놀랄 만큼 평화로웠다. -고 진명은 당시 심정을 이렇게 서술했다. ‘약을 사기 위해 총 다섯 군데의 약국을 돌아다녔다. 살고 싶다는 생각은 마지막까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흘끔거리는 것 같았다. 누군가 돌을 던지면, 맞아서 그대로 죽어버려야지.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약국을 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진명은 한 전시회장을 보게 된다. 아마추어 작가들이 활동하는 작은 미술의 집이었다. 진명이 그곳을 방문한 것은 충동적인 행동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진명의 생을 연장시키는 계기가 된다. 진명은 전시회장에 걸린 캔버스에서 붉고 아름다운 행성 하나를 목격한다. 호주머니엔 학창시절부터 진명이 즐겨 들고 다니던 워크맨이 들어 있었고 그 안에는 비틀즈의 Let it be가 녹음된 테이프가 있었다. 아름다운 음악과 아름다운 그림만으로 감화되기에 그녀는 너무 지쳐있었지만 진명은 비틀즈가 부르는 “그냥 내버려 두세요”를 들으며 죽음 대신 삶을 선택하기로 결심한다. 진명은 돌아오는 길에 약을 쓰레기통에 쏟아버리고 거실에 앉아 TV를 틀었다. ‘몇 달 만에 듣는 외부의 소리들을 받아들이느라 나는 뉴스 내내 진땀을 뺐다. 어딘가에는 분명 내 이름이 존재할 것 같았는데, 세상은 내게 관심이 없었다. 정치인 둘이 뇌물을 받아먹었다고 한다. 뉴스를 껐을 때 몸은 땀으로 온통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나는 샤워를 했다.’ 진명은 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냉장고에서 차가운 우유를 쉬지 않고 마셨다. 차가운 기운은 진명의 곤두선 기운을 조금 달래주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던 진명은 다시 TV앞으로 돌아와 쉬지 않고 채널을 돌아가며 모든 방송을 시청한다. 멈출 수 없었고 멈춰서도 안 되었다. 진명의 모든 트라우마가 그곳에 있었고 마침내 진명은 다시 그것을 마주했기에 버릴 수 없었다. 진명은 그렇게 며칠 내내 TV앞에 매달려 모든 채널과 방송을 섭렵한다. ‘놀랍게도 세상은 나에게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살아남으면 잊혀 질 권리를 얻는 것인가를 고민했다. 내가 돌에 맞았다는 것조차 잊은 그들은 저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건배를 하고 세상사를 읊고 웃고 떠들고 사랑하고 증오한다.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무감한 세상을 목도하며 진명은 억울함을 느꼈지만 동시에 안도했고, 마침내는 인정했다. ‘나는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세상은 어딘가 잘못되었다.’ 진명의 'Let it be'가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대규모 화성 이주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3년 쯤 지났을 무렵 혜성같이 등장한 환상 야구는 당시 진명이 죽음과 생의 경계에서 고민을 거듭할 무렵 대한민국을 강타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스포츠에 완벽한 문외한이었던 진명이 환상 야구를 접한 것은 순전히 이런 까닭에서였다. 전투적으로 TV채널을 시청하던 진명은 모든 뉴스와 스포츠 채널이 하나의 종목만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지금 화성의 전파 상태가 좋지 않아 화면이 종종 끊어지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라는 하단의 안내 메시지는 진명이 일전에 마주한 붉고 아름다운 행성 그림 하나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허공을 향해 달리는 야구선수의 표정이 클로즈업될 때, 진명은 완전히 그 경기에 매료되어 있었다.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그는 환상야구 시즌제 리그에서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장면 중 하나인 ‘허공의 사나이’를 종종 연출하기로 유명한 환상야구단 프로 선수였고, 이 장면은 진명이 화성 여행을 가기로 결심하는 아주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환상 야구는 분명 보통 야구와는 다르다. 장면 하나하나를 보기에도 이를 그냥 야구라고만 명명하기엔 크나큰 실례다. 사람들은 분명 그래서 환상, 이라는 말을 붙였겠지. 중력과 맞서 날아오르는 청년들이 느릿느릿 던져지는 공을 쫓는다. 그들은 경기장 일부에 도달해선 또다시 뒤바뀐 중력 때문에 쏜살같이 튀어나갈 공의 운명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허공의 마임을 향해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날린다. 아무도 그들을 우습다고 말하지 않는다. 환상야구란, 단단하고 작은 무언가를 위해 자신을 짓누르는 힘과 끊임없이 싸우는 모든 삶들의 대변이다.’ 경기가 끝나자 진명은 컴퓨터 앞으로 기어가 환상 야구 시즌별 경기 날짜를 확인한 후 여행 일정을 짰다. 화성 급행열차 티켓은 왕복 130만원이었다. 미국 비행기 왕복 표 값이군, 진명은 결제 버튼을 누르며 그렇게 생각했다.
 
 2.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지구 정류장으로 떠나는 날 진명은 전 남편 이준호에게 전화를 건다. 오 개월만의 일이었다. “선배, 나 좀 양평까지 태워주라.” 그는 깜짝 놀라 “어디를 데려다 달라고?” 라고 되물었지만 진명은 두 번 대답하지 않았다. 한겨울을 관통하던 날씨는 산속에 도착했을 때 절정에 치달았다. 벌벌 떨며 발가락을 오므리는 진명의 하이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준호는 “신발 줄까?” 하고 머리를 긁적였다. “담배나 한 갑 주라.” 진명은 대답했다. “네가 담배도 폈니?” “그렇게 되었어.” 진호는 근처 편의점까지 직접 뛰어 담배 한 보루를 사왔지만, 진명은 한 갑만 받아들고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내렸다. “진명아, 연락해!” 다시 대학 선배로 되돌아 온 준호는 진명의 등 뒤에 대고 그렇게 외쳤다. 진명은 손을 흔들지 않았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있을 무렵 진명은 문득 담배가 피우고 싶었지만 그렇게 해서는 아무 것도 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나는 유산 이후 베란다에서 내내 담배를 피웠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연기를 마셨다간 빼도 박도 못 하게 인정해야만 할 것 같았다. 내가 도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진명은 일기에 짧게 기록한 뒤 기둥 근처 의자에 늘어졌고, 핸드백에서 시집을 꺼내들었다. 우울을 달래기 위해 최진명이 삶을 거치는 동안 발굴한 몇 가지 방법이 있다면 하나는 흡연이었고 하나는 시집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변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에 진명은 그냥 마음으로 문장을 새겨 넣기로 결심했다. 그 애는/우리, 라는 말을 저 멀리 밀쳐놓았다/죽지 못해 사는 그 애의 하루하루가/죽음을 능가하고 있었다……. 시는 아름다웠고 삶은 계속되는 중이었다. 히터 바람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진명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 말을 건 누군가가 없었다면 진명은 바닥에 엎어졌을 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그런 시를 놔두고 졸고 계시다니요.”
 졸음에서 벗어난 진명이 고개를 드니 거기엔 한 명의 청년이 있었다. 마스크를 끼고 있었고 눈매는 담백했다. 끼고 있는 안경테는 얇았다. 진명은 벌어진 다리를 오므리곤 옷매무새를 갈무리했고 어색하게 웃었다.
 “……피곤해서요.”
 “이소연 시인 좋죠.”
 청년은 시인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진명은 동의를 표했다.
 “네, 좋죠. 아직 반도 못 읽었지만.”
 “졸고 계셨으니까요.”
 청년의 말에 무안해진 진명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화성으로 가시나요.”
 “예, 화성 갑니다.”
 진명은 대답하는 청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학생이신가 봐요.”
 “휴학생이에요. 바로 알아보시네요.”
 “그 나이 대는 보통 대학을 다니고 있으니까요.”
 여기까지 말한 진명은, 시선을 내리깔았다가 덧붙였다.
 “사실 교사였거든요.”
 청년은 예리했다.
 “과거형이시네요.”
 “네, 지금은 쉬고 있습니다.”
 “비슷한 처지네요.”
 “네, 비슷한 처지죠.”
 둘은 그 이후에도 시시콜콜한 몇 가지 대화들-시집과 가방에 대한 것-을 주고받았다. 진명은 청년에게 조금의 친밀감을 느꼈고, 청년이 통성명을 제안했을 때 순순히 “최진명 입니다.” 라고 말해주었다.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이제 일어나봐야 해요.”
 아쉬움 없이 진명은 그에게 “열차에서 봬요.” 라 인사했다. 청년 역시 뒤를 돌아보지 않았는데, 그래서 이 관계는 더욱 깔끔하고 괜찮은 것으로 느껴졌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 둘은 서로의 관계가 이것보다는 좀 더 복잡했음을 알게 되지만 당시 진명은 그 청년의 까만 캔버스 운동화를 보면서도 아무 것도 떠올리지 못 했기 때문에 그를 잡지 않았다. 후에 말하기를, 이 청년이 “배차현”이다.
 화성 행 급행열차가 대기권을 돌파할 때 기차는 아주 심하게 흔들렸다. 진명은 침대 위에 얹어둔 캐리어가 머리 위로 떨어지진 않을까 걱정하느라 아무 것도 하지 못 했다. 열차는 10여분 정도 그렇게 흔들리다가 갑자기 돌변해 완벽하게 평화로워졌다. 궤도를 잡은 열차는 매끄럽게 허공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흔들림이 없을 것이란 확신이 서자 진명은 객실 바깥으로 나왔다. 열차 내에는 작은 식당과 편의 시설이 있었다. 커피를 주문한 진명은 창밖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우주를 바라보았다. 아름답고 눈물겨우며 놀랄 만큼 텅 비어있고 동시에 놀랄 만큼 빼곡하게 들어 찬 그 까만 공간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은 진명을 꽤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지 않아서 지금까지는 다행히도 괜찮았다.’ 진명은 객실에 돌아와 이런 문장을 쓴 뒤, 전 남편에게 받은 담배 한 갑을 들고 흡연실로 향했다. 거기엔 “배차현” 이 있었다.
 “진명 씨, 담배 피우시네요.”
 그렇게 말하며 차현은 우주가 흐르는 창가를 바라보았다. 진명은 연기를 뱉으며 캄캄한 베란다를 떠올렸다.
 “얼마 안 되었어요. 일 년?”
 “초심자시네요.”
 “초심자랄 것까지 있나요.”
 “전 대학 들어가서 폈는데.”
 차현은 씁쓸하게 덧붙였다.
 “이상은 너무 쉽게 무너지네요.”
 진명은 배차현이란 청년이 가진 이상이 무엇일까 고민해보았지만 아무 것도 짐작할 수 없었고 또 시도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녀는 누군가를 짐작하는 일이 그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Let it be' 가 알려준 세상사란 아주 단순했다. ‘그냥 내버려 두세요.’ 누군가 집단 린치를 당해도, 누군가 그녀의 엉덩이를 좀 더듬어도, 누군가 그녀를 향해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고 손가락질을 해도 ‘Let it be’ 하다보면 세상은 곧 그녀에게 흥미를 잃었다. 진명은 배차현에게 자신의 ‘Let it be'를 적용시키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진명은 이렇게 대답했다.
 “원래 이상은 이상으로 남아서 이상인 거고, 그런 거죠.”
 차현은 진명을 보며 담담하고 옅게 웃었고, 대답 대신 담배 연기를 뱉었다. 희미한 시야 속에서 이상하게도 진명은 그 순간 한 학생을 떠올렸는데, 공교롭게도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다. 가물가물했지만 그 애는 아름다운 언어에 감탄하는 재능이 있었다. 그 애가 시를 쓰겠다고 영어 과외를 그만두기 전까지 진명은 주일에 한 번 영시를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방금 문장 뭐에요?”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그 애는 꼭 지나치지 않고 진명에게 그렇게 되물었다. 이따금 시집을 빌려가기도 했는데, 진명이 마지막으로 읽어주었던 구절은 이것이다. “이 두려움 떠는 침상 위에 / 찬란한 빛이 비치게 하라.” 에밀리 디킨슨의 시였다. 그 애가 그 시집을 빌려간 후 영영 되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진명은 그를 ‘시를 쓰기 위해 홀연히 사라진 이상의 아이’로 종종 회고하곤 했다. 진명이 배차현과 그 애를 연관시킨 건 순전히 그 애가 가진 ‘이상’이 떠올라서였다. 진명은 웃음이 나와 고개를 숙였고 차현은 고개를 기울였다.
 “왜 웃으세요.”
 “그냥…전에 가르치던 제자가 생각이 나서.”
 진명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은 제자는 그 애 하나뿐이었다. 좋은 기억이었지, 하고 진명은 생각했고, 곧이어 참 좋은 시절이었어, 라고 생각했다. 차현이 “그러고 보니 저도 고1때 영어 과외를 받았었죠.” 라고 하지 않았다면, 그 애는 진명의 오랜 시절 전으로 사라졌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일은 벌어졌고 차현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가르치던 쌤이…시를 읽어줬었거든요. 다른 건 몰라도 그래서 시는 되게 기억에 많이 남네요. 시집 빌렸던 거 하나 못 돌려줬었는데 제가 중간에 그만둬서…….” 진중하게 이야기를 듣던 진명의 표정은 시집에 이르러 묘하게 변했다. 진명의 시선이 꼼꼼하게 청년의 얼굴을 더듬기 시작하자 차현은 왜 그러냐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진명은 작게 웃으며 기둥에 기대섰다. “차현 씨.” 라고 진명은 그를 불렀고, 한 번 더 웃었다.
 “에밀리 디킨슨 좋아해요?”
 “아.”
 “맞죠.”
 이 기묘한 7년 만의 재회에 대해, 진명은 이렇게 썼다. ‘에밀리 디킨슨 좋아해요, 라는 말로 이어질 수 있는 인연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찬탄한다. 어쩌면 나는 그를 다시 만나기 위해 이 열차에 오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내가 쫓던 야구공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단언컨대 그 애와 보냈던 짧은 계절은 내 인생 가장 찬란한 순간을 관통하고 있었다.’
 
 3.
 진명과 차현은 그 뒤에도 종종 객실 복도에서 마주쳤다. 지구에서 화성까진 이주일 반이 걸렸고 정거장은 세 개나 남아 있었다. 차현은 진명이 오래 전 어물어물 헤어진 과외 선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 그녀를 “선생님”이라 불렀지만 진명은 여전히 그를 “차현 씨”라 불렀다. 차현에게 “선생님”으로 불릴 때마다 진명은 묘한 기분에 휩싸였는데, 정작 그녀는 교단 위에서 제대로 “선생님”이라 불린 기억이 거의 없는 까닭이었다. 아무튼 그리하여 진명과 차현은 종종 커피를 마시는 사이가 되었고 7년 만에 재회한 7년 터울의 친구 비슷한 관계가 되었다. 진명과 차현에게는 서로가 가진 선과 거리감이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틈이 둘 사이를 친구로 묶어주는 것 같았다”고 당시 함께 열차에 탑승한 승객 하나는 진술했다. 진명은 그 틈에서 안정감을 느꼈기 때문에 배차현에게 느끼던 개인적인 호감을 묵살해버린다. 이는 진명이 인생에서 택한 최악의 결정이었다고 “최진명 최후에 순간”에 회자된다. 차현은 진명에게 칠 년 전 빌렸던 시집을 돌려주었는데 진명은 받은 이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시집을 제대로 펼쳐보지 않았다. 하지만 차현이 빌려준 시집과 소설은 빠짐없이 읽었고, 마음에 박히는 문장은 일기장에 필사했다. ‘내가 당신 생각을 할 때, 당신도 나를 생각할까 / 아니겠지 / 아닐 것이다 /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막막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설 속 나의 이름은 고작 / '너를 앓으며 사랑했던 소년 1'이었다.’ ‘비겁하게도 나는 사랑에도 행복에도 한 걸음 물러나 비켜서고 싶었다.’ ‘그러나 그 잃어버린 것은 우연처럼 되돌아와 거대한 바다를 뒤엎는 해일처럼 한순간 삶을 송두리 채 뒤흔들어 놓는다.’ 어느 순간부터 진명은 자신이 쓰는 모든 구절과 문장이 사랑과 통증을 수반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지만, 그녀는 시인도 소설가도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를 관통하고 무참하게 학살할 문장들은 이 세상에 무수했다. 진명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매일 밤 개인 객실에 길게 누워 진명은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나쁘지 않았다. 따스했다. 최진명은 그렇게 천천히 자신을 살해해갔다.
 칠천만 킬로미터를 횡단하는 열차 위에서 승객들은 우주를 목도하며 자신들이 아주 작은 존재라는 것을 거듭하여 깨달았다. 진명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종종 우주에 대한 생각을 일기장에 썼다. ‘이런 곳에선 Let it be를 외친다한들 모든 사건들이 너무나도 외롭고 사소한 일이 되어버릴 것이다.’ 어리석은 진명은 그 때 자신이 더는 ‘Let it be’를 말해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지만, 그러지 못 했다. 진명은 차현을 그렇게 내버려두었다. 커피를 마실 때에도, 담배를 피울 때에도, 복도에서 젖은 머리카락으로 마주칠 때에도, 그렇게, 차현은 성실한 청년으로 남았으며 진명은 나태한 독자로 남았다. 진명은 그것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K-20은 달 정거장 다음으로 존재하는 인공 행성이다. 자동차를 연구하고 제조하는 공장 연구 단지가 존재하고, 행성 전체가 도로로 덮여있다. 상주인구는 없지만 연구소 직원들은 종종 이곳에서 밤을 샜다. 작은 행성이기 때문에 계절은 하나뿐이었고, 도로를 달릴 때마다 기온은 조금씩 변했다. 눈 쌓인 타이가 숲을 달리다 보면 펼쳐지는 오로라가 장관이라 자동차 CF에는 종종 K-20이 등장했다. 진명이 열차에서 내렸을 때 차현은 근처에서 외투를 싸매고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명이 차 키를 대여한 것은 아주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차현 씨, 오로라를 보러 갈래요?” 진명이 물었고, 차현은 “그래요.” 라고 대답했다. 우습게도 그 때 하늘엔 아직 오로라가 없었다. 어쨌든 둘은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고, 오픈카였지만 생각보다 춥진 않아서 진명은 속도를 냈다. 조수석에 기댄 채 차현은 별다른 말없이 하늘 위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타이가 숲에 들어서자 하늘 위로는 커튼처럼 떨어지는 빛 무리가 펼쳐졌다. “와.” 차현이 짧게 탄성을 질렀기 때문에 진명은 속도를 늦췄다. ‘나는 그 애가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목격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선명하고 또렷하게, 그 아이는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이 역시도 세계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아이 역시도 알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시를 쓰겠다고 종종 말하곤 했던 걸까.’ 속도를 늦추던 진명은 아예 도로 가장자리에 차를 대곤 좌석을 눕혀 완전히 몸을 젖혔다. 차현이 진명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곧 다시 오로라를 바라보았다. 어둑어둑한 하늘 위로 드리운 초록색 커튼은 곧 노란색으로 일렁이다가 사라지는 듯 앞으로 나아갔다. 춤을 추는 빛은 신이 나있었다. 꼭 노래 같구나, 라고 진명이 생각하는데, 차현이 불쑥, “저건 어쩌면 하늘의 노래일까요.” 라고 물었다. 진명은 몸을 뒤척이다가 눈을 감았다. “그렇겠지.” 진명은 중얼거렸다. “아마도 그렇겠지.” 둘은 그 뒤 말없이 역으로 되돌아 와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4.
 승객들이 화성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열차가 화성의 위성 중 하나인 포보스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간이정거장을 지나쳐야만 했지만 다른 위성인 데이모스 정거장을 지나치고 나면 그들은 덜컥 화성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포보스에는 역 근처에 위치한 작은 술집 하나가 있었는데 명물이었다. 화성에 가기 전 으레 들러 블랙 맥주를 마시는 것이 승객들 사이에선 일종의 관계가 되어 있었다. 비즈니스를 이유로, 야구 경기 관람을 이유로, 관광을 이유로, 죽음을 이유로, 생존을 이유로 이 열차에 탑승한 승객들은 저마다 술렁거렸다. 열차 내에선 음주가 금지되어 있었기에 술을 고파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누군가 “마시자”고 외쳤고, 구호처럼 사람들은 열차에서 뛰어내렸다.
 행성에 내리기 전, 진명은 좌석에 붙은 정거장 안내표를 읽었는데, 거기엔 포보스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다. ‘최고의 맥주를 만드는 주재료를 생산하는 행성.’ 아래엔 자잘한 설명이 붙어있었는데, 진명은 그것보다도 아래에 붙은 경고 표시에 더 눈이 갔다. ‘절대, 마을로 내려가지 마시오.’ 요약하자면 대규모 화성 이성 프로젝트가 진행될 무렵 불법 이주를 시도하다 내쫓긴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지구에 가던 도중 열차에서 무단이탈해 점거한 행성이 포보스라는 것이었는데, 포보스의 대규모 슬럼가는 치안률이 아주 낮고 사실상 치외법권 지역이기 때문에 승객들이 호기심에 내려갔다가 종종 변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슬럼가는 포보스 행성에서 대규모로 재배되는 작물을 팔아 수입을 유지하고 있지만, 생활이 넉넉지 않은 건 매한가지라 승객들의 소지품 도난을 위해 열차에 무단침입을 시도하는 거주자도 더러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것으로 정거장 안내표는 이야기를 끝맺고 있었다. 안내 책자를 다시 의자 사이에 끼워 넣은 진명은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 너머의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은 온통 푸른 어둠이었다. 이 행성의 하늘은 몇 시간이고 늦저녁이었다. 진명은 저만치 떨어진 곳에 빽빽하게 늘어진 판자촌을 보았다. 아주 희미한 불꽃이 일렁이는 슬럼가에는 으스스한 실루엣들이 이따금 스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진명은 객실에 가지런히 정리해둔 차현의 시집들을 떠올렸고, 그들이 이런 책을 가져가진 않겠지만, 만약 가져간다면 몹시 슬픈 일이 될 거라 생각했다. 진명은 포보스를 설명하는 안내 책자를 다시 꺼내들었다. ‘절대, 마을로 내려가지 마시오. 강간, 절도, 도박, 구타, 살해, 실종의 위험이 있음.’ 진명은 두 번째 문장을 아주 오래도록 읽었다. 누워서도 읽었고, 엎드려서도 읽었다. 그리곤 나중에 일기장에 그대로 필사했다. ‘절대, 마을에 내려가지 마시오. 강간, 절도, 도박, 구타, 살해, 실종의 위험이 있음.’
 
 5.
 간이정거장에서 연료를 충전한 열차는 몇 번의 동력 점검을 마친 후 다시 우주를 가르며 출발했다. 포보스에서 잔뜩 취하고 돌아온 승객 하나가 복도에 구토를 했기 때문에 한동안 복도에선 시큼한 냄새가 났다. 로봇 청소기와 공기 청정기는 한동안 진명의 객실 앞을 서성거리며 승객이 뱉어놓은 토사물의 흔적을 치운다고 법석이었다. 진명은 차현을 찾지 않았고 대신 객실에 앉아 차현이 빌려준 시집을 몇 번 더 읽었다. 7년 동안 한 시집을 장기 대출한 전적이 있어서였는지도 몰랐지만, 차현 역시도 꽤 오래도록 진명이 빌려간 시집을 돌려주지 않음에도 먼저 말을 꺼내거나 하진 않았다. 진명은 그것 역시 저와 차현 사이에 존재하는 ‘틈’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이따금 사려 깊지 않은 대담함을 가지길 바란다.’ (진명은 일기장에 이렇게 썼지만, 이 페이지는 후에 진명의 손에 의해 직접 훼손되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착실하게 열차는 나아갔고 곧 데이모스에 도착했다. 화성에 도달하기 전 정차하는 마지막 정거장이었다. 안내 책자를 읽지 않아도 진명은 이 위성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데이모스는 이미 학원도시로 유명한 화성의 작은 위성이었고 승객들 중 일부는 학원도시 입학을 목적으로 한 학생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내내 노을이 지고 있어서 ‘영원한 노을’로도 유명한 위성이었다. 진명이 열차에서 내려 모래사장을 밟고 있을 무렵에도 하늘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 위성의 팔십팔 퍼센트는 물이었고, 나머진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레몬 색 모래사장에선 신 냄새가 났다. 해수욕장 입구 앞에는 뜬금없게도 포장마차가 있었다.
 “처자, 저 물에 뛰어들지 마. 바다에 너무 깊이 들어가지도 말고. 저 안에는 사람 맛을 아는 괴물 물고기들이 살고 있어.”
 어묵 탕을 주문해 홀짝이고 있으니 주인장 되는 아주마니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역이 위치한 해수욕장과 거대한 섬-번듯한 빌딩이 세워진 하나의 도시였다-을 연결하며 바다를 가로지르는 대교를 바라보았다. 다리 아래에 아주 거대하고 시커먼 그림자가 조금씩 수면 위로 솟구쳐 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바람이 불지 않는 이곳은 바다에 파도가 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의 파동이라도 아주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게 그 물고기들인가요?”
 진명이 묻자, 아주마니는 대답했다.
 “애들이 공부하다 미치면 빌딩에서 뛰어 내려. 저 바다 쪽으로. 처음엔 안 그랬는데, 나중엔 시체 건지기가 그렇게 힘들어지더래. 알고 보니 쟤네들이 다 주워 먹더란 거야. 쟤네가 인간 맛을 알게 된 거지. 살아있는 사람도 꿀떡 삼킬지 누가 알아? 비늘 하나가 성인 남자만 하더만.”
 진명은 데이모스 학원 도시의 실태에 대해 떠들어 대던 뉴스와 언론사들을 기억한다. 교사들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수천 명의 학생들만이 그 높은 최첨단의 빌딩에 살고 있다는 기적 같은 학원 도시의 이야기들. 관리자들은 몇 달에 한 번만 빌딩의 유비쿼터스 시스템을 점검하고 모든 수업은 인터넷 강의로 이루어진다. 빌딩의 방 하나하나가 호텔 스위트룸처럼 넓고 아늑했다. 창밖으론 지지 않는 영원한 노을이 있었고 학원 도시 안에는 모든 생필품이 갖춰져 있었다. 부족해질 일도 없었고 차고 넘치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해마다 학생 수십 명이 빌딩에서 몸을 던졌다.
 “왜 그러는 걸까요.”
 진명은 잔잔하고 거대한 바다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학원 도시 섬을 바라보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아주머니는 진명의 빈 그릇을 치웠다.
 “눈 뜨자마자 일어나서 밥 먹고 씻고 공부하다가 다시 밥 먹고 자러가는 게 뭐가 즐겁겠나 싶지. 그래도 졸업장 따면 바로 취직이니까 4월에는 사람들이 또 꾸역꾸역 여기로 몰려와. 아줌마, 여기 좋아요? 그렇게 묻는데 대답을 못 해주지.”
 데이모스 학원도시는 3년을 버티면 졸업 시험을 치르고 자격증을 따면 졸업장을 준다. 특수한 기술을 배우기 때문에 데이모스 학원도시 출신들은 전부 K-20의 연구 단지의 연구원이 되거나 화성 지부에 있는 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된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는 수많은 청년들이 가방으로 매고 이곳으로 몰려든다. “어쩔 수 없잖아요.” 라는 표정을 짓고. 여기서 몇 명은 죽음을 꿈꾸며 살아남고 또 몇 명은 어느 날 불현 듯 이 노을이 너무도 지겨워져 발코니 창문으로 나가 바다로 몸을 던진다. 살아남은 자들의 성공이 TV에 중계되고 또 중계되기 때문에 데이모스 학원도시 내 학생 자살률은 해마다 증가하지만 아무도 손쓰지 않는다. 이 영원한 노을이 지겹다고 몸을 던지는 학생들의 삶을 이해하는 일은 너무나도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세상이 그들을 버리기로 결심했을 때 아름다운 노을은 한없이 지겹게만 느껴지는 것인데도.
 세상이 버리기로 결심한 최진명은 노을의 지겨움을 아는 사람. 그녀는 이곳에 적용된 룰을 한 번에 알아본다.
 “그러니까, 이건 분명…… Let it be 같은 것이군요.”
 아주머니는 동의한다.
 “분명 그런 거겠지.”
 열차로 돌아온 진명은 일기장에 이렇게 쓴다. ‘나는 이 바다에 뛰어들 수 없다. 이 바다는 나의 죽음을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니다. 필연적으로 그런 느낌이 든다. 물고기들이 나를 삼키지 않아서 나는 다만 시체로서 발견될 것이다.’ 그 날 밤 진명은 꿈을 하나 꾼다. 데이모스 학원도시의 빌딩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꿈이었다. 빌딩 창문을 열고, 수십 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바다로 몸을 던진다. 퐁당퐁당 떨어지는 까만 점들 위로는 영원한 노을이, 아래로는 거대한 그림자가 헤엄치는 바다가 있다. 물고기들은 다만 입을 벌린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완벽한 ‘Let it be’ 였다.
 
 6.
 진명이 화성에 도착한 것은 열차에 탑승한지 정확히 이주일 하고도 4일이 지났던 2015년 12월 6일의 무렵이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날씨 때문에 화성은 조금 쌀쌀하기만 할 뿐 겨울의 기미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캐리어를 내린 진명은 차현이 화물칸에서 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인사하지 않았다. “진명 씨는 그 때 아주 갑자기 정신이 바짝 든 사람처럼 보였어요.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어찌나 빨리 역에서 사라지던지.” 진명의 옆 객실에 탑승하던 승객은 그렇게 증언했다. “아마도 야구 경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시즌 리그의 가장 중요한 경기가 3시간 뒤에 시작이었거든요.” 실제로 진명은 환상 야구의 경기장을 찾았고 미리 끊어둔 티켓을 수령한 뒤 경기장 끝자락에 앉아있었다. 그 날의 경기는 두말할 것도 없이 최고였다고 전해진다. 삼성 ‘매트 비’를 재치고 작은 구단인 ‘솔라’가 역전승을 거뒀는데, ‘솔라’에는 진명이 그토록 보고 또 보았던 ‘허공의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경기장 곳곳이 구역마다 다른 중력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는 것 같았다. 중력이 무겁거나 가벼워지면 다른 선수들은 으레 속도를 줄이거나 늘렸는데, 그는 아무것도 상관없다는 듯이 자꾸만 앞으로 달려 나갔다. 8회 말 무렵, ‘허공의 사나이’가 연출되었다. 힘차게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한 남자는, 그렇게 흙과 먼지를 튀기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객석이 환호하며 기립했고 경기의 스포트라이트는 그를 향했다. 진명의 좌석은 그의 측면을 향하고 있었다. “지금입니다, 지금, 아, 나오는군요! 여러분, 박수 쳐주세요, 그가 공을 향하여 달립니다. 그렇습니다, 허공입니다. 허공의 사나이입니다!” 온 세상을 뒤집어엎을 듯 쩌렁쩌렁 방송이 울리는 그 때, ‘허공의 사나이’를 보며 앉아있는 서른한 살의 최진명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장면 하나를 위해 칠천만 킬로미터를 날아온 여자는 그 경기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화성에 도착한 이후로 진명은 일기장을 쓰지 않았기에 우린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진명이 결국 ‘허공의 사나이’를 목격했다는 것이고, 그게 그녀에게 어떤 결심을 안겨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녀는 거기 있었다는 것이다. 경기가 끝마친 후 진명은 인파를 피해 뒤쪽으로 빠져나왔다. 진명은 곧장 다시 열차를 탈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여기서 예상치 못한 일이 하나 일어난다. 진명이 기대하지 않은 일이었기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거기엔 “배차현 씨”가 있었다.
 “아, 선생님.”
 차현이 먼저 인사했기 때문에 진명은 그를 지나칠 수가 없었다. 진명은 인사했다.
 “차현 씨, 야구 봤나 봐요.”
 “예, 뭐. 그렇죠.”
 차현은 머쓱하게 웃었다. 진명은 그 얼굴을 보며 갑자기 자신이 배가 고프다는 생각을 했고,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먹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진명이 차현에게 물었다.
 “같이 밥 먹을래요?”
 차현은 대답했다.
 “지금은 햄버거가 좋네요.”
 둘은 버거킹으로 가서 버거 세트를 하나씩 사먹었다. 진명이 카드를 긁었고, 차현은 조금 미안해했다. 머쉬룸 스테이크 버거는 아주 맛있었다. 진명은 차현이 햄버거를 베어 무는 얼굴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차현이 어색하단 표정으로 입술 주변을 비비자 진명은 시선을 내리깔곤 핸드백을 뒤졌다. 찾을 건 없었지만 그렇게 했다.
 “아니에요. 그냥.”
 차현과 진명은 그 뒤에도 소소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콜라 속에 담긴 얼음이 녹아 부서질 때까지. 시집, 소설과 문장들, 우리가 지나쳐온 행성과 위성에 대해서 그들은 말하고 또 말했다. 패스트푸드점은 냉방이 잘 되었기 때문에 진명은 곧 으슬으슬한 추위를 느꼈고, 하이힐을 신은 발가락을 오므렸다. 차현은 진명을 보곤 물었다.
 “선생님, 옷 빌려드릴까요?”
 진명은 잠깐 굳었다가 이내 대답했다.
 “괜찮아요.”
 차현은 진명에게 몇 가지를 더 이야기했다. 둘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과거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는데 그건 서로에 대한 배려라기 보단 그들 스스로가 꺼내기에 유쾌한 이야기들이 아니었기 때문일 지도 몰랐다. 진명은 차현이 자신의 과거를 어떤 식으로든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차현은 최진명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할 당시 군대에 있었다.
 “혹시 폭력 교사 관련으로 떠들썩했던 거 기억나나요. 재작년 여름 무렵이었는데.”
 진명은 괜히 그렇게 물었지만, 차현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잘 모르겠어요. 재작년이면 막 재대했을 때라서.”
 진명은 그 얼굴을 보며 안심했고, 더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차현은 다른 주제를 좀 더 이야기했다.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였다.
 “선생님, 화성 도서관은 지구와 화성을 통틀어 가장 큰 도서관이래요.”
 절판된 도서와 고대 서적들, 학회 자료를 보관하는 곳이다. 최근엔 시대적 착오에 의해 사라진 도서들을 복원해놓는 시도도 하고 있다. 어쩌면 교과서에 이름만 남은-혹은 이름을 남기지도 못 한 외로운 시인들의 시집이 거기 있을 지도 모른다. 차현은 도서관에 대해 알고 있는 만큼을 이야기했다. 진명은 다 녹은 콜라를 빨대로 천천히 저으며 주의 깊게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차현 씨는 거기 가봤나요?”
 진명이 물었을 때 배차현은 으음, 하는 표정으로 옅게 웃었다.
 “선생님, 우린 그 열차에서 내린 지 아직 하루도 안 되었거든요.”
 차현은 야구 경기장 쪽을 바라보며 턱을 괴었다.
 “일정이 된다면 가보겠지만 잘 모르겠어요.”
 바깥은 늦은 저녁이었다. 곳곳 간판에 불이 들어오고 패스트푸드점은 연인들로 북적였다. 응원 복을 입고 앉은 한 무리의 사람들 등판으로 시큼한 땀 냄새가 올라왔다. 진명은 미지근한 콜라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오늘 거기 가봐야겠어요.”
 이것은 충동적인 결심이 아니다. 하지만 차현이,
 “마음에 드는 시집을 발견하신다면 추천해주실래요? 돌아오는 열차에선 제 시집을 돌려주러 와주세요.”
 라고 말했을 때, 진명은 충동적으로 그에게 어떤 시, 이를테면 사랑과 통증을 수반하는 문장들을 죄다 그의 가슴 속으로 끌어오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였다. 일기장에 필사했던 그 모든 문장들처럼 아름답고 잔인한 이 세상 모든 언어를 하나하나 손수 박아 차현을 그 속에 죽이고 싶었다. 천천히 담갔다 꺼내곤 흔들며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배차현 씨, 여기엔 내가 하고픈 말이 단 한 마디도 없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배차현 씨, 죽지 마세요, 이제 내가 하고픈 말을 할게요.” 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문장으로 축축하게 젖은 스물네 살 청년의 하얗고 볼록한 이마를 내려다보며, 최진명, 그럼 결심하겠지. 그러니까 최진명은 기어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배차현 씨, 나는 아무래도 당신을 사랑하는 모양이에요.”
 하지만 배차현은 이제 펜을 꺾고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문청일 뿐이다. 최진명이 찬탄하던 그 시절의 배차현은 아주 오래 전에 목을 매달고 죽어버렸다. 그가 쓰는 문장은 이제 보고서와 서류 위에 걸맞은 성질을 가지고 빌딩 위를 기어오를 테였다. 기어오르고 기어오르고 기어오르다가, 그 도시의 아이들처럼 바다로 몸을 던져버릴 거니. 서른한 살이 된 최진명은 두렵다. 최후의 배차현이 죽어버릴까 봐. 이 시절도 결국 그 시절이 되어버릴까 봐. ‘Let it be’ 란 그런 식으로 진명을 방치하고 차현의 문장을 토막 내고 재구성했다. 진명은 세상이 가진 ‘Let it be’ 는 비틀즈가 부르는 아름다운 한 곡의 일부처럼 평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요컨대 그녀는 어리석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배차현 씨, 나는 아무래도 당신을 사랑하는 모양이에요.” 라고 말하면, 영영 배차현을 만날 수 없게 될 거란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여자였다.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을 느끼며 진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술이 벌벌 떨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어떤 말이든 해야만 했다. 그래서 진명은 차현에게 인사했다.
 “돌아오는 열차에서 만나요.”
 차현은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그녀를 배웅했다.
 “예, 그 때 봬요.”
 진명은 차현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7.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밤 10시였다. 진명은 도서관이 문을 닫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도서관이 문을 닫는 시간은 밤 12시였다. 진명은 800번 대에 가기 위해선 몇 층으로 가야하냐고 물었다. 로봇은 친절하게도 2층이라고 대답해주었다. 진명은 달팽이집처럼 빙글빙글 이어지는 계단을 쉼 없이 올라 아주 넓은 홀에 도착했다. 수많은 서적들 사이사이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진명은 핸드백에서 일기장을 꺼냈지만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 시집을 더듬거리며 자꾸만 안쪽으로 들어갔다. 계속 더듬고 계속 더듬다가 책장이 끝나자 멈추어 섰다. 진명은 그곳에서 아주 낡은 시집 한 권을 발견했다. 시인의 이름을 읽었지만 누군지 알지 못 했다. 나중에 찾기를, 그 이름은 1930년 대 시인하면 떠오르는 시인들 중 하나의, 부인 되는 사람의 것이었다. 시집은 아주 얇았고 잘못 손대면 바스라질 것 같았기 때문에, 진명은 핸드백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시집을 펼쳤다. 시집에는 딱 두 편의 시가 쓰여 있었다. 하나는 남편에 관한 시였고 또 하나는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간 그녀의 아이에게 쓴 시였다. 실제로 이 시집은 복원될 당시 특히 두 번째 시의 마지막 구절로 인해 많은 시인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는데, 시인은 될 수 없었을지언정 시인을 사랑할 수밖에 없던 진명 역시도 이 마지막 구절에 압사당하고 만다. 그 후 3박 4일 만에 지구로 되돌아오는 화성 급행열차에서, 진명은 일기장에 그 구절을 꼼꼼하게 필사한다. 절박했다.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결국 우리는 알게 되겠지만/해가 지는 동안에도 나는 끊임없이 물을 것이다/너는 나의 딸이었을까 아들이었을까’
 
 8.
 돌아오는 내내 진명은 아주 평온한 상태였다고 전해진다. 함께 열차에 탑승한 승객 하나는 당시의 진명을 “데이모스의 바다와 같았다”고 표현했다.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저로서는 알 방도가 없었죠. 겉보기엔 아주 평화로웠거든요. 그 자주 다니는 청년이랑 똑같은 시간에 앉아서 커피 마시고, 돌아와선 또 객실에서 나오지도 않고. 거대한 물고기가 그 속에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진명은 흘러가는 우주가 있는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밤새도록 소리 내어 천천히 시집을 읽었다. 차현이 빌려준 시집 세 권은 그렇게 진명의 입에서 말이 되고 소리가 되어 느릿느릿 쏟아졌다. 이따금 진명은 발가락을 오므리곤 작게 들썩이며 숨을 내쉬었지만 코끝의 시큰함이 가라앉으면 다시 시를 읽었다. 최진명 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운 날이 있다면 이때였을 것이다. 진명은 마침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나는 말하지 않고 죽는 법을 배울 수 없다.’ 포보스에 도착할 무렵이었다. 일기장을 넘기자 거기엔 진명이 지구에서 화성으로 날아가던 이주일 반 동안 필사한 문장들이 있었다. 진명은 그 중에서 그 언젠가 썼던 문장 하나를 아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절대, 마을에 내려가지 마시오. 강간, 절도, 도박, 구타, 살해, 실종의 위험이 있음.’ 진명은 거기서 ‘실종’을 지워냈다. 그래서 그것은 그녀에게 더는 아무런 위험도 되지 못 했다.
 열차에서 내리기 전에 진명은 캐리어를 꺼냈다. 그리곤 배차현의 객실을 찾아갔다. 차현은 “선생님, 어쩐 일이세요.” 라고 묻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시를 다 읽으셨나요?”
 진명은 그래서 웃었다.
 “네, 돌려주러 왔습니다.”
 진명은 시집 세 개를 차현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차현 씨, 여기 맥주가 유명하대요.”
 차현이 무슨 소리냐는 듯 진명을 바라보았다. 진명은 차창 너머로 펼쳐진 끝없는 늦은 저녁의 하늘을, 그 아래의 판자촌 슬럼가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려 차현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지만 진명은 웃을 기운이 없어 그냥 고개를 기울였다.
 “우리 같이 맥주 마시지 않을래요.”
 차현이 거절하면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차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요.”
 그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진명은 끝끝내 알지 못 했다.
 
 9.
 둘은 작은 포보스 정거장에 내려 바깥으로 나왔다. 선선한 공기에 바람이 불었다. 차현은 진명이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것을 보곤 고개를 갸웃했지만 따로 이유를 묻진 않았다. 진명은 그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보여준 둘 사이의 ‘틈’이라고 생각했고, 거기에 여전하게 안온함을 느꼈다.
 바에 들어선 둘은 아무 자리에나 앉아 블랙 맥주를 주문했다. 진명은 카드를 내밀었지만 늙은 노인은 이곳은 카드가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제가 낼게요.” 라며 차현이 지폐를 내밀었다. 맥주는 그렇게 비싸지도 않았다.
 차현과 진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맥주를 마셨다. “지구에 가면 뭘 할 거예요?” 차현이 침묵이 이어지던 도중 그런 질문을 던졌는데, 진명은 대답 대신 작게 웃기만 했다. 차현은 진명이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좋은 일이 있으셨나 봐요.”
 진명은 차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턱을 괴었다.
 “차현 씨, 과거형이네요.”
 “대게 그렇지 않나요.”
 “아니에요.”
 진명은 차현과 눈이 마주쳤지만 이번엔 웃지 않았다.
 “지금이 좋아요.”
 차현은 진명의 시선을 응시하다가 잔을 기울였다.
 “……그렇군요.”
 둘은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시 술집에 앉아있었던 승객이 말하기를, 둘은 “너무나도 말을 아끼고 있는” 눈치였다고 한다. 차현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진명은 그 때 정말 그러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진명에겐 할 일이 있었고, 그리하여 이 모든 순간이 최후였다. 진명은 차현에게 무얼 해주면 좋을지를 생각했다. 이 스물네 살의 청년에게 무얼 말하면 좋을지를.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고민해도 마땅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차현은 혼자 맥주 한 병을 비웠고 이내 조금씩 휘청거리고 있었다. 졸음과 취기가 쏟아지는 눈을 깜빡이며 차현이 진명 앞에서 기울어졌다. 진명은 그의 이마가 테이블과 자꾸만 가까워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침내 그가 테이블에 엎드렸을 때, 진명은 차현이 작게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선생님, 좋은 시는 찾으셨나요.”
 진명은 화성의 패스트푸드 점에서 차현과 했던 약속을 기억해냈다.
 “네.”
 진명은 대답하고 목이 메어 잠깐 숨을 삼키다가 다시 대답했다.
 “……네, 찾았어요.”
 “그렇군요…….”
 차현은 길고 나른한 숨을 내쉬며 몸을 뒤척였다. 진명은 그의 뒤통수를, 언젠가 시인이 되려고 했던 배차현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는데 거기엔, 그러니까 동그란 이상이 있었다. 여전히 모난 곳이 없는 뒤통수였다. 진명은 문득 부르고 싶어져 머뭇거렸고, 결국 조용히 시인의 이름을 불렀다.
 “차현아.”
 사방이 고요해진 것 같았다. 배차현이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진명은 다시 한 번 부를 수 있었다.
 “차현아.”
 “…….”
 진명은 코끝이 시큰해지는 걸 느꼈다.
 “딸이었을까 아들이었을까.”
 차현이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기에 진명은 마음 놓고 울음을 억누를 수 있었다. 손을 뻗은 진명은 머뭇거리다가 배차현의 이마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위로 정돈해주었다. 차현이 숨을 내쉬며 몸을 뒤척였다. 얼굴 각도가 달라져서, 진명은 아주 가까이에서 차현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손을 거둔 이후에도 그 얼굴을 아주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가슴은 아프지 않았다.
 진명은 핸드백에서 여행 내내 가지고 있던 시집을 꺼냈다. 차현이 칠 년 전 빌려다 얼마 전 돌려주었던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이었다. 진명은 그걸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 큰 도서관을 다 뒤져도 당신이 쓴 시가 없어요.”
 진명은 그 시집을 엎드린 차현 쪽으로 밀었다.
 “그래서 내가 찾은 시집은 이게 전부입니다.”
 허공으로 달리는 남자를 생각한다. 그 작은 공 하나를 쫓겠다고 우스꽝스러운 폼으로 공중에서 온몸을 비틀고 손을 뻗는 그 남자. 아무도 그를 비웃지 않는다. 허공의 마임이 격렬해질수록 사람들은 박수갈채를 날린다. 아무도 그가 쫓는 것을 'Let it be'라 부르지 않는다. 북적이는 관람객석에 앉아, 진명은 'Let it be'가 적용되지 않는 세상의 한 장면을 목격한다. 진명은 생각한다. ‘왜 내가 그 작은 공 하나를 쫓는다고 발버둥을 쳤을 때, 사람들은 돌을 던졌나.’ 하지만 진명은 동시에 알고 있다. 세상이 'Let it be' 하지 않을 땐, 삶 역시도 'Let it be' 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우주가 도는 동안 화성으로 기차가 달린다. 아름다운 오로라를 아래에 두고 차를 몰며 타이가 숲을 지나치자. 눈을 감고 거대한 물고기를 떠올리면 빌딩 아래의 배차현이 펜을 꺾고 세상으로 걸어 들어간다. 진명은 교편을 내려놓고 비로소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배차현의 뒤를 따르는 일은 아니다. 진명에겐 따로 가야한다고 결심한 길이 있다. 마지막이다. 진명은 조금 울면서, 천천히 얼굴을 감쌌다.
 “차현 씨, 안녕히 계세요.”
 진명은 중얼거렸다.
 “나는 시를 쓰지 못 합니다. 쓰지 않고 말합니다. 사랑합니다.”
 모든 마음을 내려놓은 후에 진명은 잠든 차현을 거기 내버려 둔 채 캐리어를 끌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녀의 마지막 말을 전해준 것은 술집에 앉아 있던 다른 승객이었다. “열차가 출발하기 전엔 차현 씨를 깨워달라고 하더군요. 그는 기차를 놓치면 안 되니까요.” 진명은 비틀거리며 걷다가 문득, 하이힐 굽 하나가 부러진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신발을 벗었다. 술집 아래는 가파른 내리막길이었다. 그 아래는 죄다 슬럼가였다. 한참을 내려가 한참을 걸어야 했지만, 어쨌든 그 아래엔 뭔가 있었고 사람도 살고 있었다. 진명은 희미한 불빛이 일렁거리는 낡은 판자촌을 내려다보며 계속해서 걸었다. 등 뒤로 뿌우, 하고 열차가 경적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진명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바람이 불었다. 정말 마지막이란 생각이 들었다. 열차가 출발을 예고하는 경적을 한 번 더 울리며 요란하게 종을 쳤다. 뿌우우, 하는 소리가 바람과 함께 들이닥쳤다. 진명은 열차에 올라탈 승객들을 상상했고, 얌전하게 개어놓은 자신의 개인 객실의 이부자리를 상상했고, 지구에 도착한 후 얼마나 지나서야 자신의 실종 처리가 이루어질 지를 상상했다. “진명아, 연락해!” 라고 외치던 전 남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진명은 그에게 손을 흔들지 않았다. 다녀온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열차가 출발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진명은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불며 진명의 단발을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아.” 하고 진명은 탄식했고 동시에 저 열차를 향해 달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 모든 충동이 한 사람으로 비롯되었던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제야 진명은 배차현에게 제대로 된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지 말 걸.” 이라며 진명은 중얼거렸다. 코끝이 시큰해졌으므로 진명은 조금 더 울었다. 후회가 찾아왔기에 더는 평화로울 수 없는 속이 절절 끓었다. 진명은 달리는 열차를 향해 욕을 하고 화를 내고 발을 구르고 자신을 원망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 진명은 손을 길게 뻗어 흔들어주었다. 그 열차 어딘가에 탄 배차현 씨를 위하여 진명은 손을 흔들었다. “어쩌면, 저것은 하늘의 노래일까요.” 진명은 멍하니 중얼거렸는데, 열차가 완벽히 떠나고 나서야 진명은 그게 그 언젠가 차현이 조수석에서 중얼거렸던 오로라의 시였다는 걸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읊은 아주 아름다운 문장이었다. 
 최진명은 하이힐을 풀숲에 버리곤 맨발로 섰다. 캐리어를 끌고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비틀거리는 진명의 뒷모습은 이따금 조금 들썩였지만 대체로 평온했다. 진명은 그렇게 자신이 선택한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속은 완벽한 어둠이었다.
 “최진명 최후의 순간”은 그래서, 대체로 평온했다.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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