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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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 야구를 본 적이 있다. 땅을 한 번 박차고 나갈 때마다 붕 떠오르는 선수들. 등판은 무중력의 공간 속에서 붕 떠오르고, 공은 느릿하게 허공을 가르고 경기장 중앙을 향해 나아가다가 느닷없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튀어나갔다. 서른을 갓 넘겼던 그때, 진명은 코코아를 마시다 말고 천천히 잔을 내려놓는다. 스포츠를 유심히 지켜본 적이 없는 인생에 느닷없이 직구로 날아온 그 장면은, 그러니까 앞으로 조금 더 뒤에 적금을 모조리 깨고 화성행을 결심하게 된 진명이 가장 먼저 화성의 그 어딘가로 떠올렸던 곳이 야구 경기장이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짝, 하고 저녁 어스푸레한 하늘 어딘가에서 빛나는 별이 사실은 행성이고 그 중 하나가 실은 시뻘건 화성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우주 여행은 가치를 가진다. 우리는 곁에 존재했으나 주목받지 못 했던 것들을 한 번 더 상기시켜줄 때마다 오히려 그 존재들의 생경함을 느끼는 역설을 종종 경험하곤 한다. 진명에게 화성이 그랬다. 티켓 예매는 망설임이 없었다. 컴퓨터 앞에서 자근자근 다리를 떨며 마우스 몇 번 클릭하면 우주로 나갈 수 있다는 것. 그런 멋진 일이 도처에 있다는 생경함.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습관처럼 입가로 올라가던 손톱의 끝. 겨울의 시작.

  버스는 생각보다 한산하고 히터 때문에 텁텁했다. 다만 무한히 옆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진명은 버스 기사에게 충고를 듣는다. 제아무리 늦은 오후라고 해도 붐비는 것은 마찬가지니 자가용을 타고 가는 편이 좋을 것이다. 서울역으로 향하는 버스는 분명 꾸준히 좌석이 차고 있었다. 진명은 기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충고 감사합니다.

  버스 바깥의 공기는 쌀쌀하고 막 얼어붙기 시작하는 겨울의 냄새가 난다. 휴대전화를 든 진명은 굽 낮은 하이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자꾸만 발가락을 움츠렸다, 가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펼친다.

 추위로 인해 쪼글쪼글해진 목소리로 진명이 말했다. 

  "선배, 나 좀 양평까지 태워주라."

  막 잠에서 깬 목소리는 그 말에 불평하는 어투로 웅얼거리다가 발신인을 확인한 직후 화들짝 깨 되묻기만 한다. 진명아, 어디를 태워달라고? 진명은 그러나 두 번 말하지 않는다.

  한 번도 우주라는 공간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 없는 사람들은 화성 이주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후 와글와글 그곳을 넘나들며 과학의 진보를 몸소 체험하고자 안달이 났고, 진명은 이제 그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 사실이 조금 우습다며 운전석에 앉은 진명의 대학 선배는 중얼거린다. 제일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주세요. 진명은 턱을 괸 채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다. 전 남편이라는 이름표를 떼고 나자마자 너무나 당연한 듯이 돌아온 대학 선배의, 촌티나는 음악 선정이 그저 아쉽고 아쉽고 아쉽기만 해서.


  양평에 도착할 즈음에는 가로등이 하얀 색에서 주황 색으로 바뀌었다. 오래된 도로는 늘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 있고 군데군데 칠 벗겨진 이정표가 보인다. 진명을 태운 자가용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어 역 앞에 진명을 내려준다. 기지개를 피며 선배는 재차 진명에게 묻는다. 진명아, 어디 간다고? 진명은 물끄러미 불 밝혀진 지구역 간판을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대꾸한다.

  "화성."

  선배를 배웅하며 입을 벌리자 입김이 화드득 솟았다. 무서운 일이다, 벌써 겨울이라니. 진명은 멀어지는 자가용을 바라보며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놓고 그런 생각을 한다. 전 남편을 부르는 것은 통상적으로 이상한 일이지만 대학 선배를 부르는 것은 통상적으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진명은 오늘 그를 대학 선배로만 대했을 뿐이다. 그건 진명을 조금 외롭게 하고, 동시에 조금 홀가분하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상한 일이다.

  천천히 역으로 들어서는 자신을 누군가 알아차렸으면 좋겠다고 진명은 생각한다. 누군가가 가장 절실했던 순간 세계의 어떤 눈들이 자신에게 조금의 관심을 가져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과거는 다만 흘러가는 풍경처럼 진명의 곁을 스쳐갈 뿐이며, 무중력 상태로 느릿하게 허공을 기어가던 공도 어느 순간에는 결국 쏜살같이 달리는 법이다. 진명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서른 살이 되었고, 서른 살을 먹었고, 이제는 서른한 살이 되었으므로. 화성에는 도서관이 많다던데 시집이나 찾아볼까. 생각을 차곡차곡 호주머니 속으로 접어넣으며 진명은 케리어를 끌고 역으로 걸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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