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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치이 «야망의 시대»
2차/old 2019. 10. 24. 19:18

댄스스포츠 만화 <볼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나오카 시즈쿠 x 히야마 치나츠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그 해의 캐치프레이즈는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였다.

 유명 개그맨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읊은 후 자서전에 한 번 더 인용한 것이다. 다자키, 라고 불리는 그는 흔히 말하는 개천의 용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 어렵게 공부하여 대학을 나온 후, 어렵게 어렵게 대성공을 거둔 사람이라고 한다. 소년이여… 그것은 그의 책상에 항상 붙여둔 문구였다. 마법의 주문처럼, 힘들 때마다 중얼거리며 높은 대학을 지망하고 방송국 입사를 준비했다고 했다.

 다자키는 멸치처럼 생겼고, 그의 개그코너에선 언제나 뚱뚱한 개그우먼이 함께 나왔다. 만담의 내용은 대체로 이렇다. 비가 온다. 둘은 차양 아래에 서서 하늘의 동향을 살핀다. 다자키가 가지고 있는 것은 일자형 우산이고, 그의 파트너 개그우먼이 가지고 있는 것은 접이식 우산인데, 그녀의 우산은 고장이 났는지 좀처럼 펴지질 않는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져서 둘은 기다리기를 관두고 밖으로 나온다. 그녀는 다자키가 자신을 ‘당연히’ 두고 갈 것이라 생각해 고장 난 우산을 붙들고 끙끙거리고 있다. 그 때, 다자키가 우산을 펼치고 뒤를 돌아보는 것이다. (객석에서 사랑스러운 탄식이 터져 나온다.) 그 모습에 몹시 감동을 받은 개그우먼이 과장된 몸짓으로 빗줄기를 뚫고 다자키를 향해 돌진한다. 놀란 다자키가 피하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의 몸집으로 인해 총알처럼, 우산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 이 때 다자키의 뒹굴거리는 모습이라던가, 바둥거림이라던가, 그런 일들이 아주 심혈을 기울여 극대화 된다. 객석도 시청자들도 뒤집어지는 건 바로 이 순간이다. 우산에 남겨진 건 개그우먼이고, 쫄딱 젖은 건 다자키가 되는 것이다. 만담은 늘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가, 이런 식으로 웃겼다가, 이런 식으로 막을 내렸다. “아키코는 저의 좋은 파트너라고 할 수 있죠.” 유명 잡지사 인터뷰에서 다자키는 그렇게 말했다. 좋은 파트너라. 그게 뭘까? 그것은 분명, 연인이나 부부 같은 거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화면 속의 다자키는 다음 질문에서 펄쩍 뛰며 고개를 젓는다. “아니요, 아키코는 그저 좋은 친구일 뿐이죠.” 아시잖아요, 다들? 황급히 붙이는 뒷말에서 나는 그의 저열함을 느꼈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어서 TV를 껐다. 아홉 살 때다.

 어쨌든, 그 해의 캐치프레이즈는 변함없이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라디오가 방송되고 자서전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무렵, 동급생 남자아이들 모두가 그 문장을 입에 달기 시작했다. 청소도구함에서 빗자루를 꺼내 칼싸움을 하다가도, “소년이여!” 담장에 오줌을 갈기다가도, “소년이여!” 주번을 농땡이 치고 도망갈 때도, “소년이여!” 그 해의 야망에선 치졸한 냄새가 났다. 얼굴을 찡그린 채, “그 바보 같은 말 좀 그만 할 수 없어?”라고 면박을 주면, 으레 이런 대꾸가 돌아왔다 : 사실 부럽지? 치나츠는 소년이 아니니까!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그렇다. 나는 소년이고 싶었다. 소년들은 하잘 것 없다. 세계의 소년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의 소년들에게 한정된 사항일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게 다 다자키 때문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무엇이 야망인 줄도 모르는 소년들에게 넘어가버린 세상의 어떤 가치가, 그런 식으로 차차 망가지고 있었다. 앞에서 말한 것과는 다소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자키는 여러모로 저열했다. 목소리 큰 멍청이들은, 세상에 원래부터 존재하던 좋은 것들을 어떤 집단의 것으로 한정하고자 애쓴다. 하지만 야망은, 본래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누구만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의 것이 되어버린 이상, 내가 어찌해볼 틈도 없이 그 해의 캐치프레이즈는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가 되어버린 것이다.

 멍청이들의 주장은 오래 가지 않는다. 역사책을 보건데 길어도 한 세기를 넘는 일이 없다. 시대는 영리해서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 반드시 그런 유물들을 처리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빼앗긴 야망 역시 언젠가 모두의 것으로 돌아올 텐데, 그렇지만 그래도, 역시 한 세기까지는 너무 길다. 일본의 소년들이 마구 망쳐서 돌려준다면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선, 제대로 보존할 수 있는 소년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소년들을 믿을 수는 없으므로, 그렇다면 그 중대한 일을, 내가 해야겠다. 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소년이 되는 수밖엔 없지 않는가. 소년이 되고 싶다…… 그렇게 믿던 때도 분명 있었다. 지금은 믿지 않는다.

 내 책상에는, 그 해의 캐치프레이즈가 높게 붙여져 있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치나츠는 소년이 아니지만,” 이라고 아버지가 머쓱하게 말하며 회사에서 얻어온 슬로건을 나는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처음에는 그대로 그것을 걸고 있었다. 소년이여, 를 볼 때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치나츠, 부럽지? 넌 소년이 아니니까!’ 나는 혀를 깨물었다. 당연하지. 너희에게 주기엔, 야망이 너무 아까워죽겠어! 아홉 살의 나는, 다자키가 일본 전역에 뿌려놓은 그 포자들만 아니었어도 조금 더 유순한 성격이 되었을 거라고 믿는다. 세계에 대한 근심을 보다 덜어놓고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나는 어린이만 되었어도, 나는 청소도구함 빗자루로 먼지를 날리는 녀석들의 엉덩이를 걷어차거나, 담장 앞에서 바지춤을 붙잡는 녀석을 무안하게 하거나, 주번을 도망간 녀석을 두들겨 패지도 않았을 텐데. 아마도… 그랬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역시 망아지인 편이 좋았다. 

 그게 좋다.

 

 야망을 쫓는 자

 그 해에는 우후죽순 되새김질 되는 캐치프레이즈만큼이나 일등이 많았다. 산수 일등, 받아쓰기 일등, 문학, 수학, 과학 부문의 우수자들… 사실 어느 해에든 일등은 숱하고 줄어드는 법 없이 자꾸 늘어나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댄스만 해도 그렇다. 아홉 살 때만 해도 크고 작은 현 대회를 제외하면 JDSF 그랑프리와 전국 선수권 대회가 전부였는데, 지금은 도민 대회라던가, 모금 행사를 위해 제단에서 설립한 특수 대회라던가, 여러 가지가 있다. 덕분에 중학교 때는 나도 작은 대회에서 몇 번 시상대에 올라가 보았다. 파트너인 아키와 틀어지는 바람에 모두 나쁜 기억이 되었다고 화를 낸 적도 있지만, 결국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나중엔 곱씹게 되었다.

 하나오카 시즈쿠와 효도 키요하루를 본 것은 바로 그 아홉 살 때다. 도민 대회가 벌어진 작은 볼룸(ball room)장에 누구보다 꼿꼿하고 우아하게 서서 먼 곳을 보고 있었다. 플로어로 들어오는 그 애들을 보았을 때, 아…… 저 아이들이 일등을 하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애쓰지 않아도 예전부터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나는 눈도 좋고, 감은 그보다 더 좋다. 센스라고 생각하고,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 덕분에 늘 즐겁게 춤을 출 수 있었다. 하지만 나보다 훨씬 더, 압도적으로 높은 곳에 도달한 누군가들을 마주하게 되면 다른 사람보다 쉽게 괴로워진다. 어중간한 우수함 따위 노력하면 재칠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너무 높은 곳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굉장한지 백 퍼센트 깨달아버려서, 노력이나 일정한 센스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벽이 있다는 것을 실감해버리고 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일등이었다. 사실, 언제나 꼭대기에 있었다. 과거형과 미래형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현재형의 “우수함”을, 그 애들은 늘 가지고 있던 것이다. 나는 그 때, ‘앗, 야망이 아깝지 않은 소년을 결국 찾아내고 말았다…….’고 생각했다. (찾아내고 말았다니, 정말 이상한 말이다. 아쉬웠냐고? 물론이었다.) 효도 키요하루는 굉장히 크고 빠르게 움직였다. 공들이지 않아도 그렇게 보이게 하는 재능이 있었다. 쓸모없는 힘을 쓰지 않아서 과하지 않게 느껴졌다. 노력은, 노력이라는 것은 굉장히 무겁고 진중한 것인데, 센스는 그렇지 않다. 센스는 가볍고 경쾌하며, 부드럽고 온화한 것이다. 그리고 효도 키요하루의 춤은 때때로 백 퍼센트의 센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노력을, 안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노력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 그런 순간이 있었다. 나는 물리적인 시간을 초월하는, 그것을 앞서서 꿈틀거리고 싶어 하는, 그런 힘이 키요하루의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맹수 같았다. 다 잡아먹어버리고 싶어서, 다 잡아먹은 주제에, 무언가를 더 노리고 있었다. 스탭을 밟다가 그를 마주친 순간, 나는 하마터면 홀드를 놓칠 뻔 했다.

 ‘잡아먹힌다!’ 

 …고 생각했던 그 때, 아키가 내 발을 꾹 밟아 눌렀다. 그 애는 겁을 먹고 있었다.

 ‘치이, 뭐 하는 거야!’

 벼락처럼 정신이 돌아왔다. 아차, 싶었다.

 아키가 나보다 더 겁을 먹고 있었기에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음악이 끝날 때까지 어떻게 췄었는지, 그 날의 기억은 도무지 선명하지가 않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엔트리 넘버 17번이 가장 마지막에 호명되었던 순간이다. 하나오카 시즈쿠와 효도 키요하루는 단상 위에 올라서서 객석을 바라보았다. 효도의 표정은 다소 지루해보였다. 그렇게나 멋진 춤을 췄으면서 영광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 모든 게 따분하다는 표정으로 좀 더 먼 곳을 보고 있는 효도의 표정에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건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오카 시즈쿠가 고개를 숙였을 땐,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하나오카였다면 완전히 겁을 먹었거나, 압도당했거나, 혹은 효도를 ‘버텨냈다’는 것에 다소 우쭐해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아닌 하나오카 시즈쿠는, 내가 아니기 때문에 굉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오카는, 분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쫓고 있었다. 야망을… 쫓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자를,

 가지고 자꾸 멀어지는 자를,

 효도 키요하루를,

 쫓고 있었다.

 어쩌자고 나는 고작 아홉 살에, 그런 엄청난 것을 시선으로 처음 획득해버린 것일까.

 춤을 포기할 수 없게 되어버린 걸까.

 그 날, 집으로 비틀거리며 돌아온 나는 이 세상에서 야망을 가져간 누군가들을 끊임없이 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비디오를 보았다. JDSF 그랑프리 플로우 위에서, 리더의 움직임을 쫓는 파트너들을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무수한 하나오카 시즈쿠들이 거기 있었다. 야망을 돌려줘! 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아찔해졌다. 방바닥으로 드러눕자 시선이 핑그르르 돌면서 책상 위에 붙여둔 캐치프레이즈가 눈에 들어왔다. 음악은 계속되는 중이었다. 벌떡 일어나게 됐다.

 나는 의자를 밟고 올라가서 그것을 떼어냈다. 화이트로 잔뜩 힘을 주고 벅벅 그어서 지웠다. 소년(少年)을, 少를 가로지르는 그 막대기 하나만 지우면 누구든 괜찮았는데. 어째서 그것을 한 세기동안이나 기다리려고 했을까……. 아니, 한 해(年)도 채 걸리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데. 그랬을 텐데.

 깔끔하게 지워진 자리에, 나는 매직으로 힘주어 썼다.

 소녀(小女)여, 야망을 가져라!

 캐치프레이즈 따위, 엿이나 먹으라지.

 그 날은 하나오카 시즈쿠의 꿈을 꾸었다.

 

 파트너

 코모토 아키라는 동급생으로, 아홉 살에 댄스를 시작한 나의 파트너다. 같이 시작한 것은 아니고, 동네 유일의 댄스홀 강습에서 마주쳤다. 아버지의 권고로 시작한 것이라 진지하게 임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우아하고 예쁘잖아, 잘하면 여자력 있어 보이고. 그렇게 말하며 아키는 바비인형 같은 웃음을 지었다.

 주니어로 텐페이 배에 출전할 기회가 있었을 때, 우리를 제외하곤 엔트리를 희망하는 아이들이 없어서 그녀와 조를 짜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로 쭉 연습에서도 홀드를 하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파트너가 되었다. 효도-시즈쿠 커플을 마주친 건 우리의 노비스 스탠더드 전이 있은 후 바로 그 다음 경기에서였다. 막 아마추어를 벗어나 랭크를 달고 들어온 우리에게 그들의 존재가 자못 크고 묵직하게 느껴졌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재미로 하는 것뿐이니까, 하고 코웃음을 치던 아키가 연습 내내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였던 건 분명 그 때가 처음이었다. 치이, 좀 더 잘 추고 싶어. 열심히 하면, 이길 수 있을까? 아키는 물었다. 우리는 그 경기에서 입상은커녕 순위권 근처에 랭크되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아주 프로의 세계인 것도 아니었는데, 아주 프로인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 성적은 자신감도 자존심도 짓눌렀다. 그 애의 조그맣고 말랑말랑한 손을 잡으며, 나는 하나오카 시즈쿠를,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서도 고개를 숙였던 그 애를 떠올렸다. 글쎄. 나는 대답했다. 하지만 쫓아가봐야지.

 아키는 솔직히 말해서, 실력이 좋지 않았다. 아주 나쁜 것도 아니었지만, 아니, 때때로는 나빴다. 키도 작았고, 손발도 짧았다. 그 애와 움직이려면 보폭을 평소의 삼분의 일만큼은 줄여야 했다. 아키에 맞춰 리드를 하는 건 꽉 끼는 옷을 입고 팔을 휘두르는 것처럼 불편했다. 강습소에 좀 더 크고 널널한 사람이 있었다면 아키 같은 거, 당장에 벗어버렸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 당시의 나는 막연히 조급하기만 해서, 눈앞의 파트너를 따라가기보다 스스로의 실력을 발휘하는 게 더 중요했다. 하나오카 시즈쿠는 착실히 랭크를 올려가고 있었다. 하나오카 뿐만이 아니다. 하나오카들, 세상의 무수한 하나오카들도 마찬가지다. 야망을 돌려달라고 하기엔, 나 역시도 믿음직스럽지 못 해서 분했다. 빨리 나가서 함께 싸우고 싶었다. 플로우를 공유하고 싶었다. 그 전장을… 하나오카 시즈쿠를, 다시 본다면.

 그 애가, 더는 분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면,

 그 순간을 반드시 같은 플로우에서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조급해졌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아키는 분명 나의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와 부딪혀야만 하는 파트너였으니까. 때로, 춤은 섹스 같다. 어쩌면 섹스보다 더 굉장한 섹스일 지도 모른다. 몸도 마음도 격렬하게 부딪히고,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으로 움직이는지,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그래서 흔히 파트너 사이를 부부사이 혹은 결혼에 견주는 걸지도 모른다. 제아무리 나라도 아키가 다른 파트너와 춤을 춘다고 상상하면 질투가 나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아키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좋은 부부 사이는 아니었다.

 중학교 내내 우리는 많이 싸웠다. “무섭단 말이야!” 어느 날 연습실에서 아키가 내 손을 뿌리쳤다. 그 무렵의 나는 아키가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움직이고 싶은 곳으로 그녀를 힘껏 휘두르곤 했다. “치이는 너무 난폭하고 제멋대로 굴기만 해. 여성스럽지도 않고, 상냥함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어. 리드만 하더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아키는 화를 낼 때도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할퀴는 법이 없었다. 상대를 느긋하게 바라보면서, 비꼬거나 조롱하는 투로 치부를 거침없이 찔러댔다. 그 애는 몸을 섬세하게 움직이지는 못 했지만, 마음을 섬세하게 움직일 줄은 알았다. 연약한 부분을 금방 알아차리고 사납게 뜯어냈다. 내가 몸으로 그녀를 휘둘렀다면, 아키는 마음으로 나를 휘두른 셈이다. 불공평한 싸움 같은 거, 우리 사이엔 없다. 어차피 엔트리를 하면 여자-여자 파트너는 대체로 우리 둘뿐이었다. 둘뿐인 세상이다. 소년 따위가 없어서 오히려 그 때는 편했다. 죄의식도 두려움도 없이 서로를 힐난하고 물어뜯을 수 있었다. 음악이 다시 시작되는 중이었다. 아키가 비웃었다.

 “설마 본인이 남자라도 되는 줄 아는 거 아니지?”

 우리는 으르렁거리면서도 홀드 자세를 취해 손을 붙잡았다.

 “치나츠, 뭐라도 된 듯 굴지 마.”

 “어머, 그래?”

 나는 터뜨릴 것처럼 그녀의 손을 쥐고 거칠게 허리를 꺾었다. 악! 소리 없이 아키가 내 품에서 고통스러워한다. 눈으로 놓치지 않고 조소했다.

 “어차피 네가 이 랭크로 엔트리 할 수 있는 건 나 덕분이면서.”

 삐걱거리는 몸으로 아키가 나를 쏘아보면서 입술을 물었다. 솜씨 좋게 휘두르는 사람이 없으면 아키는 바보 같이 움직인다. 짜리몽땅하고 형편없다.

 “으스댈 거면 실력으로 눌러봐, 아키라.”

 그리고 난 분명 아키를 휘두를 수 있는 굉장한 리더였다.

 늘 이겼다.

 아키는 고교생으로 진학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내게 팔로우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내가 부탁한 적도 있지만, 거절했다. 엔트리를 할 땐 늘 내가 선수 이름을, 그리고 아키가 그 옆에 파트너 이름을 써넣었다. 선수 번호를 등에 달고 플로우를 누비며 아키를 휘둘렀다. 다음 히트를 준비하면서 매일 같이 싸웠다. 아키가 괜한 고집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신장의 간소한 차이 같은 건 파트너 댄스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화를 냈다. 그럼 아키는 언젠가, 내 앞에서 지어보였던 그 바비 인형 같은 반들반들한 미소로, “어머, 싫다. 치이, 이런 식으로 내숭 떠는 거 진짜 성격 나빠 보이는 거 알지? 나도 내가 키가 작은 것쯤은 자각하고 있는 걸.”이라고 대꾸했다. 다 알고 있다는 얼굴을 보면, 치가 떨리면서도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입 밖으로 낸 적이 없어도 서로의 생각이나 감정을 다 알게 되는 것은 분명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원하는 부분도, 원하지 않는 부분도 춤을 추다보면 전달된다. 그렇게 기분 나쁜 일이 또 있을까? 다음 히트에서 플로우로 나왔을 때, 아키는 말했다. “짜리몽땅한 사람이 어떻게 키 큰 사람을 휘두르겠어, 안 그래?” 홀드를 잡은 아키의 손에서 짙은 복수심이 느껴졌다. 춤을 추는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 타인의 감정이 나의 구석구석으로 스며드는 감각은 비에 젖는다거나, 음악에 몸을 맡기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차원을 가지고 있다. 피부를 통과하지 못 하는 외부세계의 유물들과는 달리, 감정은 내부세계로부터 왔으므로 내부세계로밖에 이동하지 못 하고 핏줄을 따라, 심장을 따라, 목구멍으로 숨구멍으로 뇌로 흘러들어온다. 언젠가부터 그 마음이 마치 나의 것이었던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만다. 휘젓고 지배한다. 아키는 말하고 있었다.

 어차피 넌 내가 어디 쪽으로 가던 네 멋대로 출 거잖아.

 그리고 춤이 끝날 무렵, 나는 믿어버리고 말았다.

 맞아. 너를 휘두르는 감각이 좋아.

 나는 그 날, 아키에게 졌다.

 

 Channel

 좋은 파트너라. 그게 뭘까? 그것은 분명, 연인이나 부부 같은 거겠지…….

 “아니요, 아키코는 그저 좋은 친구일 뿐이죠.”

 “으스댈 거면 실력으로 눌러봐, 아키라.” 

 아시잖아요, 다들?

 “치나츠, 뭐라도 된 듯 굴지 마.”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치이, 좀 더 잘 추고 싶어. 열심히 하면, 이길 수 있을까?

 그러나 내가 아닌 하나오카 시즈쿠는, 내가 아니기 때문에 굉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어서 TV를 껐다.

 늘 이겼다.

 

 타타라

 고교생을 준비할 무렵 나는 혼자가 되었다. 아키가 새 파트너를 구해서, 나 역시도 응당 그렇게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아키를 비난할 수는 없다.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고교생이 된다는 것은, 주니어 그랑프리를 졸업한다는 뜻이다. 설령 우리가 원한다고 할지라도 함께 엔트리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춤을 가능한 오래, 멈추지 않고 추고 싶다면, 플로우로 돌아가고 싶다면, 새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소년이 필요하다. 분하지만, 춤의 세계에도 그 해의 캐치프레이즈와 같은 맥락의 힘이 존재한다.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아키 덕분에 의식적으로 자각을 미루고 있었다. 번쩍, 정신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춤을 추면서 ‘파트너를 찾는다’는 개념을 실감해본 적이 없다. 아키라가 아닌 다른 사람과 춤을 춰야 한다는 불안도 분명 존재했지만, ‘정말 댄서가 되는 구나…….’라는 두근거림으로 잠들 수가 없었다. 모순적이고 납득 불가능한 질서로 유지되는 세계였기에, 모순과 납득 없는 일들을 겪게 되는 자신이, 세계에 제대로 편승하고 있구나, 하고 안심하게 되는 것이다. 첫 맞선을 잡은 날, 몇 번이고 잠들지 못 해 자리를 벅차고 이불 밖으로 나왔다. 책상 위에 높게 붙은 캐치프레이즈가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거울 앞을 서성거리다 씩 웃어보았다. 익숙하고, 어딘지 기분 나쁜,

 바비 인형 같은, 미소였다.

 나는 운이 나쁜 게 아니다. 센스도 있고, 눈도 좋고, 팔다리도 길다. 목을 꼿꼿하게 세우고 우아하게 걷는다. 힘들이지 않고도 날렵하게 다리를 뻗고, 리듬에 빠르게 반응한다. 누구나가 나를 돌아보게 만들 수도 있다. 그 시선에 대한 욕심도 있다. 나는 춤을 출 때 완벽해진다. 아름답기 때문에, 분명한 자신이 있다.

 그래서 파트너를 찾는 게 더 힘들었다. 효도 키요하루 같은 소년은 많지 않다. 소년들은, 일본의 소년들은 자존심이 쓸모없이 센 주제에 실력은 형편없었다. 자신이 우습게 보일까 봐 많은 것을 두려워하고 신경 썼다. 춤에 도무지 집중하지 못 한다. 어떤 소년은, 심지어는 스탭 도중 내 발을 밟기도 했다. 그들은 우습게 여기지 않아야 우습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모른다. 진지하지도 못 하면서 실력조차 인정하지 않는 그들을 감당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야망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비로소 야망할 수 있는 사람들은 진작 프로의 길을 찾아 떠났고, 나는 이제 막 프로가 되기 위하여 아마추어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포기하기 않으려 애썼지만, 마지막 맞선 상대가 탱고 도중 내 엉덩이를 움켜쥐고 웃는 순간 모든 걸 관두기로 결심했다. 겁쟁이라고 해도 좋다. 나는, 가장자리에서조차 이런 세계라면 중앙으로 나아갔을 때 버텨야 할 부조리함이 두려웠다. 동시에 그런 세계에조차 들어가지 못 하고 헤매고 있는 자신이 한심했다. 하지만 내가 헤매는 건, 이런 세계기 때문이 아닌가. 여자끼린 엔트리 할 수 없고, 여자에겐 등번호를 주지 않고, 선수로 등록되지도 않고, 요컨대 소년이 없으면 야망 같은 거 꿈꿀 수도 쫓을 수도 없는, 이 세계가 오히려 동떨어진 게 아닌가. 그 해의 캐치프레이즈는 이미 지나갔는데. 지나갔는데도.

 ‘그렇다면 댄스 같은 거, 촌스럽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관뒀다.

 방학 내내 춤추지 않는데 성공한다.

 후지타 타타라와 만난 것은 고교생에 진학한 첫 날로, 내 뒷자리에 앉아있었다. 파트너가 되기까지 조금 오래 걸렸다. 처음에는 파트너로 삼을 생각조차 없었다. 나는 춤추지 않겠다고 오기를 부리고 있었을 때였기 때문에, 그 세계가 내 기분을 풀어주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온몸으로 시위하고 있었다. 봐, 그만두기엔 아깝지 않아? 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랐다. 나중에 타타라가 내게, “사실 치이가 경험자라는 걸 알았을 때,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 놓치고 싶지도 않았어. 파트너가 간절해서라기 보단, 좀 더……. 아깝다, 고 생각하게 되었던 마음 때문이라고나 할까.”라고 실토했을 때, 나는 결국 댄스가 나의 것이고 그 세계가 아직 나를 버리지 않았음을, 그러니까 나 역시도 부정하거나 버려서는 안 되는 것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아키라 때와 똑같이, 그저 어쩌다보니 파트너를 맞이하게 된 거라고 생각했지만, 타타라가 그렇게 말해준 후로는 진심으로 이 아이와 댄스를 하자… 고 매순간 다짐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자주 부딪혔지만, 타타라는 좋은 애다. 미련하기도 하고, 또 미련하기 때문에 낯설 만큼 강해지기도 한다. 댄스를 우습게보지 않아서 초심자임에도 결코 우습게 보이지 않는다. 굉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아이 역시 야망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고 있다. 그렇게 느껴진다. 야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분명 아닌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다루거나 획득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그것은 조금 불만이다. 겨우 맞춰갈 상대를 찾았는데, 아직 다가가야 할 세계가 너무 많이 남은 것이다. 일본의 소년들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효도 키요하루처럼 “발휘되는 천재”도 아닌 그가 나를 어떻게든 다뤄보려고 할 때면 언짢아서 심술을 부리고 싶다. 그의 리드는 지배보다 권고에 가까워서, 응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닌데 응하기에도 시원찮은 느낌이 있었다. 타타라 본인은 그것을 실력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HSDA 효도 소셜 댄스 아카데미(조금 억울하다. 어째서 타타라는 이런 사람들과 가까운 거야?)로 자진해서 입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 타타라의 억지가 있기는 했지만, 시즈오카 그랑프리에도 엔트리 했다. 한 달 전에 막 D급을 받은 사람치곤 너무 조급하다고 느꼈다. (심지어 마리사 선생님은 말리셨는데도!)

 그래도 타타라가 그렇게 하자, 고 하면 따라주게 된다. 왜일까……. 그것은 아키와 같고 싶지 않은 내 자신 때문일 지도 모른다. 이 아이가 조급해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휘둘리다 편할 대로 손을 놓아버리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타타라의 억지는 기분 나쁜 느낌이 아니라 기껍게 따라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타타라가 좋으니까 파트너로서 가능한 만큼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타타라에게 집중해버리고 만 것이다. 스스로의 조급함을 잊고 타타라의 조급함에 맞추어 춤을 추게 되었다. 하나오카 시즈쿠의 분하기 그지없다는 표정을, 그 무렵의 나는 거의 잊고 있었다. 팔로우가 어렵지 만도 않을 때까지. 이 세계가 어렵지 만도 않을 때까지.

 어려워지지 않을수록 잊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길 만큼은 못 했다.

 

 카루이자와

 하나오카 시즈쿠를 다시 마주친 것은, 카루이자와에서였다. 첫 그랑프리를 엉망으로 마친 후 떠난 합숙 훈련이었다. 하나오카는 거기 있었다. 독일에 있는 줄 알았는데. ‘돌아왔다’고 말했다. 하나오카의 말은 미묘하게 나를 고양시켰다. 먼 곳으로 자꾸만 나아갈 것처럼 보여도, 결국 우리는 언젠가 근원점으로 돌아온다. 쉬고, 적당히 먹고, 실력을 키운 후 다시 날아간다. 세상 모든 만물이 ‘어쩔 수 없이’라도 닮은 점이 있다면 우리는 철새를 닮았을 것이다. 하나오카의 둥지가 일본이라서 감사했다. 만약 그녀가 해외 선수였고, 그것도 가까운 한국이나 중국 같은 곳이 아닌 유럽, 영미권 국가에서 왔다면 나는 애초부터 우리가 다른 곳에서 왔음을 실감하고 오기조차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오카를 만만하게 본다는 뜻은 아니다. 세계엔 많은 캐치프레이즈가 있을 테니까. 그것뿐이다.

 저녁밥을 먹고 나서 방으로 돌아갈 무렵, 하나오카가 따라왔다. 얇은 원피스 안으로 희미하게 실루엣이 비치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고 복도 끝만 보았다. 무슨 말이 좋을까. 걷는 내내 생각하다가, 역시 춤 이야기가 좋겠다. 하고 말을 꺼내려던 참에 하나오카가 먼저 말을 붙였다.

 “그랑프리 예선 두 종목에서 올체크를 받았다는 소리 들었어.”

 “아…….”

 나는 당황해서 조금 삐질거렸다.

 “응, 그렇지. 마리사 선생님은 나가지 말라고 하셨지만… 타타라가 원했어.”

 “나가지 말라고 하셨구나.”

 하나오카는 무언가 납득한 듯 음, 하고 말꼬리를 늘였다.

 “그런데도 나갔다니, 타타라는 가끔 무모해지는 면이 있네.”

 “그래서 종종 말려들고 말아. 싫은 기분은 아니지만 제멋대로 일을 벌였다면 그에 응해준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확실히 해줬으면 좋겠어.”

 나는 하나오카에게 타타라가 저지른 어이없는 실수를 이야기했다. 한 종목이 더 있는 줄도 모르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만 있었던 일에 대해서다. 이름이 잘못 등록되어 타타라가 아니라 요시요시가 되어버린 것도, 제멋대로 끌고 간만큼 제멋대로 춤을 추다가 멍청하게 멈추어 섰던 것도, 실격처리 되어 대회장을 나설 때조차 얼이 빠져있었다는 것도. 하나오카가 중간부터 웃기 시작했으므로 나는 남몰래 안도했다. 하나오카를 무서워해서는 아니었다.

 나는 마리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빌려 대화를 이어나갔다.

 “우승하지 않으면 출전의 의미가 없는 거니까.”

 내 이야기처럼 으스대기 시작하니 목소리가 과장되어 흘러나왔다. 아마추어 톱의 파트너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평소의 텐션보다 훨씬 고양되어 있었다.

 “…그래서 마리사 선생님이 마지막 기회를 주신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럼 치나츠는 다음 경기에서 꼭 우승해야 하는 거야?”

 “그렇다니까!”

 방은 깔끔하고 넓었다. 시트를 벗겨내는 동안 하나오카는 장을 열고 시트를 차례로 개어 넣었다. 이제 나는 타타라에 대해 불평을 쏟아내고 있었다. 진심은 아니었고, 투정에 가까웠다. 반은 농담이었다.

 “지금 루틴은 오래 췄으니까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역시 타타라는 기분에 따라 댄스가 바뀔 때도 있고 해서…….”

 일체감에 대한 것이다. 타타라는 나보다 춤을 못 춘다. 못 춘다, 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지극히 단순하게 실력과 체형에 관한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경험에 있어서는 타타라나 나나 거기서 거기였고, 견줄만한 차이는 없다. 내가 팔로우 경험이 없어서, 안 그래도 리드 경험이 적은 타타라와 삐걱거리는 것도 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내가 타타라에게 백퍼센트 응해주지 않는다. 위로 올라갈수록 심사는 까다로워 질 텐데, 타타라는 여전히 기분에 따라 나만큼이나 제멋대로 군다. 그럴 때면.

 “불안해.”

 “응, 응. 리더가 멋대로 춤추면 파트너는 곤란하지…….”

 하나오카는 나의 칭얼거림은 건성으로 달래는 것 같으면서도 문제를 적확하게 지적했다.

 “‘리더의 홀드 범위 안에서 얼마나 표현할 수 있느냐’가 파트너의 실력을 가르잖아.”

 뜨끔, 했다. 난 그렇겐 못 한다. 하지도 않았다. 실력보다는 성격의 문제다. 빠르게 대답하지 못 하는 나를 등지고 섰던 하나오카가, 소리 나게 장문을 닫았다. 쾅, 소리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하나오카는 팔짱을 낀 채 진지한 얼굴을 했다. 장문에 기대어 내 쪽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나를 보고 있지는 않았다.

 “커플 사이의 일체감을 추구하는 건, 댄스의 영원한 테마 중 하나일 거야.”

 나는 갑자기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응.”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렇지…….”

 그 날은 결국 하나오카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본 적이 없게 되었다.

 부끄러운 날들이 이어졌다. 타타라와 싸우게 되었다. 대회는 다가오는데 바리에이션은 고사하고 족형 연습부터 난관이었다. 타타라는 많이 조급해하고 있었고, 조급한 만큼이나 빠르게 늘었다. 타타라의 조급함에 맞추어 춤을 추던 나는 어느 순간 타타라의 갈피를 잡지 못 하게 되어서, 자꾸만 어긋났다. 팀워크는 최악이었다. 모두가 보고 있는 앞에서 싸웠다. 하나오카도 거기 있었다. 부끄러워서 죽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커플 사이의 일체감을 추구하는 건, 댄스의 영원한 테마 중 하나일 거야. 그런데 우리는 그 영원의 테마를 완성하기는커녕, 일체감조차 추구하고 있지 않았다. 타타라가 미웠다. 타타라가 미웠다. 정말 미웠다. 그렇지만 정말 미운 것도 아니었다. 미워하지도 좋아하지도 못 하는 건 비겁하다. 제대로 마주보고 있지 않아서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도 알 수 없다. 나는, 그런 자신에게 화가 나있었다…….

 합숙이 중간으로 접어들었을 무렵부터, 나는 타타라와 춤을 춰주지 않았다. 타타라는 필사적이었다. 어디든 따라오며 커플 연습을 하고 싶다고 졸랐다. 어떻게든 기분을 내거나 풀어보려고 애써주었지만, 문제는 타타라에게만 있는 게 아니어서 그만두었다. 타타라가 이런 식으로 내게 맞춰주려고 하는 것에 화가 났다. 우습게 보이는 것 같았다. 내 팔로우를… 믿지 않는 것처럼 굴면서 본인의 춤에도 확신이 없어서, 나를 어디로 끌고 갈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타타라. 그런 주제에 조바심을 내면서 어떻게든 내가 응해줬으면 하는 것이 보인다. 한 번 그렇게 멋대로 끌고 가서 어처구니없이 실격을 당해놓곤, 여전히 자신을 믿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타타라를 믿기 이전에 내 자신을 믿지 못 하게 되어서, 설령 응하고 싶었다 하더라도 응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타타라에게 진지한 만큼이나 제대로 부딪히고 싶었다. 형편없이 추면, 보이게 될 테였다. 하나오카는 스튜디오에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춤을 추지 않을 때마다 매번 보고 있었다. 타타라를, 보고 있었다.

 ‘분하지만, 네가 잘해야 한단 말이야, 타타라!’

 타타라가 잘하지 못 하면 내 자신이 ‘보여지지’ 않는다. 댄스는 그래서 치사하다. 그래도 그 치사함 속에서조차 역량을 발휘하지 않으면, 결코 보여지지 않을 세계에서, 나는 춤을 추고 있다. 보이고 싶다. 나 역시도 춤을 추고 있노라고 모두에게 말해야 한다. 그러니까 나를 봐줘. 봐주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춤추고 있는 내가, 타타라만큼이나 보여 질 수 있다면.

 소녀여, 야망을 가져라!

 그러니까, 내내 상상해본 그림이 있다. 나는 어쩐지 무엇이든 불평하고 있고, 불평하지 않는 하나오카에겐 아마추어의 정상급인 선수가 리더로 서있다. 하나오카를 쫓기 위해선 뒤쳐진 타타라와 앞서가는 효도를 성취해야한다. 어째서 그런 일이? 타타라는 답답하고 효도는 까마득하다. 둘 다 어려운 벽이고 난관이다. 투덜투덜. 투덜투덜거리는 것이다. 그럼 갑자기, 하나오카가 쾅, 문을 닫으며 팔짱을 낀다. 나를 보지도 않고 말한다. 타타라는 가끔 무모해지는 면이 있네. 그리곤 뒤이어 묻는다. 히야마, 넌 어디쯤 왔어? 나는 한 번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 한다.

 하나오카 시즈쿠와 춤을 출 기회가 있었다. 타타라와의 팀워크가 완전히 붕괴되어서, 따로 연습을 하고 있을 때다. 각자 섀도 연습을 하다말고 하나오카가 다가와 내 어깨를 만졌다. 멀리서 볼 땐 날씬하고 부드러워 보였는데 직접 내려앉은 손은 단단하고 제법 묵직한 감이 있었다. 긴장으로 동작이 뻣뻣해졌다. 하나오카는 내 어깨를 주무르면서 천천히 내려왔다.

 “여기선 이렇게 하는 편이…….”

 손이 미끄러지듯 선을 훑다 말고 멈추어 섰다.

 “좋아…….”

 시선이 마주쳤다. 곧 천천히 떨어지면서 손의 감각이 사라졌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좋아.”

 그리고 거울을 통해 하나오카를 보았다. 그러자 하나오카가,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거울 속의 하나오카는 여섯 발자국도 넘게 떨어져있었다.

 “고마워.”

 그 뒤에도 우리는 종종 손을 잡거나 바싹 붙어서 춤을 출 수 있었다. 섀도 연습에선 어김없이 하나오카가 자세를 봐주었다. 힘주어 누르거나 미끄러질 때마다 거울을,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오카를 보았다. 이렇게 가까우면 안 돼, 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좀 더 멀리 있어야만 할 것 같단 말이야. 다시 말하자면 이런 거다. “이렇게 나에게 오면 안 돼.” 그러니까,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줘.”

 억지인 건 나도 안다.

 

 혼자의 세계

 히야마, 그게 뭐야? 하나오카가 시선으로 물었을 때, 나는 트렁크를 뒤지고 있었다. 옷가지들 사이에 누렇고 퀴퀴한 무언가가 있었다. 나조차도 모르는 물건이었다. 티와 속옷을 한쪽으로 치워내자 모습이 드러났다. 화이트로 조잡하게 지워놓은, 그 해의 빌어먹을 슬로건. 소년이여, 아니 소녀(小女)여, 야망을 가져라!

 “악, 아빠!”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황급히 옷을 주워 넣는데, 하나오카가 무릎을 접고 앉아 들여다보고 있었다. 별 거 아니야, 라고 조금 둘러댔다.

 “책상에, 붙어있던 건데, 댄스 합숙 훈련이 있대서… 응원이 될 거라고 생각했나 봐. …아빠는 이걸 굉장히 좋아하거든.”

 “히야마가 만든 거야?”

 하나오카는 캐치프레이즈를 빼내어 즐겁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화이트로 긋고 매직으로 쓴 걸 손가락으로 훑으며 후후, 웃었다. 나는 시선을 피했다.

 “아니… 왜 있잖아. 하나오카도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유명했던 개그맨.”

 “아, 알아. 확실히 다자키, 라는 이름이었지. 유명한 코너를 했다고 들었어.”

 “그래, 그거야.”

 “아……. 알아들었어.”

 하나오카가 턱을 괴고 슬로건을 내려놓았다. 여전히 즐겁다는 눈치였다.

 “캐치프레이즈, 그 해에 이런 슬로건으로도 나왔던 거구나. 정말, 희미했는데 다시 기억났어. 맞아, 그런 캐치프레이즈도… 있었지.”

 “주변 남자애들이 다들 꽥꽥거리며 읊어 대서 난 싫었어.”

 “응, 응. 알아, 그 기분. 어째서 소년인 걸까, 라고 생각했지.”

 하나오카는 다시 한 번 후후, 웃었다.

 “그래서 히야마는, 소녀여, 로 고쳐버린 거구나.”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을지 몰라서 어색하게 웃었다. 한쪽 입 꼬리만 성공적으로 올라갔다.

 “응, 분해서 말이야…….”

 헤집어놓은 옷을 정리하는 동안, 하나오카는 계속 슬로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히야마는 그래도 다자키의 팬이었구나.”

 나는 의중을 몰라서 고개를 들었다. 하나오카는 나를 보고 있었다.

 “고쳐서라도 슬로건을 걸어놓았으니까. 코너, 재미있었나봐.”

 “본 적 없어?”

 “TV는 댄스가 아니면 잘 안 봐.”

 “형편없어. 하나도 재미없어.”

 얼굴을 찡그렸다. 빗소리와 우스꽝스러운 우산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팬이라서 걸어놓고 있던 건 아니야.”

 “어떤 점이 형편없었는데?”

 나는 하나오카를 바라보았다.

 “그 코너엔 늘 함께 나오던 개그우먼이 있어. 누군지 이름 기억해?”

 “음…….”

 하나오카는 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아니, 어렴풋하지만 기억 안 난다.”

 “응, 모두가 그래.”

 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 점이 형편없어.”

 하나오카는 동조도 반박도 하지 않았다. 하나오카의 손에서 누렇고 구깃구깃한 슬로건을 빼냈다. 접어 넣는데, 하얗고 단단한 손이 시야의 정중앙으로 들어왔다. 내 손등을 덮었다가 약하게 쥐었다.

 “히야마는, 그게 분해서 고친 슬로건을 걸고 있던 거야?”

 하나오카를 가까이서 볼 자신이 없었는데 방에는 거울이 없었다. 나는 전등에 비쳐 희미하게 반짝이는 하나오카의 매끈매끈한 손톱을 내려다보았다.

 “맞아. 기억하려고 그랬어.”

 나는 나머지 한 손으로 내 손등을 덮은 하나오카의 손등을 잡았다. 고개를 들어 마주보았다.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눈동자가 새까맣고 빛을 받아 윤기로 반들거렸다. 이런 얼굴로 분한 표정을 짓고 야망을 쫓는다. 그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래서 잊지 않았어.”

 하지만 난 분명 하나오카를 한 번은 잊어버렸다.

 “그러려고… 노력해.”

 “좋은 일이네.”

 하나오카가 손등을 빼냈다. 나는 슬로건을 정돈해 가방으로 집어넣었다. 열린 창문으로 밤공기가 쏟아졌다. 풀벌레가 울고 있었다. 각자의 할 일을 한다고 조용해졌다. 캐리어를 닫고 침대 위로 올라왔다. 하나오카는 창문을 닫았다.

 “후지타와는 좀 어때?”

 나는 침대에 쓰러지다말고 고개를 들었다.

 “정말 싫어!”

 “정말 싫은 거야?”

 “사실, 정말 싫은 건 아니야.”

 “그럴 것 같아. 치이, 하고 부르니까 사이 좋아 보여.”

 “절대 그렇지 않아!”

 “좋은 파트너 같아?”

 “잘 모르겠어.”

 베개 위로 쓰러지면서 숨을 토해냈다.

 “좋은 파트너라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

 “댄스계에선 보통 연인이라 부부 사이 같은 거라고들 하잖아?”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잖아.”

 “맞아.” 하나오카는 한 번 더 중얼거렸다.

 “꼭 그런 것만도 아니야.”

 나는 하나오카의 표정이 보고 싶어서 고개를 들었다.

 “하나오카는, 좋은 파트너란 뭐라고 생각해?”

 “음.”

 하나오카는 창밖을 보았다. 먼 곳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상대에게 의지하는 것보단 자극을 주는 존재 같은 거라고 생각해.”

 “이를테면?”

 “라이벌… 같은 거야.”

 나는 단숨에 감을 잡았다.

 “효도가 그렇게 말했어?”

 “응. 그래서 굉장히 놀랐어.”

 하나오카는 몹시 기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봐선 안 될 얼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는데도, 고개를 숙이거나 시선을 피할 수 없어서 자꾸만 보게 되었다. 불가항력이랄까, 그 눈은… 내가 결코 닿거나 쟁취할 수 없는 지점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 세계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 어쩌면 평생을 노력해도 난 저곳에 닿을 수 없을 지도 몰라… 하고, 더 막연해지는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베개 위로 얼굴을 쏟았다.

 “부럽다. 하나오카는 효도와 춤추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하는구나.”

 “히야마는 그렇지 않아?”

 “즐겁기만 한 건 아니니까.”

 “나도 효도와 춤추는 게 즐겁기만 한 건 아니야.” 

 하나오카가 말했다.

 “하지만 사로잡히는 한순간이 있어.”

 “이를테면?”

 “이를테면…….”

 하나오카는 언젠가, 있는 힘껏 허리를 젖혔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제 2히트, 왈츠. 효도는 컨디션이 좋았다. 결승이었고 사람이 많았다. 플로우 위의 커플 수가 줄어들수록 객석이 찬다. 심사위원들의 눈은 신경 쓰지 않았다. 추고 싶은 만큼 추면서 즐겼다. 효도가 재능과 노력으로 무장하여 ‘날뛰고 있었다.’ 사로잡혀서 평소보다 더 크게 움직이게 되었다. 리듬이 돌아왔을 때 머릿속이 새하얬다. 발을 뻗으며 빙그르르 돌았다. 효도가 지탱했다. 넘어지지 않을 거라고 믿게 해주었다. 그래서…… 힘껏 허리를 젖혔다.

 “히야마… 그 때 나는, 완벽히 거꾸로 뒤집어진 세상을 처음 보았어. 비뚤어지거나, 기울어지는 법이 없이, 객석의 사람들은 공중에 있고, 댄서들은 허공에서 몸을 움직이는 거야. 정작, 나를 받쳐주고 있는 효도는, 그 세계에 온데간데없는데도.”

 하나오카는 서늘한 표정을 지었다.

 “그곳에는, 나만이 제대로 서있었어.”

 숨을 죽였다.

 “나는, 오롯이 나만이 뚜렷이 남아있던, 그 외로운 세계가 좋았어.”

 이야기가 끝났지만 어떤 대답이 올바를지 몰라서 머리를 굴렸다. 생각나는 게 없었다. 나는 이런 쪽으로 머리가 나쁘다.

 “난 그런 걸 경험해본 적은 없어.”

 솔직하게 말했다.

 “질투나.”

 “어느 쪽을 질투해?” 

 하나오카, 너무해!

 “비밀이야.”

 “너무한 걸.”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알고 싶어.”

 하나오카가 다가왔다. 일어나서 올려다보자, 하나오카가 여러 의미로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림자가 드리워서 그렇게 보이는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하나오카 시즈쿠는 내게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위압감이 있었다.

 “춤추지 않을래?”

 “그래도 돼?”

 새벽 1시였다. 마지막 레슨이 끝난 참이고 모두는 푹 자고 싶을 테다. 아침에는 모두가 돌아가야만 한다.

 “스튜디오는 방음이 잘 되는 걸.”

 “와아, 글쎄. 나는 무서워.”

 “손 같은 건 온천에서 거침없이 잡아줬잖아?”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하나오카가 손을 내밀어서, 나는 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게 되었다. 새침해 보였을 지도 몰라. 그러나 나에게는 거절할 이유 같은 게 없다. 말했지만 나는 이런 쪽으로 머리가 나쁜 사람이다. 단순하기 때문에 솔직하게 밀어붙이는 면이 있다. 따지자면 나의 주 종목은 마음보단 몸이다. 하나오카도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키과일지도……. 마음속으로 마구 고개를 저었다. 그거, 진짜 약오르단 말이야!

 나는 손을 힘주어 잡았다.

 “난 몰라!”

 하나오카는 말없이 후후, 하고 웃었다. 대답하는 대신 깍지를 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미지근한 것도 아니었다. 온도의 문제가 아닌 감각의 문제다.

 그런 건 언제고 중요하다.

 

 릴리스, 릴리스

 우리는 새벽의 빈 스튜디오 불을 밝히고 안으로 들어왔다. 넓고 깨끗하고 땀 냄새가 없다. 하나오카가 연습용 루틴을 고르는 동안 머리를 묶었다. 왈츠가 나왔다. 하나오카는 나와 스탠다드 왈츠를 출 생각인 모양이다. 타타라와 자주 연습하는 곡이라는 걸 알고, 나를 배려해준 걸지도 모른다. 다른 걸 못 추는 건 아니었지만, 제일 익숙한 걸 고르자면 왈츠다. 그 히트는 자신이 있었다. 하나오카는 머리를 올리며 다리를 쭉 뻗었다. 그리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다음 다음 마디에서 들어가자.”

 하나오카는 내 홀드 자세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히야마, 리드를 할 셈이야?”

 나는 프로포즈를 앞둔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인 걸.”

 하나오카가 내 손을 쥐었다.

 “그건 모르는 일이지.”

 “나, 이래봬도 자신 있어.”

 나는 하나오카의 허리를 감았다.

 “이때까진 쭉 리드를 했었는걸.”

 타타라에게조차도.

 “히야마.”

 하나오카의 표정이 순식간에 진지해졌다.

 “움직여.”

 그 말은 채찍처럼 엉덩이를 후려쳤다. 리듬에 맞춰 물살처럼 몸이 미끄러졌다. 하나오카를 쥐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가 되돌아왔다. 몸을 부드럽게 흔들면서 제자리에서 팔을 휘둘렀다. 하나오카의 손이 어깨를 짓눌렀다. 고양되었다. 아키라와는 달랐다. 하나오카는, 원하는 만큼 휘두르면 그만큼 응하여 따라왔다. 원하는 곳으로 가, 라고 온몸이 말하고 있었다. 타타라가, 어디로 가고 싶어? 라고 묻는다면 하나오카는, 가야할 곳으로 가야 해, 라고 못을 박는 것 같았다. 팔로우의 힘이란 이런 걸지도… 딴 생각을 하다 한 번 박자를 놓쳤다. 아차, 하고 하나오카의 얼굴을 마주보자 하나오카는 엄한 표정으로 웃고 있다.

 “여유 부리는 거야?”

 템포가 빠르게 바뀌었다. 나는 힘주어 하나오카의 손을 고쳐 잡았다.

 “아니야!”

 우리는 빙글빙글 돌았다. 뒤집어졌다가 뒤섞였다. 템포가 느리게 바뀌었을 때, 갑자기 중심이 바뀌면서 하나오카 쪽으로 기울어졌다. 하나오카는 발을 끌면서 느리게 걸었다. 리듬이 끈적끈적해졌다. 당혹감에 휩싸였다. 하나오카가 갑자기 무거워진 것 같았다. 아까처럼 산뜻하게 휘두를 수 없었다.

 ‘어라?’

 그리고 갑자기, 아주 갑자기.

 하나오카가,

 ‘들어올렸다.’

 나는 허공에 떠있었다. 몸이 굉장히 가벼워서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육신이 풍선처럼 붕 떠있다. 디디고 있는 스튜디오 바닥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나오카가, 하나오카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숨겼고, 타이밍에, 방출한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오카는, 내 모든 무게를 자신의 것으로 취한 채, 발끝으로 우리를 지탱하고 있었다.

 릴리스,

 릴리스…….

 빠른 템포가 돌아왔다. 허공의 세계는 연장되지 못 한 채 마치 빠르게 움직이는 차창 너머의 풍경처럼 뒤로 접혀 들어갔다. 움직이자, 하나오카가 리드를 바라고 있다. 발을 뻗으며 의도적으로 몸을 미끄러뜨렸다. 쿵, 쿵, 하고 리듬이 쏟아져 들어왔다. 땀이 났다. 사라지지 않는 서늘한 공포감이 남아있었다. 나는 하나오카의 손을 쥐어 터뜨릴 것처럼 잡아챘다. 하나오카가 얼굴을 찡그렸다. 상관없다, 고 생각했다. 리드하는 건 나다.

 리드는 내가 한다.

 조급함이 밀물처럼 들이닥쳐서 눈을 감았다. 물속에 있는 것처럼 먹먹해졌다. 묻고 싶었다. 죽고도 싶었다. 하나오카에게. 파트너도, 라이벌도 될 수 없는 우리는, 하다못해 너의 야망도 될 수 없는 나는, 도대체 어떤 세계를 목적으로 춤을 춰야만 하는 걸까……. 대답해줘. 아니, 하지 말자. 네가 대답해버리면 나는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고 말아.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되고 말아……. 구석구석으로, 하나오카에게 스며들기 위하여, 나는 묻거나 죽거나 안으로 숨어들고 있었다. 썰물처럼 마음이 통째로 빠져나갔다. 손끝이 찌르르 떨렸다.

 눈을 뜨려는데, 하나오카가 소리를 쳤다.

 “뜨지 마!”

 우리는 동시에 춤을 멈췄다. 이명이 찾아왔다. 나는 눈을 뜨지도 못 하고 그대로 서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나오카의 손바닥이 홀드를 풀고 사라졌다가, 되돌아와서 손가락을 얽는 게 느껴졌다. 느슨한 깍지를 꼈다. 나는 실눈을 떴다. 하나오카는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들켰다. 전부 전해버렸다. 그런 느낌에 견딜 수가 없어져서, 나는 그만 하나오카를 껴안고 앞으로 넘어졌다. 하나오카는 쓰러져주었다. 하나오카의 가슴 위로 엎어지면서, 축축한 몸으로 헐떡이며 뒤척거렸다. 하나오카가 웃음을 터뜨렸다.

 “히야마, 하나도 모르겠어.”

 “거짓말.”

 “음.”

 하나오카는 즐겁다는 미소로, 스튜디오 천장을 보면서 의미심장한 눈을 했다.

 “히야마, 넌 정말 망아지 같구나.”

 “흥.”

 “키요하루의 말이 뭔지 알겠어.”

 “효도가 그래?”

 “마리사 선생님도 그러는 걸.”

 “나도 알아.”

 나는 하나오카를 힘껏 끌어안았다. 끌어안을수록 하나오카는 투명하게 느껴졌다. 형체를 또렷하게 느끼거나 붙잡을 수가 없었다. 신기루 같고 말랑말랑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거기서 더 힘껏 끌어안으면, 단단한 몸이 느껴졌다. 하나오카의 몸. 부들부들한 과일 속에 단단히 숨겨진 씨앗을, 막 채굴한 느낌으로…… 나는 하나오카를 힘껏 끌어안았던 것이다.

 “앗.”

 “왜?”

 “하나오카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잊고 있었어.”

 “뭔데?”

 나는 몸을 떨어뜨렸다가 얼굴을 기울였다.

 “체지방, 몇 프로야?”

 하나오카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음악이 꺼졌다. 그래도 스튜디오는 시끄러웠다. 정말 큰 웃음이었던 것이다.

 그 날, 새벽에 돌아와 꿈을 꾸었다. 나는 춤을 추고 있었는데, 상대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타타라도 효도도 아니었다. 플로우엔 사람이 적고, 객석은 가득차서 새까맸다. 빠른 음악이 나오고 있었고 점점 고양되었다. 나는 허리를 자꾸만 젖히고, 또 젖혔다. 완벽히 뒤집어지게 되었다. 나는, 세계를 한순간에 거꾸로 뒤집은 것이다. 그 세계 속에서, 나는 등번호들을 보았다. 드레스 위에 붙은 선명한 숫자들을 보았다. 소녀들은, 야망을 돌려받아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내 손을 잡은 파트너가 익숙한 목소리로 묻는다. 히야마, 넌 어디쯤 왔어? 나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대답한다. 여기.

 돌아오기 전에는 하나오카와 번호를 교환했다. 메일할게, 그렇게 말하며 하나오카가 작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보다 더 많이 흔들어주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무렵에야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

 카루이자와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짐을 풀면서 라디오를 들었다. 재즈가 나오고 있었다. 음악 프로그램은 인기가 좋다. 왈츠나 탱고식 음악도 가끔 흘러나온다. 듣다보면 절로 몸이 반응해서, 마구 움직이게 되었다. 빨아야할 옷을 바구니에 담아놓고 나니 힘이 빠져서, 옷은 아무 곳에나 널브러뜨려 놓았다. 나중에 정리하면 되겠지. 그리고 나는 트렁크 속에서 접어놓은 슬로건을 발견한다. 정리할 때보다 더 난장판이 되어버린 방을 겅중겅중 뛰어넘어서, 의자를 밟고 책상으로 올라갔다. 노래가 끝나고 토크 코너가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아키코 씨는 새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는 거군요.”

 “요리는 언제나 쓸모가 있으니까요.”

 “이미 다른 프로그램을 하나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못 할 게 뭐가 있겠어요?”

 슬로건을 붙여두었던 자리는, 묘하게 벽지가 헐어있어서 슬로건이 사라져도 아, 이곳에 분명 무언가 오래도록 붙어있었다, 는 인상을 준다. 나는 슬로건이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펼쳐서, 그 자리에 도로 잘 붙여놓는다. 자, 되었다. 이제 도로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게 최종 목표는 아니었던 셈이군요.”

 “최종 목표랄까, 그런 걸 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휴대폰이 울려서, 급하게 책상을 내려온다. 하나오카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히야마, 내일이네. 드레스는 정했어? 후지타와의 호흡이 잘 맞기를 응원하고 있어.」

 나는 하나오카에게 벽에 걸어둔 드레스 사진을 보내준다.

 “그렇다면 아키코 씨, 그런 의미를 담아서 진심의 각오 한 마디를 부탁드립니다.”

 “각오의 한 마디라, 일종의 응원인 거겠죠?”

 “캐치프레이즈라고도 할 수 있네요.”

 휴대폰이 울린다.

「아름답다. 굉장히 강해보이네.」

 나는 웃으며 휴대폰을 닫는다. 코너가 끝날 시간이 다 되어서, 라디오의 볼륨을 높이면서 책상에 주저앉는다. 마지막 곡은 왈츠였으면 좋겠다.

 “그럼 엔딩 곡을 소개하기 전에, 다자키와의 콤비 결별을 선언하고 새 프로그램을 향해 나아가는 아키코 씨의 야망의 한 마디, 올해의 캐치프레이즈를 듣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부끄럽네요.”

 아키코의 큼큼, 소리는 시구를 앞두고 허공으로 배트를 스윙하는 타자의 그것과 닮아있다. 나는, 약속이나 한 듯이 벽에 도로 붙여둔 그 해의 캐치프레이즈를 바라본다. 영적인 느낌이다. 그리고 마침내 캐치프레이즈가 방송되는 순간, 우스워서 그만 책상에 엎어지고 만다. 라디오에선 탱고가 흘러나오고 있다.

 눈물을 닦아내며, 기분 좋게 중얼거린다.

 “표절이야!”

 노을이 지고, 탱고가 흐르고, 여전히 캐치프레이즈가 있다. 그런 시대가 온다. 그러니까 소녀여. 세상의 소녀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한 시대가 접혀 들어간다.

2017/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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