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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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썬은 난초방에 배정되어 기뻤다. 그곳에 강아와 닻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두 사람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방으로 들어온 첫날, 힘썬은 짐을 정리하는 강아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자신이 도와줄 일이 없냐고 물었다. 닻이와 힘썬은 마법사였으므로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았던 것이다. 강아는 이미 거의 다 끝냈으니 괜찮다고 씩씩하게 웃었다. 날이 좋아 태양빛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그 속에 서있는 강아는 정말이지 반짝반짝 빛났다. 힘썬은 기쁨으로 얼굴이 흐물흐물해지는 걸 느끼면서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닻 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우리가 열심히 해야겠다고 속삭였다. (뭘 열심히 해? 그것은 힘썬 자신도 잘 몰랐다.)

 원래 차원에서는 공간을 소유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누군가 한 자리에 오래 있다면, 그것은 누구의 자리가 아니라 그 자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 혹은 그 자가 가장 자주 발견되는 자리로 이해되었다. 방을 배정받는다는 것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특정한 공간을 보장받는다는 의미와 비슷했다. 힘썬은 침대를 나누고 칫솔이나 양치 컵을 지정하는 과정이 새로웠다. 닻이에게 닻이 몫의 칫솔을 건네주면서 그녀가 했던 말은 이것이었다 : 나는 이것을 건드릴 수 없어. 사용할 수도 없어. 왜냐하면 이건 닻이 네 거든. 그런 후 덧붙였다. 정말 신기하지? / 뭐가? / 소유하는 거 말이야.

 하지만 방이라는 게 힘썬에게 소유의 과정만을 학습시킨 것은 아니었다. 세 사람은 한 공간을 공유하며 여러 가지를 했다. 침대에 누운 채 대화를 나누거나 샴푸 혹은 린스를 번갈아 나누어 쓰는 일들. 힘썬은 배구수로 빨려 들어가는 강아의 머리카락 한 올을 집어 올리며, 공유 이후에 남는 흔적의 개념을 배웠다. 마법사들은 한 장소에서 쏜살같이 벗어날 수 있었고,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마법사들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자신이 나누거나 사용한 장소에 남기고 떠났다. 힘썬은 강아의 머리카락, 강아가 사용하는 침대 주변을 거닐면 맡을 수 있는 냄새들, 강아가 사용하다 조금씩 부러뜨린 샤프심 따위를 경험하며 강아가 남기는 흔적을 오래 기억하겠다고 결심했다. 그것이 새로운 경험이었기 때문이고, 강아에게서 떨어져 나온 그녀의 파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힘썬이 학습한 것은, 강아라는 존재가 가지는 무궁무진한 호기심과 가능성이 그녀를 더욱 빛나보이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강아는 정말이지 힘썬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힘썬이 살아가던 차원, 다녀본 곳, 그곳의 언어, 행동양식, 사회구조, 개체 수 처음에는 생물학적이거나 통계적이거나 사회적인 질문이 주를 이었지만, 마침내 강아는 이런 것들을 물어보게 되었다.

 “마법사들도 특별히 소중히 여기는 단 하나의 존재가 있어?”

 “마법사들도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껴?”

 “마법사들은 누군가를 어떻게 추억해?”

 “너는 슬퍼한 적이 있니?”

 그것은 상냥함에 대해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질문이었으므로 힘썬은 종종 침대에 두 다리를 뻗고 누워 강아의 호기심에 심취했다. 힘썬 역시 강아에게 학생들의 관습, 행동, 벌점제도(이제는 폐지되었지만 말이다), 유행가 따위를 물어보기는 했지만 그것이 강아에게 어떤 감화를 줄 수 있는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드러내는 질문이 아니라 인간세상을 관찰하고 적응하는데 필요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썬은 언젠가는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강아에게 상냥함을 전달할 수 있는 질문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강아가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개념에 대해 말했을 때, 힘썬은 혈연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인간은 직접 번식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대에 물려주며 대를 이어가는 존재이므로 갑자기 나타나는 마법사와는 달랐다. 그러니까 마법사들은 특별히 누군가와 가깝게 지내야만 한다는 의무도 없었고, 서로의 특징을 물려주어 닮아있는 자들 역시 없었다. 힘썬은 강아에게 물었다.

 “강아에게도 개인적인 관계의 혈육이 있니?”

 분명 있을 것이다. 강아가 대답했다.

 “가족 말하는 거지? 있지! 우리 부모님이랑, 동생이 하나 있어.”

 “동생?”

 “. 여동생 말이야.”

 강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힘썬에게 물었다.

 “마법사들은 가족이 없어?”

 힘썬은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활동하기는 하지만, 인간들의 가족 공동체와는 다른 개념이라고 말해주었다. 마법사들에게는 형 누나 동생의 구분이 없다는 것도. 서로를 닮은 존재 역시 없다는 것도.

 “강아, 너의 동생이 궁금하다. 너를 조금은 닮았겠지?”

 힘썬은 속으로 강아를 축소시킨 뒤에 조금 더 어린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강아의 크기와 나이만을 줄여놓은 것뿐이지 개별의 존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강아의 동생은 강아의 분신이 아니라 별개의 존재다.

 강아가 대답했다.

 “주변에서 닮았다고 많이 말해.”

 그러자 힘썬은 강아의 동생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보고 싶어.”

 힘썬이 다시 한 번 말했다.

 “보고 싶어!”

 “좋아.”

 강아는 기쁜 듯 흔쾌히 수락했다.

 “그럼 이번 주 주말에 내가 소개시켜줄게.”

 힘썬은 주말을 기다리느라 그 주에는 한숨도 자지 않았다. 어차피 숙면을 취하지 않아도 특별히 피곤하거나 괴롭지는 않았다. 그런 식으로 몸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힘썬은 밤에도 원한다면 언제든 깨어있을 수 있었다. 생각할 거리가 있다면 말이다.

 주말이 다가오자 힘썬은 아침부터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뒤에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 강아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강아의 침대에서 하품 소리가 들리자, 힘썬은 헤드에서 고개를 내밀고 강아를 내려다보았다.

 “강아.”

 강아가 기지개를 켜며 응? 하고 대답했다.

 “주말이야.”

 힘썬이 말했다.

 “이제 가도 되니?”

 강아는 잠이 덜 깬 얼굴로 푸스스 웃다가 눈을 비비고는 예의 그 반짝반짝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나 준비할게. 조금만 기다려줘.”

 강아가 세수를 하고 양치를 끝낸 뒤에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힘썬은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강아는 가방을 챙기면서 외출증을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힘썬은 비장한 얼굴로 품에서 두 개의 외출증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마치 은밀한 거래를 하는 것처럼 소리 없는 움직임이었다. 강아는 힘썬이 내민 외출증을 읽어보았다. 재구 선생님이 끊어주신 거였다.

 두 사람은 아직 조금 쌀쌀한 초봄의 거리를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힘썬은 교복을 전부 차려입었고, 강아는 사복차림이었다. 힘썬은 하나도 춥지 않았지만 강아는 몇 번 정도 그녀에게 정말 추운 거 아니지? 정말이지?”라고 물어보았다. 강아의 코끝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 중에서 외투를 입지 않은 사람은 힘썬뿐이었다.

 ‘다음에는 코트를 만들어서 입고 나와야겠다.’

 힘썬은 거리의 사람들을 유심히 살피며 생각했다.

 두 사람은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가지 않아서 내렸다. 걸으면서 강아가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힘썬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강아랑 비슷한 사람이 보이는지 연거푸 확인했다. 혹시라도 지나칠까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강아는 동생에게 제대로 문자를 보냈고, 동생은 약속장소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힘썬은 몇 발자국을 남겨두고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강아가 손을 들면서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단미야!”

 단미가 고개를 돌렸을 때를 힘썬은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강아가 아주 작아진 모습이 거기 서있었기 때문이다.

 힘썬은 할 수 있는 한 눈을 크게 뜨고 온 힘을 다해 단미의 얼굴을 샅샅이 뜯어보았다. 단미는 강아에게 달려오다가 뒤에 우두커니 서있는 힘썬을 보고 머뭇거렸다. 잠시 후 단미가 강아의 종아리 뒤로 몸을 숨겨버렸다. 힘썬은 정신을 차렸다. 버스가 지나가며 매연을 날리는 바람에 주변이 잠시 희뿌옜다.

 “안녕!”

 힘썬이 큰 소리로 말했다.

 “들리니?”

 단미는 여전히 강아의 종아리 뒤편에 숨어있었다.

 힘썬은 잠시 고민하다가 강아 앞으로 다가갔다.

 “안녕.”

 강아가 몸을 비켜주었다. 단미는 아까보다 낮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힘썬을 올려다보았는데, 아마 단미 눈에 힘썬은 거인으로 비추어졌을 지도 모른다. 힘썬은 손을 뻗을지 말지 고민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단미가 힘썬의 종아리로 옮겨가 눈치를 보며 달라붙었다. 힘썬의 머리카락이 기쁨으로 쭈뼛 섰다. 강아가 힘썬의 머리카락을 신기한 듯 만지기 시작했다.

 “안녕, 난 힘썬이야. 네 이름은 뭐니?”

 힘썬은 아까 강아가 단미를 부르는 것을 들었음에도 그렇게 물었다.

 단미는 수줍게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단미.”

 “단미!”

 단미는 가까이서 보니 정말 강아와 똑 닮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수줍음을 타고 관계에 소극적인 지점은 강아와 무척이나 달랐다. 그래서 힘썬은 단미가 강아로부터 떨어져 나온 강아의 분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차이가 힘썬을 설레게 했다. 그녀가 단미의 머리통을 부드럽게 잡고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하자, 단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힘썬을 올려다보았다.

 “언니.”

 “.”

 힘썬이 황급히 손을 떼어내고는 실수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 허락 맡는 걸 잊고 말았어.”

 단미는 둥그렇고 축축한 갈색 눈동자로 힘썬을 꼼꼼히 살폈다. 힘썬은 어쩐지 긴장하게 됐다. 잠시 후 단미가 힘썬에게 고개를 젖히더니 입을 가리며 소곤소곤 말했다.

 “언니는 빛이 나는 것 같아.”

 힘썬은 눈을 크게 떴다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단미를 꽉 끌어안아주었다.

 “맞아, 나는 빛이었어.”

 단미에게서도 강아와 비슷한 냄새가 났다. 미묘하게 달랐지만 분명 비슷한 지점이 있었다. 힘썬이 기숙사를 드나들 때마다 맡았던 그 냄새의 특징이다. 힘썬은 단미가 성격 말고는 모든 게 강아와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이렇게나 같다면 서로에 대한 공감능력이나 대화의 방식이 발달해있을 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그래서 단미를 껴안은 채로 강아에게 물었다.

 “강아, 혹시 너희 둘은 생각이나 감정을 공유하기도 하니?”

 강아는 잠깐 고민하다가 능청맞게 오, 하고 대답했다.

 “맞아, 알아차렸구나? 우리 둘은 텔레파시를 써.”

 단미가 톡톡 힘썬을 두드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짓말이야, 힘썬 언니.”

 “단미야, 넌 너무 양심적이야!”

 강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힘썬은 이 대화의 흐름을 한 박자 늦게 이해하고는 단미의 정직함에 감사하면서 강아에게, 혹시 방금 그것이 강아의 농담이었는데 자신이 못 알아듣는 바람에 강아를 거짓말쟁이라고 만든 거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까까지는 마냥 즐겁던 강아가 갑자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그렇지는 않아.”

 강아가 말했다.

 어쨌든 세 사람은 만났고 힘썬은 기분이 좋았다. 단미 역시도 기분이 좋아보였다. 오늘 강아 언니와 언니의 친구와 함께 놀이동산에 갈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아는 익숙하게 단미의 손을 잡고 앞으로 끊임없이 걸어 나갔고 힘썬은 일부러 발을 늦추면서 두 사람을 하나의 풍경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가족, 혈육, 더 좁게 말해 자매의 관계가 무엇인지 고민해보았다. 모두가 사이가 좋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비슷한 흔적을 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분명 힘썬은 결코 알 수 없을 감정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힘썬은 강아가 가족으로 인해 행복한지를 물어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상냥함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질문을 던지지 않고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것이었구나. 라고 힘썬은 생각했다.

 단미가 손을 뻗었으므로 힘썬이 앞으로 내달렸다. 그녀는 작은 단미의 손을 붙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강아에게 말했다.

 “나도 동생이 있으면 좋겠어!”

 “그래?”

 “, 또 강아가 내 가족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강아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놀이동산에 가서 3인 가족처럼 실컷 놀자고 말했다. 힘썬은 낄낄거리면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 3명이서 그것을 하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강아는 상냥하므로 분명 그것을 물어볼 것이다. 그러면 힘썬은 3명이서 츄러스를 나누어 먹는 일이라고 대답할 생각이었다.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야! 어쩌면 단미도 츄러스를 좋아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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