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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은 기억하는 것보다 작았다. 오는 데만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출발할 때만 해도 밤이었는데 도착했을 땐 새벽이었다. 고모부가 트렁크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기재는 조수석에서 내릴 때 일부러 차문을 약하게 닫았다. 아영과 아진은 뒷좌석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기재는 마당에서 심어진 나무가 훌쩍 2층 높이까지 자란 것을 올려다보았다.

“나무가 자랐네요.”

“나무?”

고모부는 기재의 시선을 따라 이동한 후에야 어떤 나무를 말하는 것인지 알아차렸다.

“아, 저거. 기재 네가 마지막으로 여기 왔을 때가 5년 전이던가?”

기재의 입에서 입김이 피어올랐다.

“저 열한 살 때요.”

“그래……. 그 정도면 많이 자랐다고 느낄만하지. 올해 가을엔 열매도 열렸어.”

“기재 형.”

고모부와 기재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수가 서있었다. 기재는 놀랐다. 처음엔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 했다.

“어… 지수구나.”

“형은 변한 게 없네.”

“너는 많이 변했다.”

기재는 진심으로 대꾸했다. 지수가 호탕하게 웃었다.

“내 키가 좀 크긴 했다.”

지수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다가왔다. 기재 앞에 서자 눈높이가 거의 같았다. 기재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운동화를 바라보았다. 굽 차이를 고려하면 지수가 기재보다 더 클 지도 몰랐다.

“형, 들어가자.”

지수는 기재의 손을 아주 자연스럽게 쥐었다 놓았다.

 

주택 안은 변한 게 없었다. 잘 닦인 복도를 따라 방문이 나란히 늘어져 있고 현관 앞엔 꽃이 화분에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고즈넉하고 여유로운 냄새나 신발장에서 풍기는 방향제 냄새도 여전했다. 지수는 기재를 데리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고모가 벌써 방에 다녀간 모양이었다. 기재가 자게 될 지수의 방엔 지수 몫이라기엔 너무 많은 양의 이불가지가 정돈되어 있었다.

“기재 형, 맘 쓰지 말고 편하게 지내라.”

지수의 목소리에선 사투리 억양이 강하게 묻어났다. 기재는 지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지수가 무엇이든 물어볼까봐 두려웠다. 한 달 간 김기재와 두 여동생은 지수네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것보다 오래 지낼 수도 있었다. 고모와 고모부가 그 사정을 설명했다면, 지수는 분명 기재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아주 많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수는 무언가를 묻는 대신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형 중간에 깨서 그런데 나 너무 졸려.”

“다시 잘 거야?”

“형은 안 졸려?”

“차에서 조금 잤어.”

“낮까지 자. 어차피 학교도 안 가는데.”

“그럴까.”

“응. 아, 맞다, 형.”

지수는 이불 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키득키득 웃었다.

“나 불 좀 꺼줘.”

기재는 불을 끄고 지수 옆에 쌓인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왔다.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새벽녘의 푸른 기운이 어스름하게 창문을 넘고 있었다. 지수는 금방 잠들었지만 기재는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 하고 뒤척였다. 서울에 두고 온 것들이 떠올랐다. 집이 그리웠고 어머니가 그리웠다. 지수가 뒤척이며 이불을 발로 뻥 찼다. 기재는 자는 지수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좋은 생각을 하려 애썼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수마저 없었다면 자신은 정말로 울어버렸을 지도 모른다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지수는 옆에 없었다. 아래층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기름에 튀겨지고 있었다. 기재는 층계를 내려왔다. 아영과 아진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지수는 보이지 않았다.

“오빠 안녕.”

“오빠 좋은 아침.”

“고모, 지수는요?”

“지수?”

고모는 기름이 팔팔 끓는 냄비 안에서 가지튀김 몇 개를 건져내곤 불을 내렸다. 접시에 키친타올을 깔고 튀김을 옮겨 담은 후 식탁 앞으로 밀었다. 기재 앞으로 분주히 상이 차려졌다.

“지수는 벌써 일어나서 밥 먹고 나갔지. 아마 또 동네 쏘다니고 있을 거다.”

기재는 식탁에 앉아 밥과 가지튀김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고모가 맑은 된장국을 퍼서 밥 옆에 차려주었다. 출렁이는 된장국 안으로 기재의 얼굴이 비쳤다. 젓가락을 들 마음이 들지 않았다. 밥을 남겨도 고모는 이해해 줄 것 같았다.

기재는 가지튀김 두 개를 집어먹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모가 식탁을 치우다 말고 멈춰서 거의 비워지지 않은 기재의 밥그릇을, 그리고 기재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무언가 묻고 싶지만 예의상 물을 수 없는 것들이 있을 때 짓는 어른들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재는 어물거렸다.

“죄송해요.”

“아니야, 고모는 괜찮아.”

그것은 기재가 원하던 전개였고 예상했던 말이었으나 거북하게 느껴졌다. 기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비명을 지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거실에서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가엾은 고모를 더 죄송스럽게 만들 수는 없었다.

바깥으로 빠져나온 기재는 방금 먹은 것을 모조리 토해냈다. 벽을 짚고 서서 더 이상 게울 것이 없을 때까지 침과 오물을 뱉었다. 한참 그러고 있으니 절로 기운이 달렸다. 쭈그려 앉은 기재의 뒤로 인기척이 났다. 기재는 고개를 돌렸다. 지수가 서서 기재를 보고 있었다. 철렁했다.

“어…….”

지수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형.”

지수가 손을 까딱거렸다.

“가자.”

지수의 뒤를 따라 오솔길을 걷는 동안 기재는 생각해보았다. 어디까지 봤을까? 지수는 아무 것도 모르는 건 아니지 않을까? 지수가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 지수의 등은 아주 넓고 컸다. 운동화로 갈아 신은 지수의 키가 기재를 미묘하게 추월하고 있었다. 다음 해엔 기재보다 훨씬 더 클 지도 몰랐다. 기재는 지수를 처음 봤을 때를 떠올렸다. 그 땐 기재가 더 컸다. 지수는 구석에 있었고 말수가 적었고 눈치를 보는 동생이었다. 왁자한 친척 아이들 틈에서 자리를 잡지 못 하고 맴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맴도는 건 기재가 된 것 같았다.

“지수야, 우리 어디 가는 거냐.”

“응? 걍 걷는 기다.”

지수는 능숙하게 오솔길을 누비며 씩 웃었다.

“아침 묵었으니 산책 해야제.”

“어디까지?”

“갈 수 있는 데까지 갔다 돌아오면 되지 뭐.”

“길 잃어버리면 어떡하냐.”

“뭐?”

지수는 아주 우스운 농담이라도 들었다는 것처럼 박장대소 했다.

“뭔 소리고, 내가 여서 길을 왜 잃는데.”

오솔길은 뒷산으로 이어졌다. 길이 가팔라지고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둘은 이제 겨울산 속에 있었다. 황량하고 앙상한 풍경이 이어졌다. 눈이 오지 않은 산은 어쩐지 무서웠다. 귀신이 나타날 것도 같았다. 지수는 산 동물처럼 잘도 껑충껑충 앞서 나갔다. 중턱까지 올라갔을 때, 둘은 나무 한 그루 앞에 멈춰 섰다. 가지에 반쯤 찢어진 연 하나가 걸려 있었다. 지수는 그 연을 가리키며 다음엔 연 놀이를 하자고 말했다.

“있제, 따분하게 보여도 생각보다 재밌다.”

“롤보다 재밌을까?”

“아, 그건 그렇다.”

겨울바람이 불었다. 둘은 중턱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몇 몇 집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개 한 마리가 좁은 길을 마구 내달리고 있었다. 기재가 불쑥 말했다.

“롤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 같아.”

“그제. 맞다.”

지수가 동의했다.

“내가 해본 게임 중에선 제일 재밌더라.”

“롤보다 재미있는 게 나올까?”

“새로운 겜은 계속 나오니까 언젠가 함 나오겠지 뭐.”

“그 땐 우리 집에 또 놀러와.”

거기까지 말하던 기재는 잠시 머뭇거렸다. 집, 이라고 발음하자 입안이 깔깔해지는 것 같았다. 기재의 집은 불에 탔고 지수가 다시 서울에 올라온다고 해도 그 집에서 재워줄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새 집을 빠른 시일 내에 구해오겠다고 약속했다. 더 크고 좋은 집을 찾고 있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러니까 지수가 다시 서울로 올라온다면, 그 땐 새로운 집에서 기재와 게임을 하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 집엔 치명적으로 무언가 빠져있었다.

갑자기 말이 없어진 기재를 지수가 묵묵히 바라보았다. 눈치를 보고 있는 걸지도 몰랐고 기재가 갑자기 입을 다문 이유를 알고 있어서일지도 몰랐다. 기재는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서 일부러 먼 곳을 보았다.

“야, 김지수. 먼저 내려갈래?”

지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천천히 내려온나.”

지수가 내려간 뒤 기재는 바위에 앉아 조금 훌쩍였다. 어린 애처럼 울고 싶지는 않아서 숨을 죽일 생각이었지만 생각한 것보다 울음은 금방 그쳤다. 기재는 천천히 바위에서 일어났다. 지수가 오솔길을 따라 걷고 있는 게 보였다. 반대편에서 누군가 달려왔다. 여자애였다. 지수가 낄낄거리며 팔을 벌렸다. 친구일까? 아니면 애인? 기재는 지수의 품에 찰싹 달라붙은 긴 머리카락의 소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주택으로 돌아왔을 때 기재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현관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신발들이었다. 낯선 신발도 하나 껴있었다. 아까 지수가 껴안아준 여자애의 것일지도 몰랐다. 기재는 층계 쪽을 올려다보았다.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층계를 따라 올라가는 동안 소음은 점점 선명해졌다. 기재는 저도 모르게 난간을 붙잡고 멈춰 섰다. 소리는 지수의 방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수가 누군가를 어르고 달래고 속닥거리고 있었다. 기재는 당혹스러움에 휩싸였다. 무슨 상황인지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치 그래야 했던 것처럼, 기재는 발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방문 앞으로 다가갔다. 여자가 교성을 질렀다. 둘은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기재는 못 박힌 듯 그 앞에 서서 지수가 욕설을 내뱉는 걸 묵묵히 들었다.

“누나, 아, 존나…….”

지수의 목소리엔 많은 숨이 섞여 있었다. 사투리의 억양도 잘 들리지 않았다. 지수의 목소리인지도 의심스러웠다. 기재가 늘 들어오던 느낌이 아니었다. 하지만 문을 열 수는 없었다. 누가 됐던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머뭇거리던 기재는 복도를 지나 다락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등지고 주르르 미끄러졌다. 옆방은 여전히 쿵쿵거리고 있었다. 기재의 손바닥이 축축했다. 기재는 마른세수를 했다. 뺨이 화끈거리고 있었다. 교성에 칭얼거림이 섞이며 상황은 보다 노골적으로 변했다.

“지수야, 그건 아파!”

“아, 쫌만.”

“아, 진짜, 김지수…….”

원하지 않아도 상황이 그려졌다. 기재는 보이지도 않는 방을 훤히 볼 수 있었다. 야한 소설을 읽을 때 느끼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기재는 몸을 웅크린 채 눈을 감았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 헤어진 여자 친구가 떠올랐다. 그 애도 머리카락이 길었던 게 생각났다. 지수가 안고 있는 누나와 비슷하게 생겼던 것도 같았다. 가까이서 본 적도 없는 주제에 멋대로 그렇게 상상되고 있었다. 이제 기재는 죄악감을 느꼈다. 바지춤이 부풀어 있었다.

기재는 검지를 문 채 수음을 했다. 신음하면서 조금 울었다. 외로웠다. 외로웠는데, 너무 큰 일이 닥쳐버려서 그걸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지금 하는 일도 나쁜 일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정말 나쁜 일일 지도 몰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수는 방 너머에서 사정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수야아, 하고 지수의 ‘누나’는 울었다. 기재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 헐떡거리며 성기에서 손을 떼어냈다. 손바닥이 축축해져 있었다.

 

그 날 밤에도 지수는 먼저 자리에 누웠다. 이불에 눕다 말고 기재가 머뭇거렸다. 지수는 고개를 돌려 씩 웃었다. 기재의 가슴이 순간 철렁했다.

“형.”

“어, 어?”

“불 좀 꺼줘.”

“아……. 그래.”

기재는 불을 끄고 지수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지수가 들어가서 데워놓은 이불 속은 따뜻하고 건조했다.

“형 언제 들어왔어?”

“음.”

기재는 지수의 아는 누나가 나간 시간을 대충 떠올리며 둘러댔다.

“너 내려가고 한 시간쯤 뒤에.”

“아, 그래? 오래 있었네. 난 형이 금방 내려올 줄 알았다.”

“겨울 산이 또 있어보니 좋더라.”

“그렇나…….”

지수가 베개 위로 엎어졌다. 얼굴을 마구 부비다 기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며 씩 웃었다. 기재는 지수가 섹스를 한다면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지 상상해보았다. 잘 되지 않았다.

“형, 형이 여 오니까 좋다.”

“그래?”

“어.”

지수가 이불 속으로 웅크렸다.

“불 꺼줄 사람이 생겨서.”

“그게 뭐냐.”

기재가 장난스럽게 지수의 다리를 발로 찼다. 지수는 낄낄거렸다. 이불 속은 조금만 뒤척여도 금방 뜨거워졌다. 몇 번 발차기를 주고받다가 똑바로 누웠다. 어둠에 익숙해지자 천장이 보였다. 지수는 역시 금방 잠이 들었다. 오늘도 잠들 수 없는 건 기재뿐이었다. 지수는 코를 골았다.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기재가 천천히 일어났다. 손으로 지수의 얼굴 언저리를 훑었다. 세상이 갑자기 조용해진 것 같았다. 기재가 속삭였다.

“김지수.”

“…….”

“모르는 척 하는 거야, 아님 정말 모르는 거야.”

그러나 세상이 다시 움직였다. 지수의 코골이는 안정적이었고 흐트러지지 않았다. 기재는 맥이 풀렸다. 그러니까 지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역할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안심되는 일이었지만, 동시에 기재를 두렵게 했다. 그러니까 그 누구도 이 겨울에 일어난 재난에 대해 묻지 않는다면, 가족도, 심지어 지수마저 묻지 않는다면, 김기재는 어디 가서 그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하지만 기재가 먼저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해 겨울은 기재에게 아주 길었다. 종종 뒤척이고 잠을 이루지 못 하는 밤이 이어졌다. 우리 엄마가 죽었는데. 혹은 네가 섹스하는 소리를 들었어. 그 무렵 기재의 몸속은 그런 질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말이지 어떻게 말할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2017/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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