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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년 1월


 “오늘 남편이 집에 일찍 들어와 좋은 와인을 꺼내오더군요. 그리고 내 어깨를 두드렸죠. 꽤 괜찮은 건배사였어요. 그리고 나는 방으로 돌아와 죽기 위한 결심을 굳혔어요. 튼튼한 밧줄을 커튼 봉에 매달고 내 몸을 아무렇게나 걸쳐놓았죠. 몸에 쌓였던 오줌이나 똥이 나올 수도 있다면서요? 생리대를 두 개나 겹쳤어요. 기저귀를 사러갈 시간이 없었거든요. 와인 마신 후에 기저귀를 사러가겠다니, 그건 너무 웃기잖아요. 남편이 보내줄 리도 없었죠. 애를 잃은 이후로 남편은 종종 저를 정신병자 취급했거든요. 수연이의 물건을 끌어안고 우는 걸 이해해주지 않는 남자에게 냉큼 결혼하자고 한 내 자신이 한심해요. 나는 목을 매달기 전 언젠가부터 남편의 정장에서 나던 낯선 향수 냄새를, 아주 오래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런 걸 생각할수록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살고 싶다는 의지로부터 나를 주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사실이 나를 무섭게 했어요. 그래서 서둘러 의자를 밟았죠. 나는 거기 오 분 정도 매달려있었어요.”

 여인은 거기까지 이야기하곤 잠깐 뜸을 들였다. 마흔 살 중반의 여인은 몸에 딱 달라붙는 회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고, 화장은 짙었다. 지난여름 피서 여행으로 해외에 다녀왔다는 그녀는 하와이를 회상할 때마다 괜찮은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웃을 때면 그랬다. 그녀에게는 열여덟에 접어든 딸이 하나 있었다.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그녀는 그 말을 할 때도 웃고 있었다. 그래서 몰랐던 거예요. 그녀의 딸은 새벽, 홀로 호텔을 빠져나와 하와이의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그녀가 회상할 때마다 종종 미소 짓곤 하던 에메랄드 빛깔의 고요하고 아름다운 그 바다로. 그리고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 때문에 죽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녀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럼 남편의 외도 때문인가? 내가 묻자 그녀는 나를 완전히 바보 취급하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아뇨, 그럴 리가요.”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론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여 예쁘게 칠한 손톱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불쑥 내게 들이밀었다. 나는 고개를 빼고 그녀의 손가락을 내려다본다. 길고 가늘게 위태로운 그 손가락, 의 끝에 매달린 손톱을 꼼꼼하고 주의 깊게 살핀다. 섬세한 무늬가 단단하고 긴 손톱을 채우고 있다. 새끼손톱에는 무척 공들인 호피 무늬가 있다. 하지만 그 손가락이 눈에 띈 이유는 호피 무늬 때문이 아니라 길이 때문이었다. 유독 짧은 왼쪽 새끼손톱은 자세히 보니 험하게 깨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는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뜸을 들였다.

 “내 남편은 나와 결혼한 후 수연이를 낳자마자 외도를 시작했어요. 그이의 사업이 잘 풀릴 시기에 만난 여성은 출장 안마를 주업으로 하고 있었지만 얼굴은 예뻤죠. 그의 휴대폰 메신저 폴더에 저장된 얼굴을 봤어요. 나는 어릴 때부터 예쁘다는 소리를 종종 나의 어머니로부터 들어왔지만, 그 여자는 내 얼굴을 형편없게 만들었어요. 그 여자는 젊었거든요. 그건 내가 취할 수 없는 종류의 아름다움이죠.”

 여인이 멋대로 이야기를 시작해버려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고객의 이야기를 막을 권리가 내게는 없다. 나는 그녀의 입을 빤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조금만 천천히 말해주세요.”

 나는 그녀가 입을 빠르게 움직일 때, 그녀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 한다. 귀가 들리지 않기 시작할 때부터 상대방의 입만 바라보았다. 모든 말을 알아들을 수 있기까지 삼 년이 걸렸다. 이 일을 시작한 지는 일 년이 다 되어간다. 고객들은 내가 정신 분열을 앓고 있는 줄은 알아도 귀머거리인줄은 잘 모른다. 사실 전자는 거짓말에 가깝다. 아마도.

 “이 정도 속도면 될까요?”

 그녀가 되물어서 나는 괜찮다는 사인을 보인다. 네, 말하세요. 여인은 페트병 뚜껑을 돌려 물을 두어 번 목구멍으로 흘려보냈다. 말이 길어지기 전 그녀는 늘 물을 마신다. 방에 들어온 후 세 시간 내내 저랬다. 나의 고객들은 말이 장황한 사람들이 많다.

 “나는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뜯어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어요. 질투가 끓어올라서 섹스를 할 때면 남편의 등을 긁었어요. 피가 날 때까지 긁었지만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어느 날 방안에서 남편의 휴대폰을 통해 전송한 그 여자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깨달았죠. 아주 갑작스럽게요. 내가 질투하고 있던 건 남편의 외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여자가 가진 외모라는 걸요. 하지만 난 그 때 벌써 서른이 넘었어요. 주름살이 매일 아침마다 조금씩 내려와요. 피부가 탄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게 몸으로 느껴져요. 어느 날은 테이블에 무릎을 찧었는데, 멍이 한 달이 넘게 가더군요. 원랜 이주일이면 사라졌는데 대체 내 몸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늙어간다는 건 그런 일이에요, 태훈 씨. 그걸 인정하는 건 좀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허영심이 많은 여인에겐 그래요. 그래서 보톡스를 맞고 안티에이징 광고에 귀를 기울이게 되죠. 하지만 내가 허영심이 많은 줄은 그 때 알았어요.”

 그녀는 내 앞으로 손등을 뒤집어 펼쳐보였다.

 “나는 그 날부터 네일 아트를 해요. 손톱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누그러져요. 남편에 대한 애정에 신경 쓰기보다 내 허영심에 물을 붓고 싶어요. 하지만 늙은 독은 잘 깨져서 물을 부어도 부어도 끝이 없죠. 새어나가는 구멍을 막아주는 두꺼비는 내 인생에 없어요. 그게 있다면 돈, 혹은 남자여야 하는데, 내겐 둘 다 없었거든요. 남편은 외도 사실이 내게 발각될 정도로 허술하고 매너 없는 남자였기 때문이죠. 내 딸 수연이는 지독하게 뚱뚱하고 못생겼습니다. 나를 한군데도 닮지 않았어요. 살을 빼라고 다그쳤지만 매일 밤마다 그 애는 피자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었어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그런 식이었죠. 학교에서 집단 구타를 당하고 온 날, 치킨을 두 마리나 먹더군요. 뚱뚱해서 괴롭힘을 당하면 이를 악물고 빼야하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어요? 남편이 나를 버린 날부터 나는 내 손톱을 가꾸기 시작했는걸요. 정말이지, 내 딸은 나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어요. 나는 그 애를 때리지 않았지만, 짐승 취급하듯 했죠. 도축해야만 하는 돼지처럼요. 그게 상처였을까요? 늘 꽥꽥거리며 나와 싸울 만큼 기운 좋고 자존감이 뚜렷한 아이였는데요. 뚱뚱한 건 잘못된 게 아니라고 비명을 질렀지만, 남편에게 버림받은 이후부터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있었어요. 나의 딸은 하와이에서 죽었지만, 나 때문은 아닙니다. 시체를 건져 올린 다이버가 나에게 연락을 했죠. 하와이 경찰은 영어로 내게 말했어요. 당연한 말이죠, 하와이 경찰인걸요. 영어를 잘 몰라서 다 알아듣지 못 했어요. 게다가 그 남자는 말을 너무 빨리 했거든요. 하지만 나는 나를 스쳐가는 무수한 단어 중에서 ‘rape'를 똑똑히 알아들었어요. 수연이를 죽인 단어를 나는 똑똑히 알아들었어요.”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새고 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례식을 하는 동안에도 남편은 종종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어요. 그이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넥타이를 만지죠. 아는 친구의 전화라고 말할 때마다 넥타이를 만지는 그를 보다가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손톱을 칠했죠. 아주 예뻤어요. 색이 잘 나왔죠. 흠집하나 내지 않았어요. 나는 딸을 잃은 이후부터 어떤 것에 짓눌리는 느낌을 받으며 살아왔어요. 그러나 반짝이는 열손가락을 보면 그런 기분이 좀 가셨죠. 나는 허영심이 참 많았거든요. 손톱 하나로 슬픔을 이겨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더 사들이겠어요. 매니큐어를 충동적으로 쉰 개 정도 구매해온 나를 남편은 미친 사람 보듯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 아니겠어요. 나는 이제 그 남자를 위해 살지 않는 걸요.”

 여인은 그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손톱이 부러졌어요.”

 여인은 내게 이해를 구하지 않았다. 다만 슬퍼했을 뿐이다.

 “손톱이 부러졌다니까요.”

 그녀의 새끼손톱을 바라보며, 나는 서랍을 뒤적인다. 안쪽으로 깊게 구르는 유리병을 잡고 다시 탁자 위로 손을 얹어놓았다. 여인은 휴지 곽을 들어 뭉텅이로 휴지를 뽑아냈고, 형광등에 유독 반짝이는 호피 무늬는 그녀의 모든 손톱 중에 단연 으뜸이다.

 “그런데 더는 자라질 않아요. 아무리 기다려도 자라질 않았어요. 뭔가 이상하다 느낀 건 두 달이 지난 후였어요.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죠. 아무도 원인을 알지 못 했어요. 큰 대학 병원에 가야 한다고들 해서 휴일에 버스를 탔죠. 삼십 분을 기다려 들어간 곳에 앉은 의사는 내게 희귀한 질병에 대해 말해줬어요.”

 나는 그녀의 입술의 움직임을 주목한다. 내가 귀를 기울이는 방식. 이따금 울면서 입을 가리는 고객들이 있는데, 그녀는 울 때마다 눈가를 훔쳐서 좋았다.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고객은 좋은 고객이다. 내가 공지한 메시지를 꼼꼼하게 읽어보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는 고객을 만나기 전 안내 메일을 보낸다. 거기엔 내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설명도 짤막하게 붙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메일을 열어보지 않는다.

 “부인.”

 나는 계속하라는 제스쳐를 취한다. 그녀는 다시 물을 마셨다.

 “세포 분열이 일어나지 않으면 손톱은 자라지 않아요. 죽은 세포를 밀어낼 일이 없기 때문에 거기서 성장이 멈추는 겁니다. 자세한 건 모르겠네요. 틀렸더라도 말하지 마세요. 나는 의사가 아니니까요. 나의 손끝은 성장을 멈췄어요. 희귀병이었죠. 정확히는 내 딸이 죽은 이후부터 조금씩 진행되어 왔다고 하더군요. 의사는 세계에 딱 다섯 명이 앓고 있는 이 희귀한 질병에 대해 내게 말해줬고, 이제 그 질병을 앓는 환자는 여섯이 되었죠. 나의 새끼손톱은 영영 짧은 채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수연이가 내게 벌을 준 걸까요? 하지만 수연이를 죽인 건 내가 아닙니다. 수연이는 강간을 당해 죽었어요. 누가 죽였는지도 알아요.”

 여인은 조금 훌쩍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화장대 앞으로 돌아왔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더군요. 그 손톱을, 부러진 내 새끼손톱을 말입니다. 내 새끼손톱이요, 어떻게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짧아진 내 손톱이… 너무 흉했어요. 너무… 너무나요.

 그 순간 모든 감정이 밀려오더군요. 남편의 외도가 시작되던 순간을 깨달은 직후 느꼈어야만 했던 감정들이, 수연이가 바다로 홀로 걸어 들어가야만 했던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감정들이, 딸의 장례식에도 내내 휴대폰을 쥐고 있던 그 남자에 대한 감정들이…… 내가 지나친 채 화장대 앞에서 어떻게든 억눌렀던 내 인생이…… 내가… 내가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늙어가고 있었어요. 너무나도 빠르게 늙어가고 있었어요. 내가 거쳐야만 했지만 필사적으로 무시하고 넘어갔던 모든 감정이 내 주름살로, 내 탄력을 잃은 피부 속으로, 사라지지 않는 멍 자국으로 침투했어요. 삼 분만에 나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들이 나를 죽이고 있었어요. 나를 물어뜯고 있었어요. 그리고 분노했습니다. 나는 그게 어디로부터 오는 건지도 몰랐어요. 내가 해야 할 일을 필사적으로 생각했고, 그랬더니 수연이가 떠올랐어요. 하와이가… 거기 수연이가……. 내 딸 수연이. 나는 내 딸의 같은 반 남자애를 찾으러 갔습니다. 담임에게 전화를 걸어 연락처를 가져왔죠. 놀이터에 불러내어 칼로 두 번 찔렀습니다. 그 애는 달아나지도 못 했어요. 하지만 죽일 수는 없었죠. 그 애가 피를 철철 흘리며 묻더군요. 아줌마, 왜 그래요? 나한테 왜 그래요? 걔가 그러래요? 걔가 그러래요?

 아줌마라는 소리에 칼을 내던지고 비명을 질렀어요. 내 손톱이 자라지 않는다고 말하자 그 애는 꼭 남편이 나를 바라보듯 하더군요. 내가 수연이를 바라보듯 했던 것도 저런 눈이었을 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그제야 내가 어디에 분노하고 있는 지를 깨달았습니다. 나는 나에게 화가 나있던 거예요. 아줌마가 된 나에게. 새끼손톱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더는 도망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해야만 하는 나에게. 볼품없는 중년 여성에게.”

 여인은 물을 마시려다, 이내 손을 내린다. 나는 서랍에서 써냈던 약을 책상 위로 올려놓았다. 여인은 잠시 그걸 바라보다가, 이내 부러진 새끼손톱을 만지작거렸다.

 “남편이 집에 들어와 와인을 꺼내는데, 나는 기저귀를 사러나갈 수가 없었어요. 놀이터에 그 남자애를 버려두고 나왔거든요. 경비가 나를 찾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저귀를 사러나갈 수가 없었어요. 내가 그 애를 버려뒀어요. 신고하지도 않았어요. 버려둔다는 건 그런 의미죠. 나는 철저하게 그 애를 버렸어요. 내 딸만큼이나. 그리고 나는 그 애에게 화가 난 게 아니에요. 아니죠.”

 여인은 입을 다물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야기가 끝이 났다는 걸 깨달았지만 나는 기다렸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약을 보고도 손을 뻗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손짓해야만 했다.

 “당신은 이 약을 줘도 괜찮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요?”

 “당신이 목을 매달았던 것보다 더 짧게.”

 사실 얼마나 더 걸릴지는 모른다. 독의 치사량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다. 나는 삼 분만에 죽었다는 고객의 소식을 전해들은 적이 있지만, 때때로 항의 메일을 받기도 했다. 오 분이 지나도 나는 건강하기만 해요. 하지만 그런 메일을 보낸 직후의 고객들도 더 이상의 항의 메일은 보내지 않았다. 십 분이 되기 전엔 마룻바닥 위로 쓰러졌으므로.

 나는 자살을 안내하는 카운슬러다. 귀가 먼 이후부터 나는 내가 할 일을 찾아다녔고, 이 일에 정착한 지는 일 년이 다 되어간다. 고객들은 까다롭고 나는 할 말을 듣는다. 나는 죽음을 일종의 권리로 취급한다. 사실 취급하지 않아도 그것은 권리에 가깝다. 우리는 생을 선택하진 못해도 사를 선택할 수는 있다. 나는 그것에 집중했다. 나는 목을 매달거나 강에 투신하는 대신 이 일을 선택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시작했다. 이 도시엔 나와 같은 안정적인 정착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모든 것이 불완전하게 돌아가는 도시엔 죽음조차 불완전하다. 줄을 묶은 커튼 봉이 무너지고, 투신하면 한강 구조 대원이 빠르게 사건을 접수해 자신을 건져내는 곳에서 완벽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몹시 힘든 일이다. 생각보다 자살에 실패하는 사람들은 많다. 나는 그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돕는다. 페이가 아무리 세도 그들은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나의 고객들은 통이 크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겐 물욕이 없고, 그런 점에서 나의 사업은 현명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불명예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나의 사십 번째 고객이다. 약 네 시간가량 그녀는 내게 죽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해 나를 설득시켰다. 나는 그녀가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결국 약을 꺼내주었다. 그녀는 몹시 기뻐하는 기색이다.

 무턱대고 자살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좀 골치 아프다. 충동적이고, 뒤처리가 허술하다. 고객 한 명을 잘못 받았다가 그의 가족들에게 시달림을 받은 적이 있다. 그의 메일함을 뒤져본 아들은 내게 소송을 걸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확한 물증은 없고, 그가 먹은 알약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감기약과 동일한 성분이다. 나는 빠져나왔지만 그 뒤로는 조금 신중하게 되었다. 사업이 형태를 갖출 때마다 메일 안내문은 조금씩 길어졌지만, 나의 일은 여전히 성황이다. 고객들은 죽어야만 하는 이유를 내게 늘어놓고, 난 그들이 다섯 시간 안에 나를 설득시키지 못 하면 돌려보냈다. 나는 사람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허술함이 없어야 한다. 티끌만큼이라도 삶에 대한 희망이 남아있다면 나의 일은 곧 살인이 된다. 그럼 안 된다. 누가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사연도 되돌려 보낼 이유가 되고, 말도 안 되는 이유에도 알약을 내밀 수 있었다. 순전히 내 주관이지만, 이건 내 사업이니 아무도 뭐라고 할 순 없다. 같은 이야기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설득은 새치 혀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얼굴이 한다. 귀를 듣지 못 하게 된 이후로 나의 의사소통은 다른 방식으로 기민해졌고, 얼굴 근육의 미세한 변화 하나하나에도 나는 날카롭게 반응한다. 거짓을 고하는 고객들을, 삶에 조금의 희망을 건 고객들을, 나는 알 수 있다. 그리고 돌려보낸다. 그들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는 없다. 나는 나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믿는다.

 여인은 알약을 들고, 내게 현금을 내밀며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나는 헤드폰을 쓰며, 그녀가 문고리를 돌리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인사한다. 그녀는 웃으며 문을 나선다. 입 모양으로 안녕, 을 중얼거리는 여인은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냥 입모양이다. 멋진 고객이다. 내 안내 메일을 정말로 읽어본 고객들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별로 없다.

 문이 닫히고, 나는 가장 시끄러운 음악을 튼다. 갑갑하게 막힌 귓구멍으로 날카로운 진동이 파고든다. 쿵, 쿵, 쿵, 쿵, 쿵, 쿵 내 심장을 때릴 만큼 매서운 진동이다. 하지만 귓구멍으론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귀머거리다. 내 귀는 단단하고, 다시는 열리지 않아. 죽음에 정착한 유일한 그곳은 알약이 필요 없었다. 나는 내 스스로를 고객으로 만들지 못 하는 대신 매일 한 사람을 죽음으로 인도한다. 나는 자살을 안내하는 카운슬러다.

 나는 오늘의 고객을 떠올린다.

 “부인.”

 눈을 감으면 그녀의 새끼손톱을 볼 수 있다. 내가 과연 어떤 말을 해야만 했는지 깨닫는 순간이 좋다.

 “아름다워요, 부인.”

 나는 중얼거렸다.

 “정말 아름다웠어요, 부인.”

 슬프지 않지만 슬펐다.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그녀의 새끼손톱이 사라지질 않는다. 나는 오래도록 그 손톱을 생각한다. 더는 자라지 않는다는, 영영 부러진 채로 남을 손톱을, 거기에 붙은 아름다움에 대하여, 그 호피 무늬, 그럼에도 그녀가 오늘 삼키게 될 알약 속 성분 하나하나에 존재할 그 새끼손톱을. 그리고,

 그리고 나는 평범한 카운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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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럼프 왔을 때 이겨내보려고 혼자 썼던 단편.
맘에 들지는 않지만 몇 안 되는 창작글이라 백업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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