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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체가 처음으로 몸을 구상하던 순간이 기억난다. 그때 힘썬과 리체는 판판한 지형에서 불과 몇 밀리미터 정도 부유한 채 나란히 떠있었다. 둘의 머리 위로는 마치 은하수처럼 아주 작고 미세한 빛의 알갱이들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는데, 그것들은 살아있지만 마법사들과 달리 지성이 없고 의사소통이 되질 않아 ‘작고 조용한 친구’로 불리는 존재들이었다. 힘썬의 경우에는 그들을 ‘쥼쥼’이라고 불렀다. ‘쥼쥼’은 지구로 따지면 식물에 가까웠다.

  힘썬이 리체를 인간으로 변신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설명한 것은 인간의 외형이었다. 두 개의 팔과 다리가 있으며 여러 개의 덩어리로 나뉘어 있고 각 기관이 유기적으로 바쁘게 생명활동을 한다. 얼굴이라는 게 있는데 그것은 개개인을 식별하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고 총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 눈, 코, 귀에 각각 두 개씩 분배하고 코 아래에 마지막 하나를 분배하는데 신경 써서 크게 만드는 편이 좋다. 그게 입이다.

  리체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같았다. 신이 나있었지만 학습의 기쁨을 누리고 있지는 않았다. 제대로 설명을 듣고 있는지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어쨌든 누군가를 가르치는데 필요한 건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힘썬은 설명을 계속해나갔다. 인간의 신진대사를 담당하는 장기에 관한 이야기였다. “중요한 기관이야.” 힘썬이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꼭 필요하지 않아. 원하지 않으면 생략하고 몸만 만들어도 좋아.” 실제로 힘썬은 인간으로 변신할 적 많은 기관을 생략해왔다.

  리체가 돌발 행동을 한 건 그때였다. 단숨에 솟구쳐 오르더니 사방으로 입자를 뿌리며 번쩍번쩍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한동안 리체는 그런 식으로 공중에 매달려 있다 말고 변덕스럽게 ‘쥼쥼’의 군집으로 뛰어들었다. ‘쥼쥼’들은 깜짝 놀란 것처럼 리체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몸을 피하며 가루를 뿌려댔다. 힘썬이 쏜살같이 쫓아와 리체의 이름을 불렀지만 리체는 깔깔거리며 ‘쥼쥼’ 사이를 뒹구느라 정신이 없었다. 힘썬은 리체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그 앞에서 변신했다. 두 개의 팔과 다리를 만들고 볼록한 몸의 굴곡과 빛나는 눈동자, 곱슬곱슬한 머리카락과 단단한 손톱을 만들자 리체가 깜짝 놀란 것처럼 멈추어 섰다.

  “그게 무엇이냐?”
  리체가 물었다.
  “[  ]. 그건 무슨 형태인가?”
  힘썬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인간 남자’야. 

  힘썬은 리체 앞에서 빠르게 세 번 정도 변신했다. 처음에는 젊은 남자였다가 점점 나이든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간의 수명이 마법사들보다 반절쯤 짧다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 학습시키자, 리체는 힘썬의 변신 과정을 유심히 살피다 말고 크게 한 바퀴를 돌았다. 힘썬은 리체를 이루는 빛의 입자가 주변의 분자를 끌어 모아 하나의 운집을 이루고, 무형에 가까웠던 형태가 덩어리를 갖추는 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잠시 후 리체가 몸을 만들었다. 의외로 리체의 몸은 완성도가 있었다. 리체는 힘썬과 똑같은 얼굴의 남성이 되어 마주보았다. 힘썬이 만든 몸의 점 하나까지 똑같이 복사한 육신이었다. 힘썬은 리체가 자신의 설명을 아주 흘려듣지는 않았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리체가 물었다.
  “어떤가?”
  “오, 훌륭히 잘 해낸 것 같아.”
  힘썬은 간단하게 감상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렇게 물어보는 걸 보니 넌 뭔가 잘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바로 그걸세.”
  리체는 자신의 몸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전혀 색다른 기분이 들지 않거든.”

  그러니까 리체는 힘썬의 모습을 취하면 무언가 달라질 거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힘썬은 가까이 다가가 리체가 만든 몸을 직접 주무르고 만져보았다. 가슴팍에 귀를 바싹 대고 소리를 들어보기도 했다. 힘썬은 곧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아차렸다. 리체가 인간의 내부를 전혀 복사하지 않았던 것이다. 리체가 만든 몸에는 심장이나 핏줄, 신경이나 조직이 전혀 없었다. 리체가 만든 최초의 몸은 인간의 육신이라기보다 단백질로 만든 인형에 가까웠다. 그저 부유하던 평소의 상태에 형태를 부여하는 작업을 했을 뿐이므로 색다른 존재가 되었다고 볼 수 없었다. 힘썬은 리체에게 처음부터 설명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힘썬은 리체에게 생식의 행위와 번식의 과정, 세포의 무한복사와 생성부터 다시 가르쳤다. 이미 한 번 인간의 육신을 만드는데 매료된 리체는 아까보다 훨씬 더 협조적으로 학습에 임했다. 리체는 힘썬으로부터 난생과 태생, 난태생에 대해 배웠고 또 때때로 토론도 했으며 그것에서 답을 찾기 위해 골몰하기도 했다. 마침내 리체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몸을 재생성하기 위해 웅크렸을 때, 힘썬은 이번에는 리체가 성공할 것임을 알았다. 리체는 보기 좋게 해냈다.

  “와!”
  힘썬은 리체의 가슴팍에 귀를 대보고는 기쁜 듯 말했다.
  “모든 게 완벽해, [  ].”
  “[  ]의 도움이 컸다네.”

  리체는 성취의 기쁨에 흥분해서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심장이 요란하게 뛰고 피가 건강하게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체는 육신이 주는 감각에 도취해 당장에 지구로 내려가 보고 싶어 했지만 발가벗고 있었으므로 힘썬에 의해 제지당했다. 힘썬은 그대로 지구로 내려갔다간 인간들이 질겁할 것이라며 리체를 말렸다.

  “오, 나도 맨 처음에 그런 실수를 했다가, 많은 인간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단다.”
  힘썬이 말했다.
  “물론 너는 지금 ‘남성’이기 때문에 설령 이 상태로 누군가에게 노출될 지라도 아주 위험하지는 않겠지만, 기억해줘. 네가 ‘여성’으로 있을 때는 많은 게 교묘한 방식으로 달라질 거야.”
  “네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 [ ].”
  리체가 대답했다.

  두 사람은 인간사회의 유행을 알기 위해 우주로 이동한 다음, 지구 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인공위성 하나에 내려앉아서 마음에 드는 전파를 골라잡았다. 리체가 일정하고 빠른 리듬에 따라 몸을 흔들며 춤을 추는 멋진 영상을 발견했다. 이상하게도 춤을 추는 사람들의 얼굴이 갑자기 클로즈업 되면서 눈동자가 반짝이거나 조명이 번쩍이는 연출이 반복되었다. 힘썬은 그게 ‘한국의 가요’라고 알려주었다. “이건 방금 내가 이 전파들을 뒤져보며 알게 된 사실인데, 이것들을 ‘케이팝’이라고 부르기도 하더구나.” 리체는 케이팝 패션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던 것인지 이런류의 옷을 입어보자고 말했고, 힘썬은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했다.

  이번에도 리체는 약간의 실수를 저질렀다. 피부조직을 움직여 색깔을 만든 후 몸 바로 위에 옷을 입은 것처럼 ‘무언가’를 생성하려 했던 것이다. 힘썬은 옷은 살아있는 게 아니므로 세포의 생명활동 방식을 카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었지만, 리체는 이런 편이 재미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힘썬은 남성의 나신으로 위성에 앉아 리체가 자신의 육신 위에 흥미롭고도 그로테스크한 시도를 반복하는 것을 얌전히 지켜보면서 때때로 송신되는 전파에 귀를 기울였다. 힘썬의 예상대로 리체가 그 행위에 질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침내 리체가 도로 나신의 남성으로 돌아가자, 힘썬은 자리에서 일어나 리체에게 시범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내 방식은 네게 너무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힘썬은 전파 하나를 리체에게 보여주면서 두 팔을 벌렸다.
  “그래서 네게 도움이 될 만한 걸 함께 보여줄게.”

  그런 후 힘썬은 곧장 여성의 몸으로 변신했다. 다음 순간 힘썬의 육신이 강하게 빛나더니 몸의 윤곽만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힘썬은 빙글빙글 돌면서 그대로 다이빙했다. 주변에 생성된 빛 무리가 힘썬을 따라 쏜살같이 떨어졌다. 그녀가 두 팔을 벌리며 빙글빙글 돌자, 빛 무리가 형태를 갖추며 육신에 달라붙었다. 다음 순간 그것들이 유리처럼 깨지며 빛을 하나씩 터뜨렸고 곧 하나의 의복이 되었다. 힘썬은 매혹적으로 돌면서 솟구치다가 화려한 포즈로 인공위성 안테나 위에 착지했다.

  리체는 큰 감명을 받은 것 같았다.
  “방금 우리가 본 게 무엇이었지?”
  “주로 어린 인간 아이들이 보는 영상물이야.”
  힘썬이 말했다.
  “인간 어른들이 흔히 마법소녀물이라고 부르던데, 여기서는 인간들도 변신을 해.”

  리체는 마법소녀의 변신 과정을 통해 의복을 ‘생성하고’ ‘입는다’는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한 것 같았다. 거기 더불어 힘썬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변신하기까지 했다. 힘선은 위성 안테나에 앉아, 리체가 우주쓰레기들 틈을 능숙하게 돌며 자신의 에리어를 형성하고 장미와 반짝이를 흩뿌리며 아름답게 의복을 만들어 입는 것을 즐겁게 지켜보았다. 마침내 리체가 돌아왔을 때, 힘썬은 더는 자신이 리체에게 전달할 사항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리체의 주변에는 아직도 꽃과 반짝이가 떠다니고 있었다.

  “오, 내일은 네 이름을 짓자.”
  힘썬이 즐겁게 말했다.
  “분명 신나는 일이 될 거야.”
  “그 전에 하고 싶은 게 있다네.”
  리체가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여기에 뭔가를 좀 걸고 싶은데, 인간의 방식이면 좋겠어.”

  힘썬은 리체가 귀걸이를 걸기 위해 귓불을 뚫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좋은 생각이었다. 인간과 비슷한 흐름을 경험하다보면 인간사회에 보다 무사히 적응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리체는 원래부터 예측 불가한 빛이었으므로 지금의 사회에서도 조화롭게 어울리고 있는 편은 아니었고, 힘썬은 그 사실을 기억했기 때문에 그녀를 가르치는데 많은 순간을 인내하고 사랑할 수 있었다. 귀쯤이야 간단히 뚫어줄 수 있었다.

  힘썬은 단지 리체가 신경세포를 너무 많이 만들어 감각이 지나치게 예민해진 상태가 아니기를 바랐다. 귓볼을 뾰족한 무언가로 관통시키는 일은 고통을 수반했기 때문이다.

  힘썬이 대답했다.
  “오, 그건 내가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어.”

  하지만 리체라면 고통마저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썬 역시 아픈 게 아주 싫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고통 같은 것들마저도 때때로는 즐거움이 된다. 영원히 지루할 바에야 차라리 간악하거나 혹독하게 만드는 동물적인 감각에마저 유희를 느끼게 되는 걸지도. 그럼 마법사들은 다 마조히스트일까? 어쩌면 다들 변신마법소녀가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 수 없다. 마법사들이라 한들 앞날을 예측하거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힘썬은 그럼에도 알기 위해 올바른 인간의 형상으로 지구에 내려갈 것이다. 지루함에 대해 알기 위하여.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  ]! 

  리체가 반짝이는 몸으로 그녀를 불렀다. 한 번 더 변신하려는 모양이었다. 힘썬은 생각에서 벗어나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리체의 주변을 감싼 (반짝이와 장미꽃으로 가득한)변신 배리어가 보였다. 아마 저것은 온 우주를 통틀어 가장 빛나는 보라색 블랙홀일 것이다. 리체가 힘썬을 향해 힘껏 손을 뻗었다.

  “함께해주게나! 

  힘썬은 사양하지 않고 낄낄거리며 온몸을 쭉 뻗었다. 그런 후 곧장 빛 무리를 만들며 인공위성 안테나에서 뛰어내렸다. 멋진 다이빙이었다. 두 사람은 그런 식으로 지구를 열 바퀴도 스무 바퀴도 넘게 돌 수 있었다. 변신소녀는 원래 무적이야!

19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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