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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의 밤 «폭우의 전복성»
1차/old 2019. 10. 30. 00:48

그로부터 스물두 살이 될 때까지, 염하는 인생에 많은 기대를 걸지 않았다. 삶을 뒤바꿀 뾰족한 수를 떠올리는데 시간을 허비하지도 않았고, 신세를 한탄하는데 눈물을 낭비하지도 않았다. 달리 말하자면 삶에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던 셈이다.

그녀가 열다섯 때까지 나고 자랐던 뉴 글로레스 항구엔 창고가 줄지어 선 신식 공장들이 있었는데, 출근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그 구역을 지나가야만 했다. 빠르게 항구가 개발되던 시기였다. 계절마다 공장과 창고가 들어서면 새롭게 고용된 남자들이 멈추지 않는 기계 앞에서 단순노동을 했다. 그들 대부분은 형편없는 임금과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삶을 환멸하고 있었는데, 불행한 점은 그들 모두가 최소한의 근로 소득이 법적으로 보장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할 기회를 단 한 번도 얻지 못 했다는 것이다. 뉴 글로레스 항구의 남자들은 아침과 저녁마다 쏟아져 나오는 여자들이야말로 삶의 유일한 낙이라고 생각했다. 공장단지를 걷다보면 노인, 중년과 청년, 앳된 소년들이 벽에 기대서서 여공들을 보며 휘파람을 불거나 질 나쁜 농담을 던지는 걸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염하를 포함한 모든 여성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불편하게 시선을 피함으로써 불쾌함을 ‘은근하게’ 드러내야 했다. 침을 뱉거나 욕지거리를 하는 여인들도 이따금 있었지만, 남자들이 주먹을 휘두르거나 뺨을 갈겨 보복했으므로 곧 얌전해졌다. 그들은 저들이 벌어온 돈으로 먹고 사는 주제에 괘씸하다고 떠들어대며 그 모든 폭력을 정당화했다. 그들이 방금 주먹으로 갈긴 건 다름 아닌 노동자 계급의 여성이었는데도 말이다. 항구의 남자들은 자신의 시선을 받아내는 모든 여성들이 불편과 증오를 감추거나, 혹은 일부만 정제하여 드러내길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런 주제에 본인들은 서슴없이 여공들의 얼굴, 가슴과 다리 사이를 논하며 낄낄거렸고, 그것에 아무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았다.

뉴 글로레스에서 거주하는 동안 염하가 깨달은 몇 가지 중 하나는 남자들이 노소와 미추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얼굴, 가슴과 다리 사이를 품평하거나 논하며 낄낄거리는 여공들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딱히 아무도 그것을 궁금해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하튼 세상은 여성인 염하에게 지극히 관심이 많아 무엇이든 논하려 들었는데, 그녀가 열세 살이 될 무렵엔 그 모든 것으로부터 환멸을 느꼈다. 항구에서 자란 지난 세월동안 남성들의 무지몽매한 조롱으로부터 염하가 취할 수 있는 저항은 고작 속으로 그들을 용모와 청결 순에 따라 줄을 세우는 일뿐이었던 것이다. 마치 그들이 염하와 여타 여성들에게 그래왔듯이. 뉴 글로레스에서의 생활은 모든 여성의 정신 깊숙한 곳에 체념과 무딤, 그리고 의식적 무지를 거듭 반복해 새겼으며, 염하는 단 한 번도 인생에서 그 세 가지를 배제시키려 시도한 적이 없었다. 다시 말하자면 염하뿐 아니라 모든 항구의 여성들이 인생에 많은 기대를 걸지 않았던 셈이다.

염하의 어머니는 바로 그 세 가지 속에서 성장한 항구의 여성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진작부터 결혼을 염두하던 그녀는 열여섯 살이 되자마자 작은 공장을 소유한 스물아홉 남자의 청혼을 덜컥 받아들이고 동거를 시작했다. 그녀가 사랑 한 톨 없는 결혼을 감행한 건 순전 그가 소유한 공장과 자본 때문이었는데, 그 이유 하나로 그녀는 자신의 선택이 결코 무모하지 않다고 평생을 자부하며 살 수 있었다. 그들의 생계는 결혼한 지 고작 일 년 만에 등장한 아르피아인 소유 신식공장들로 인해 어려워졌으나, 발 빠르게 공장을 정돈하고 하역장 일을 시작하면서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한 마리 당 몇 kg이 넘는 생선을 배에서 내려 크기와 질에 맞게 분류하고 시장에 내놓기 전까지 창고에 수용하는 일은 두 부부에게 그럭저럭 꾸준한 수입을 만들어주었다. 그것은 감자와 당근이 큼지막하게 썰어진 수프와 생선살을 발라 넣은 맑은 국, 헤지지 않은 따뜻한 이불과 불을 꺼뜨리지 않을 충분한 기름이 유지되는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녀는 순조롭게 출산과 육아를 고려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아르피아 여객선 한 대가 항구에 정박하면서 모든 계획은 완전히 틀어지고 만다. 자세히 말하자면, 그녀는 여전히 출산과 육아를 꿈꾸고 있었다. 단지 상대가 호화 여객선에서 막 내린 주황머리의 백인으로 바뀌었다는 점만 달랐을 뿐이었다. 그렇다. 어쩔 수 없게도 그녀는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염하는 태어났을 때부터 어머니의 그늘을 벗어날 때까지 그녀와 아버지의 첫 만남에 대해 지겹도록 들어왔다. 과장된 묘사와 왜곡된 기억 속에서 어머니의 행복이 고양되는 걸 지켜보고 있자면, 염하는 사랑을 곧 출산과 육아로 연결하는 면모가 정말 어머니답지 않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했다. 여하튼 어머니는 발주를 위해 항구에 나와 있던 참이었고, 그 날은 거리에 사람들이 몰려 유독 정신이 없었다. (그녀는 훨씬 나중에야 알았지만)당시 항구엔 총독부와 연합군사령부의 낙하산들과 일부 자산가들이 탑승한 호화 여객선이 막 정박한 참이었다고 한다. 인파에 휩쓸리던 그녀는 결국 정박한 객선 앞까지 떠밀리는데, 넘어지기 직전 팔을 붙잡아 준 것이 바로 염하의 아버지였다. “주황색 머리가 햇빛을 받아 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단다.” 어머니는 그 말을 할 때마다 꿈꾸는 표정을 지었다. “날 일으켜세우곤 뭐라고 말하더구나.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 것도 알아듣지 못 했어.” 평생 묵해 너머의 국토는커녕 만춘조차 궁금해 해본 적 없던 어머니는 그 이후 무섭도록 아르피아의 모든 걸 추적하기 시작한다. 더듬더듬 간단한 아르피아어 인사말을 외우고 헌 서고에서 지리책을 사다 읽으며, 밤이면 주황색 머리카락의 남자를 속으로 그려보았다. 괜히 항구를 서성거리기도 했으나 남자를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염하의 어머니는 그와 일생에 단 세 번 마주쳤다. 한 번은 항구에서, 한 번은 창고에서, 또 한 번은 염하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 기차역 앞에서였다. 창고에서의 재회는 기대한 것만큼 극적이거나 로맨틱하지 않았다. 하역장을 둘러보러 온 사업자들 사이에 껴있던 남자가 근무 내내 저를 흘끔거리는 조그만 체구의 람족 여성을 의식하지 않았다면 그 만남은 맥없이 무산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염하도 세상에 태어날 일이 없었을 텐데.) 어머니는 재회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사업자들 사이에 껴있는 키 크고 멀쑥한 아르피아인의 경제적 능력은 그녀가 한 번도 경험하거나 가늠해보지 못 한 세계의 것처럼 보였다. 그 세계는 자신이 지난 사년 여간 참고 살아온 남편의 수입을 순식간에 형편없게 느껴지도록 만들었으며, 강렬한 사랑 속에서도 미약하게나마 존재하던 죄책감을 깨끗하게 지워버렸다. 그녀는 주황머리의 아르피아인을 어설픈 인사말로 조르고 매달려 간음했다. 아이를 배면 결혼해 어디로든 떠날 생각이었다. 그는 아주 부자처럼 보였다. 만춘으로 갈 거라는 소문을 들었다. 아이를 가진다면, 그렇게 된다면 남자는 그녀를 데리고 만춘에 갈지도 모른다. 아니, 그는 원한다면 그녀를 더 먼 곳으로 데리고 떠나줄 수도 있었다. 지리책엔 너무 많은 영토와 국가가 존재했다. 사시사철 뜨겁고 영원히 울창한 숲이, 혹은 뜨겁고 영원히 메마른 사막도 있었다… 그들은 원한다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을 것이다.

얼마 뒤 남자는 철마를 타고 만춘으로 떠났다. 그녀는 임신했다. 계절과 기차가 끊임없이 떠나고 되돌아왔다. 염하가 태어났고 그녀는 언젠가 떠나게 될 열대우림과 사막 따위를 떠올리며 아이에게 이름(炎夏林)을 지어주었다. 염하(炎夏)라는 건 본디 불타는 계절인데, 그 계절에 영영 갇힌 숲(林)이라면 과연 사랑과 영원의 낙원일 것이 분명하다는 그녀의 개인적인 소망이 담겨져 있는 함자였다. 염하는 한동안 炎夏林, 그러니까 염하림 혹은 옌시아린으로 살았으며, 항구의 여성성을 익혔고 수긍했고 체념하며 꾸준하게 성장하였다. 남자는 오지 않았고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이 아이를 목 졸라 죽이려 들 때마다 “당신 주 거래처랑 아주 잘 아는 남자야, 당신도 기억하지? 걔 죽이면 우리 밥줄도 다 끊기고 말 걸!”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염하의 주황색 머리카락은 그 택도 없는 주장에 근거 없는 신빙성과 두려움을 심어주었고 종국엔 염하의 목숨을 살리게 됐다. 어쨌든 남자가 오지 않는 건 변함없었다. 염하의 존재란 기약 없는 약속의 상징이었고 버려진 여자의 유물이었다. 어머니의 푸념과 망상에 이골이 난 염하는 열 살이 되자마자 자진해서 하역장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열다섯 살 때까지 박스와 거대한 생선을 나르며 살았다.

남자가 뉴 글로레스로 돌아온 건 순전히 사업상의 명목 때문이었으나, 그녀의 어머니는 진작부터 염하를 씻기고 입혀 역까지 끌고 나갔다. 다시 생각해보면 염하는 어머니가 가진 최초이자 마지막 복권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남자는 자신이 남기고 온 딸, 그러니까 어머니의 복권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거절하지 않고 취했다. 그건 어머니가 원하던 결말은 아니었다. 남자가 만춘으로 데리고 간 건 오직 염하뿐이었던 것이다. 기차에 오른 염하는 맞은편에 앉은 생부의 얼굴을 어색하게 노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유쾌하게 웃어주었다. 그리곤 휘파람을 불었다. 그건 염하가 지난 몇 년 동안 항구에서 들어오던 것과 다르지 않은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비슷한 결의 욕망을 감지한 염하는 단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고개를 숙이거나 불편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함-을 시도했다. 창밖으론 바다가 차차 풍경 너머로 사라지는 중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아, 땅으로, 땅으로 계속 달리면 바다가 멀어지기도 하는구나. 그러니까 염하는 열여섯 살에 처음으로 항구와 지리멸렬한 비린내, 고된 노동과 가벼운 임금의 굴레에서 벗어나 만춘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자, 남자들의 시선, 남자들이 누리는 자유로부터 벗어나지는 못 했다는 점에서 그 탈출은 별반 의미가 없었다. 단지 남편의 아이에서 아르피아인의 아이를 원하게 됐던 어머니의 욕망처럼, 세계의 어떤 갈망들은 방향만 바꾼 채 비슷한 결을 유지하며 계승되는 중이었다. 염하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인식했으나 ‘무지’하기로 결심해 ‘체념’했으며, 곧 ‘무뎌질 것’을 기다렸다. 그녀는 영리한 까닭에 필연적으로 무기력했다. 염하가 단지 깨닫지 못 한 유일한 사실이 있다면, 만춘으로 향하고 있는 건 오직 자신의 몸뿐이며 영혼은 여전히 항구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는 것뿐이었다. 요컨대 염하는 어머니와 조금도 다른 구석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인생에 많은 기대를 걸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어머니의 욕망보다도 뒤쳐져 있었다.

염하와 아버지가 막 만춘에 도착했을 때, 세상은 여름이었고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태풍이었을 지도 모른다. 번개가 치고 천둥이 무너지는 가운데 행인들이 뒤집어진 우산을 쓰고 허리를 숙인 채 아무 건물로나 흩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과연 어머니의 기대대로 부유한 모양이었고, 역에서 기다리는 차를 타고 곧장 호텔로 향했다. 그들은 얼마 젖지도 않았다. 모든 게 신기한 동시에 따분했다. 창밖을 내다보았으나 빗방울이 세고 굵어서 풍경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 때, 차가 급정거하며 멈춰 섰다. 염하는 깜짝 놀랐다. 아버지도 그랬던 모양인지 아르피아어로 욕지거리를 하며 일어섰다. 운전사가 밖으로 나가 상황을 확인하곤 바깥에서 손을 흔들었다. 염하는 아버지의 어설픈 만류를 뿌리치고 차문을 열어젖혔다.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길을 막고 서있었다. 비바람이 무너뜨린 것이 분명해 보였다. 과연 바람이 염하의 등을 자꾸만 후려쳐서 몸이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정말이지 억세고 강한 폭풍이었다. 염하는 손을 뻗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굵은 빗방울이 사정없이 얼굴을 때리고 흩어졌다. 그녀는 눈을 감고 주먹을 쥐었다. 아버지가 사다 입힌 인형 같은 옷과 치마가 젖어들도록 내버려두었다. 염하의 영혼이 항구로부터 바람에 떠밀려 오고 있었다. 그것은 쏜살같이 날아와 염하의 정중앙을 관통했다. 아버지가 차 안쪽에서 축축한 염하의 손목을 붙잡았다. “들어와.” 그는 명령조로 이루어진 람어를 썼다. 염하는 눈을 떴다. 마법과 환상의 시간이 깨지고 염하의 영혼은 다시 바람에 떠밀려 사라지는 중이었다. 염하는 그를, 자신의 친부를, 앞으로 자신을 강간하거나 착취하게 될 남자의 얼굴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번개가 쳤다. “네, 그래요.” 염하는 아르피아어로 대답했다. “알겠어요.” 그러니까 그녀는 인생에 많은 기대를 걸지 않았다.

만춘으로 올라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염하는 개명(炎夏霖)을 신청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꿈꾸던 무성한 숲을 베어버리기로 결심한 셈이었다. 림(林)이든 림(霖)이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보였다. 다만 염하는 세계의 한순간을 뒤엎는, 그리하여 마침내는 고작 나무 한 그루로 부유한 타국의 차를 멈추게 만드는 그 거대한 힘, 폭우가 주는 전복성에 마음을 사로잡혔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 순간에만큼은 정말 영혼을 걸었던 걸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런 감각이 다시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염하의 아버지는 개명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화를 내거나 다그치거나 이유를 묻지 않았다. 단지 원래 그래야 했었다는 것처럼, 림(林)이든 림(霖)이든 달라질 것 없는 마지막 한 글자를 지우는 것에 만족했다. 평생을 염하림, 혹은 옌시아린으로 살았던 염하가 마침내 炎夏가 되던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스물두 살이 될 때까지, 염하는 여전하게도 인생에 많은 기대를 걸지 않았다. 삶을 뒤바꿀 뾰족한 수를 떠올리는데 시간을 허비하지도 않았고 신세를 한탄하는데 눈물을 낭비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만춘에서 제일가는 규모의 다방 혹은 무도회장을 운영하며 사치를 부렸고 염하에게 매일 질 좋은 고기와 빳빳한 시트, 최신형의 매트리스 따위를 제공하며 부유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 밤마다 남자들이 무도회장으로 찾아와 염하에게 휘파람을 불었다. 염하는 테이블에 앉아 정산을 했다. 계산을 하고 서류를 정리하고 또 계산을 하고 또……. “딸입니다.” 아버지는 그녀를 그렇게 소개했지만 염하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 해 고개를 숙이거나 시선을 돌려야 했다. 그러니까, 세상 아버지들은 딸을 강간하기도 하는 건가? 남자들을 말이다. 남자들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 어떻게 하면 무시하거나 세상에서 완전히 내쫓을 수 있는지 말이다. 알 수 있다면 좋겠다. 영원히 그치지 않는 폭염과 비속에서 절절 절여지다보면 영혼이 거기 있는 줄도 모르고 태평하던 인간들이 모두 쓸려가지 않을까? 그리하여 영혼을 잃은 여인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영혼을 줍고 또 줍고 또……. 아니, 아니다. 염하의 ‘霖’은 삭제되었다. 폭풍은 오지 않는다.

아버지의 다방 不落花는 아침엔 커피를 팔고 밤에는 재즈와 춤곡, 무대를 판다. 염하의 역할은 그 모든 운영으로부터 오는 돈을 계산하고 받아 적는 업무를 다하는 것이다. 염하는 영악하기도 해서 이따금 돈을 꿍치거나 빼돌려 장부를 작성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아직 정말 그렇게 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마음을 먹는다면 언제든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밤마다 제게 휘파람을 부는 남자들을 속으로 외모부터 청결 순으로 줄을 세워본다. 만춘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멀쑥해서 청결 순으로 줄을 세우기란 어려운 것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재미가 있다. 남자들은 염하를 “재수 없고 불친절”하다고 말하지만 염하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튕기는 맛”이 있어 좋다고 정정한다. 하지만 아무리 염하가 예쁘장하고 귀여운들 그녀의 ‘줄 세우기’를 들었다면 길길이 날뛰며 뺨을 갈겼을 것이다. 항구에서든 만춘에서든 영혼의 존재를 모르는 인간들이란 그런 식으로 나태하고 비극적인 존재가 되고 마는 것. 염하가 욕망한다면 좋겠다. 스스로도 바란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가지고 싶은가?

아니, 무엇부터 “돌려받길” 원하는가? 18연대 3대대는 무엇을 “되찾기” 위하여 싸우는가?

염하는 자신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모든 것은 이 시대 안에 달성되지 않을 것임을 거듭 깨닫고 있다. 무섭도록 영리하기 때문에 무기력하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한 “무딤”과 “체념”속에서 “의식적으로” “무지해졌다.” 그래도 되찾고 싶다. 욕망하고 싶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국가의 영혼을 되찾길 염원하는 3대대와 염하의 이해관계는 일치한다. 시대를 바꿔야 한다면 그 흐름에 편승하겠다. 폭풍 앞에서 기꺼이 비를 맞았던 순간처럼. 그러나 비장하거나 무거운 결심은 아니다. 염하는 인생에 많은 기대를 걸지 않는다. 누군가 그녀 삶에서 또 다른 霖을 지워나간다면, 굴복하는 수밖엔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시대가 뒤바뀔 때까지 살아있다면, 아, 땅으로, 땅으로 계속 달리면 바다가 멀어지기도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산으로, 산으로 계속 달려서 하늘과 가까워져야지. 내 폭풍을 되찾으러 가야지.

요컨대 염하는 포부에 비해 삶에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던 셈이다.

그런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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