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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공사장, 가난과 죽음, 향냄새, 기름 뜬 육개장과 차가운 수육, 사람들.
증오.
이것은 진부한 이야기다.

 

1.

남자는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매달려 있다가, 이내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2.

간판이라도 빛나고 있는 건가. 분명 전기를 꺼달라고 했을 텐데. 차유진은 그 때, 고개를 드는 동안 고작 이런 생각들을 했다.

 

3.

“산 사람은 살아야죠.”
맞다,
지나간 일이다.

 

4.

사람들이 노란선 앞으로 몰려들었다. 차유진은 귀에 꽂은 이어폰을 뽑아냈다. 플랫폼으로 끊임없이 안내방송이 울렸다. 지하철이 들어왔다.

2호선은 멈추지 않는 노선이다. 종착역 없이 순환하는 기차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실어 날랐다. 대학가와 번화가를 지날 때면 언제나 행인이 되는 승객보단 승객이 되는 행인들이 더 많았고, 걸핏하면 열차 안은 만원이었다. 차유진은 종종 제 자리를 지키지 못 하고 인파에 떠밀렸다. 문 앞, 취객이 앉은 노약자석 끄트머리, 간밤에 누군가 토한 흔적은 종종 차유진의 자리가 됐다. 탐탁찮은 장소에 머무는 일은 이제 거의 운명처럼 느껴졌다. 차유진은 그곳에서 종종 남은 노선을 세어보곤 했다. 다섯 정거장이 남았을 때도 있었고, 두 정거장이 남았을 때도 있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목적지는 조금씩 달라졌다. 때론 2호선이 아니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2호선이었다. 멈추지 않는 열차는 차유진의 청년 시절을 싣고 달려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처럼 보였다. 스물네 살이 된 차유진은 여전하게도 2호선을 타고 시청으로 향하고 있었으니.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건 아버지의 슬로건이었다. 짜장면, 짬뽕, 새우볶음밥과 깐풍기, 탕수육, 군만두를 지지고 볶고 튀기면서 두 아들을 키워낸 노년의 자부심 같은 소리였다. 그 말은 진부해서 종종 아버지 외의 다른 사람의 입에서도 튀어나왔다. 이를테면 선별급식 기초생활수급자에 포함되던 날 교무실에 유진을 앉혀둔 담임들의 입에서, 가정 사를 읊다말고 담배를 태우던 선배의 입에서, 저를 취직시켜준 물류창고 담당부장의 입에서.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니까 말이야. 그들은 힘내라는 듯 어깨를 툭툭 쳐내고, 입술을 씰룩이며 웃었다. 그게 몇 년쯤 반복되자 정말로 부끄럽지도 않게 됐다. ‘가난’과 ‘부끄러움’에선 언제나 지글거리는 고추기름냄새가 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잠시 세탁소에 취직했던 유진은 언젠가 자신의 입에서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는 말이 튀어나올지, 그렇다면 과연 거기선 기름 냄새가 날지, 아님 섬유유연제 수증기의 냄새가 날지 상상하곤 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유진의 집은 언제나 서울 근처를 맴돌았다. 수도권에서 벗어난 적은 없지만 서울에 입성해본 적도 없었다. 서울 집값은 올라갈 줄만 알지 떨어질 줄 몰랐다. 수도권 신도시 개발이 줄줄이 시작된 가운데 서울과 몇 분 거리라는, 근처에 역이 들어선다는, 대충 그런 조건의 땅덩어리들 가격도 마찬가지였다. 서울과 가깝다는 이유가 그들 몸값을 배로 불렸다. 유진의 가족은 세 번 이사했다. 파주, 동두천, 그리고 다시 파주. 신도시 개발에서 밀려난 주택단지와 빌라는 구석에 방치돼 서서히 부식했다. 발정 난 고양이들이 애옹애옹 울어대고, 술 취한 사내들이 아무렇게나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지리는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다세대 주택 근처에 올린 15층짜리 아파트에 이사했을 때, 유진은 중학교 삼학년이었고 그의 형은 스물 셋이었다. 학비를 벌겠다고 형은 물류창고에 들어갔고, 유진은 방학이면 거기 가서 소포와 박스를 날랐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컨베이어 밸트가 뱉어내는 소포를 트럭에 쌓는 일이었다. 고된 일이었기에 사람들은 자주 도망갔고, 유진은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할 때마다 한 달 오만 오천원치 휴대폰 요금을 떠올렸다. 하루 일당이 끝나면 사무실에서 수고했다고 충무김밥 팩을 나눠줬다. 그걸 우걱우걱 씹을 땐 벌써 막차 끊긴 새벽 2시였다. 집은 언제나 트럭 운전하는 부장이 데려다줬다. 형 차진한과 유진은 뒷좌석에 앉아 딱딱한 김밥을 쉴 새 없이 입에 욱여넣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면 대충 새벽 2시 20분이었다. 이부자리에 누우면 씻을 기운이 나지 않았다. 땀 냄새와 함께 몸이 고통으로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유진은 그게 남들보다 빨리 늙어가는 감각임을 알았다. 어둠 속에서 종종 진한이 속삭였다.

“너무 오래 가난했더니 가난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

그 무렵엔 그게 차진한의 슬로건이었다.

서울 곳곳에 구멍이 뻥 뚫리고 사람들이 죽은 날에도 두 형제는 컨테이너 밸트 앞에 서서 박스를 나르고 있었다. 차유진은 서울대재난을 라디오로 기억한다. 한산한 새벽 도로를 달리는 트럭 안에서 둘은 충무김밥을 먹다 말고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담당 부장이 지나가는 말처럼 ‘서울에 무슨 테러가 있었다더라.’했다.

“얼마나 죽었는데요?”

차유진은 그렇게 물었고,

“얼마나 무너졌는데요?”

차진한은 그렇게 물었다.

그 때의 간극이 기묘해서, 차유진은 한참 뒤에도 종종 그 순간을 떠올리곤 한다. 여하튼 그 때 부장은 “글쎄다, 어쨌든 많이 죽고 무너졌겠지.”라는 모호한 대답을 내놓았고, 둘을 집 앞에 내려준 뒤 내일 보자며 손을 흔들었다. 컨테이너 밸트는 사람이 죽었든 건물이 무너졌든 계속해서 소포를 뱉어냈기 때문에 차유진은 얼마 뒤 서울대재난이라던가, 사람의 죽음이라던가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하지만 차진한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인지 한 달 뒤 불쑥 일을 그만뒀다. 그리곤 집을 나갔다. 남겨진 유진은 진한 없는 물류창고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철가방을 들었다. 유진의 동네엔 아파트보다 주택이 많았고, 주택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아버지의 짬뽕, 짜장면이 불지 않게 뛰어다니면서 유진은 주말과 여름방학을 보냈다. 일은 계속됐고 돈은 다달이 부족했다. 성적을 용케 유지한 게 놀라울 정도였다. “넌 영리한 애니까. 그래, 대학은 가야지. 좋은 곳으로 가야지.” 세 달 만에 연락한 진한은 유진의 학기 성적을 전해 듣곤 그 소리를 했다. 그 무렵의 진한은 어디서 벌었는지도 모를 돈을 유진의 통장으로 꽂아주며 떵떵거리길 좋아했다. 얼핏 듣기론 대재난 이후 대대적으로 진행된 보수 공사판에서 구르고 있다고 했지만 진한은 유진에게 아무것도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은 그저 추측이 됐다.

어쨌든 살아간다는 것은 지난한 일임과 동시에 어떻게든 계속되는 일이다. 아파트에 이사하고부터 아버지의 짜장면 집이 보다 잘 됐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서 간신히 벗어난 그는, 국가가 마련한 안전망을 벗어난 까닭에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 하던 참이었다. 그게 꼭 이 세상엔 너보다 가난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고, 그러니 징징거리지 말라는 세상의 경고처럼 느껴졌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유진은 진한이 달마다 보내주는 돈으로 대부분의 것을 유지했다. 영어 학원을 등록했고 계속해서 공부했다. 이제 진한의 전화는 생명 줄처럼 느껴졌다. 진한의 떵떵거림이 계속될수록 차유진은 비굴하지 않은 어투로도 넌지시 부탁하는 법을 배웠고, 그럼에도 차진한은 유진이 제게 비굴해지기를 바랐다. 아버지가 유지하는 아파트에서 차진한이 유지하는 학원을 다니는 것은 대체로 비굴함과 비굴하지 않음의 줄다리기였다. 차유진은 살아가는 법이란 과연 비굴함과 비굴하지 않음의 사이, 그러니까 -함과 -하지 않음의 사이를 절묘하게 유지하는 일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수험이 다가왔다. 차유진은 뜻하지 않은 성인이 되고 말았다. 높게 쓴 대학 두 군데가 붙었고 성적에 맞춰 쓴 곳 한 군데가 붙었다. 차유진은 전액 장학금을 주는 곳으로 서류를 밀어 넣었다. 그 무렵엔 차진한의 전화도 드문드문했다. 그가 대입 축하와 함께 마지막으로 유진에게 마련해준 것은 강서구에 위치한 작은 자취방이었다. 연락은 그것을 마지막으로 뚝 끊어졌다.

서울에 입성한 차유진과 2호선의 굴레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대학 입학을 기다리던 유진은 교통비를 벌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 단기적이고 보수가 센 아르바이트, 이를테면 높은 빌딩에 매달려서 창문을 닦거나 공사판을 구르는 일 따위들, 그러니까 죽음이 도처에 있다는 이유로 시급이 배로 뛰는 일들 말이다. 차유진에게 그것들은 컨테이너 밸트의 짐을 나르는 일과 비슷하거나, 혹은 더 쉽게 느껴지곤 했는데, 도처에 있는 죽음만 무시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었다. 두려움을 잊으면 63층이고 15층이고 매달릴 수 있었고 가느다란 판자를 밟고서도 마르지 않은 시멘트 건물 사이사이를 뛰어다닐 수 있었다. 와중에도 아버지와의 연락은 지지부진한 여우비처럼 이어졌다. 잘 지내고 있니? 서울은 좋고? 진한이랑은 연락 되니? 차유진은 모든 것에 no를 붙이고 싶었고 동시에 모든 것에 yes를 붙이고 싶었다. 그 진부한 질문마다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 직전, 그러니까 차유진의 스무 살은 안개에 감싸인 것처럼 비슷하고도 흐릿한 풍경의 반복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가 기억하는 가장 강렬한 기억은 철과 빛과 피와 헐떡거림과 희수의 얼굴뿐이었다.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기억하는 것은 그것이면 충분했다.

유진의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오기로 결심한 것은 차유진이 대학에 입학하기 꼭 일주일이 남은 무렵이었다. 입춘이 지났다지만 날씨는 겨울이나 마찬가지였고, 차유진은 공사판에서 장갑을 낀 채 조금씩 입김을 뱉어내고 있었다. 번화가에서 진행되는 건물 보수 작업이었다. 아니다, 아직 지어지기 전 건물이었던 것 같다. 아니아니, 사실 잘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 근무 도중 유진은 휴대폰 진동을 느꼈고, 줄에 매달린 채로 전화를 받았다. 너 지금 일하는 곳이 어디 역 근처랬니? 차유진이 늘 바쁘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고, 진한이 집을 떠난 이후론 특히 유진에게 더욱 지극정성이었다. 이것저것 챙겨왔다. 지금 근처니까 잠깐만 보자.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차유진은 알겠다고 대답하며 줄을 잡아당겼다. 오층 높이에 매달려 있던 몸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고개를 들면 역이 보였고, 아버지는 인파에 섞여 차유진이 매달린 건물을 향해 걷고 있을 것이었다.

불길한 느낌을 받은 건 그 때였다. 머리 위로 강렬한 빛이 쏟아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끼쳤다. 무언가 잘못될 것임을 직감한 자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차유진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보았다. 자신의 머리통 위에 매달려 있던 남자가 갑자기 몸을 웅크리는 것을. 남자는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매달려 있다가, 이내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직감하는 순간부터 이미 한참 늦은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죽음 같은.

그 때 차유진이 예감한 것은 죽음이었다.

 

5.

간판이라도 빛나고 있는 건가. 분명 전기를 꺼달라고 했을 텐데.
아, 고작 그런 생각들이라니.

 

6.

행인들은 3층 높이에서 떨어진 남자를 둘러싸고 모여들었다. 차유진은 헐떡이며 줄을 잡고 매달려 있었다. 누군가 전화로 앰뷸런스를 불렀다. 남자는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죽었어? 떨어졌대? 저기서? 공사하다가? 사람들은 저마다 공포와 놀라움으로 떠들어댔고 남자는 여전히 누워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깨진 머리통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는 비명을 질렀다. 머리를 감싸 쥐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는 저를 구경거리 보듯 하는 행인들에게 분노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이 떨어졌는데 휴대폰을 들이대는 미친 짓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는 미쳐서 날뛰기 시작했다. 공사판엔 손에 쥘 수 있는 많은 흉기가 있었고, 그는 보도에 깔다 만 블록을 들었다. 차유진은 공중에 매달린 채로 남자가 행인 한 명을 때려죽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남자는 멈추지 않고 인파를 쫓았다. 그가 다음으로 잡은 것은 인파에 떠밀려 주저앉은 늙은 남자였다.

고백하자면 차유진은 처음엔 그 사람이 제 아버지인 줄 몰랐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건 요컨대 모든 걸 작아 보이게 만들었으니까. 보도블록에 얼굴과 어깨를 가격 당한 늙은 남자는 유진의 아버지라기엔 너무 왜소했고, 쓰러질 때조차 목소리 한 번 내지 못 했다. 하지만 차유진은 문득, 저 남자가 입은 파카가 너무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차유진은 다급하게 바닥으로 내려오다 말고 헛디뎌 떨어졌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 말고 벌떡 일어난 유진은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쓰러진 아버지를 향해 내달렸다. 빛을 뿜으며 추락한 남자는 이제 차유진의 아버지를 넘어 다른 누군가를 쫓아 도로를 내달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광기에 휩싸인 것처럼 비명을 지르면서도 계속해서 이 소란으로 몰려들어 기웃거리기를 반복했다. 운전자들이 클락션을 때려댔다. 도로가 마비되고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차유진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피를 흘리고 있는 아버지를 흔들었다.

“아버지…….”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 들리세요?”

아버지는 차유진의 손 안에서 힘없이 늘어졌다. 이명이 돌았다. 세상의 소음은 하나의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유진의 귀를 후벼 파기 시작했다. 차유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은 여전히 빙글빙글 돌고 있었고 차는 빵빵거렸다. 행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가운데 미쳐 날뛰기 시작한 살인마는 이제 아무나 잡히는 데로 때려죽일 것처럼 굴고 있었다.

차유진은 누군가 인파를 뚫고 오는 것을 보았다. 차유진 또래의 청년이었다. 그는 멍하니 앉아 있는 유진과 쓰러진 유진의 아버지를 번갈아 바라보곤 유진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의료인, 응급, 이라는 단어가 드문드문 들리다 말았다. 그의 목소리는 물속에서 듣는 가사처럼 잘 들리지 않고 먹먹하게 울렸다. 차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대답 대신 계속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무슨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두 번 정도 그렇게 중얼거리자, 남자는 곧 유진에게 말을 거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리곤 엎드린 채 유진의 아버지 쪽으로 붙었다.

차유진은 제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 낯설고 낯선 청년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세상은 끔찍할 만큼 조용했는데 바람이 계속 불어서 둘의 머리카락을 자꾸만 흩날리게 했다. 차유진은 모든 게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멈춰야 했다. 하지만 남자는 멈추지 않고 쓰러진 차유진의 아버지를 붙잡아 가슴을 눌러댔다. 아버지는 경련하지도 않았고 헐떡이거나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차유진은 갑자기 분노를 느꼈다. 멈추지 않는 것들에 대한 분노였다. 차유진은 고개를 들어 거리를 내달리는 미친 남자를 노려보았다. 죽여 버려야지. 찢어 죽여야지. 터뜨려 죽여야지. 으스러뜨려 죽여야지. 그럼 멈추겠지. 그럼 바람도 멈추고 이명도 멈추고 아버지의 죽음도 멈출 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유진이 거리를 향해 내달리기도 전에 누군가 차유진을 단단히 붙잡았다. 차유진은 몸부림치며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중얼거리면서 애원했다. 놔주세요. 저희 아버지나 봐주세요. 놔주세요. 가서 죽여야 해요. 제가 가서 다 멈춰야 해요. 하지만 청년은 차유진을 놔주지 않았다. 구급차가 도착하고 미친 남자가 도로를 내달리다 말고 사라지기 전까지, 차유진의 모든 증오와 분노와 무력함은 제지되었다. 그것이 종국엔 차유진을 살렸음을 알았지만, 어쨌든 구급차에 타는 도중까지도 유진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고, 모든 게 끝난 뒤 누군가가 유진에게 말해주었다.

 

7.

양희수는 그 날 차유진의 아버지를 살리진 못 했지만, 차유진을 살릴 수는 있었다.

고마워해야 하는 일일까?

훗날 차유진은 계속해서 그 생각을 곱씹어야만 했다.

하지만 종국엔 빚을 진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차유진은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으니까.

잘된 일이다.

 

8.

장례식은 빠르고 조촐하게 끝났고, 그 언젠가 사람이 죽고 건물이 무너져도 계속 움직이던 컨테이너 밸트처럼 차유진의 삶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뒤 유진은 희수를 만날 기회가 더 있었지만 희수에게 많은 걸 묻지는 못 했다. 훗날 양희수가 결국 차유진에게 내놓은 대답이란 이런 것이었다 : “산 사람은 살아가야만 하는 것.” 차유진이 그 말에 대체 무어라 대답할 수 있었을까? 어떤 대답이었던 충분치는 못 했을 것이다. 그 날 구급차에 앉아 아버지의 사망 선고를 듣던 유진과 희수에겐 끊어낼 수 없는 감정의 고리가 생겼고, 그건 돌이킬 수 없었다. 차유진은 그걸 죄책감이라 생각했다. 양희수가 그걸 어떻게 생각할 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유진은 그것을 죄책감이라고 생각하려 애썼다. 그리고 그걸 잊지 않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그 사건을 곱씹었다. 트라우마였다.

 

9.

차유진이 가진 모든 불행은 진부했고, 그런데도 계속 대학을 다니고 일을 찾아야 했다는 점에서 모든 서사는 비극적이고도 희극적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너무 빠르게 ‘지난 일’이 되어버렸는데, 차유진이 2학기를 마치고 방학을 맞이했을 즈음엔 모든 게 그럭저럭 무뎌져 있었다. 그 무렵 차진한은 국회의원이 됐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진한반점’을 정리하느라 바빴던 차유진은 그에게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 TV 지역방송엔 종종 진한이 나왔다. 가난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야망에 찬 얼굴이었다. 자신과는 동떨어진 세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자가 지을 수 있는 표정이었달까. 여하튼 그래서 마법부니 뭐니 하며 나타난 두 사람이 차유진에게 몇 가지 제안을 늘어놓았을 때, 차유진은 순간 ‘왜 형이 아닌 내게 왔을까’를 생각해야만 했다.

마법이라니.

차유진과는 너무 동떨어진 세계였던 것이다.

확실히,

그런 건 차진한하고 더 어울렸다.

 

10.

하지만 차진한은 아버지의 죽음을 모른다. 빛나는 남자를 본 적도 없었다. 가난을 벗어나 새 궤도에 올라 있었고, 죄책감을 몰랐고, 죽음에 대해 직감해 본 적도 없었고, 그리고…
다시 말하자면 마법 같은 건 필요도 없는 지점에서…….
아니, 어쨌든
지나간 일이다.

 

11.

장례식이 끝났던 봄날엔 벚꽃이 우수수 떨어졌고, 눈을 감았다 뜨니 겨울이었고, 마법에 대해 들었고 선택지를 받았다. 차유진이 시청을 찾아가기로 한 데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충분한 생활 비-하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 날 밤 차유진이 끊임없이 빛나다 말고 미쳐버린 남자와 깨진 머리통들, 피와 헐떡거림과 철의 냄새를 떠올리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 될 수밖에 없었고, 종국엔 그런 것들이 그를 시청으로 떠미는 데 힘을 보탰다. 3년 후 그곳에서 다시 양희수를 마주칠 거란 것을 알았더래도 차유진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건 변하지 않는다. 아버지를 살려내지 못 했다고 증오하기엔 희수가 너무 가엾다. 하지만 동시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그 증오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희수만큼은 기억해야 한다. 그 날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을. 가능하면 제 얼굴을 보며 오래 곱씹어주길 바랐다. 그러니까 성륜에 희수가 들어올 것을 알았더라 하여도 차유진은 변함없이 마법이라던가, 죽음이라던가 그딴 것들을 선택할 수밖엔 없었을 것이다. 결국은 다 돈 때문이라고 변명하면서. 죄책감 같은 건 계속 지고 다니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죄책감의 양면이 증오라는 것을 굳이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삶이란 그런 식으로 지지부진 이어져왔던 것이니까.

그래서 차유진은 여전히 2호선을 타고 시청으로 향한다. 말했지만 그리하여 죄책감으로부터 시작된 이것은 진부한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

이것은 진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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