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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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이후의 일들은 모두 혼란스럽기만 했다. 토미는 총 세 개의 수업을 더 들었지만 강의 내용은 머릿속에 절반도 채 남아있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하마터면 레포트에 쓸 필수 내용 중 절반을 받아 적지도 못 할 뻔 했다. 방과 후가 가까워졌을 때, 토미는 알렉스 스타일스가 그토록 자신을 비난한 이유가 무엇인지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면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토미 화이트헤드는, 알렉스가 자신에게 가벼이 플러팅 했음에 대해선 비난할 수 있었으나 그가 알렉스에게 요구한 것에 비하면 그것은 너무 사소한 문제가 되어버렸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건 토미가 결코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그러나 그는 곧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알렉스 스타일스를 공격하고 싶어 안달 나있던 지난주 금요일을 떠올리곤 생각하기를 관뒀다. 때마침 종이 쳤으므로 토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에 프린트물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오늘의 유일한 위안은, 토미가 바라던 대로 알렉스의 새로운 가십-린다 패거리의 짓거리-덕에 토미 화이트헤드의 이름은 거의 언급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토미와 제시 사이에 벌어진 점심시간의 작은 소동은 알렉스 스타일스가 홀에서 맞은 밀가루 폭탄으로 인해 이미 깔끔하게 잊혀진 상태였다. 그러나 토미 화이트헤드는 전혀 이 모든 상황이 달갑지 않았고,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오스본을 찾아가야 해…….’

그러나 토미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것은 너무 바보 같은 짓이었다. 린다 오스본과 그녀의 패거리들은 알렉스 스타일스가 린다에게 몹쓸 짓을 해서 이 사태를 벌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알렉스 스타일스가 곤경에 처하기를 바랐고, 마땅한 이유를 찾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토미 화이트헤드는 그 기회를 마련해준 꼴이 되었다. 미워하기 위하여 이유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토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역시도 알렉스에게 그렇게 했던 것이다. 

주변이 소란스러워 토미는 퍼뜩 생각에서 벗어났다. 그는 복도로 나온 린다의 패거리를 보았다. 린다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의자를 끌고 와 복도 정중앙에 양동이를 매달고 있었다. 한구석엔 포대를 잘라 작게 묶은 밀가루 폭탄들이 치워져있었고, 그들을 둘러싼 학생들은 대체로 그들을 격려하거나 환호하는 부류였다. 소란에 말려들고 싶지 않은 다른 학생들은 곁눈질로 흘끔거리며 서둘러 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토미는 이 모든 작태가 구역질났다. 그들이 의자를 치우고 허겁지겁 돌아가 복도 부근에 숨었을 때, 토미는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복도 끝에서부터 알렉스 스타일스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제시 버크는 없었다. 그는 완전히 혼자였다.

토미는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교사에게 말하는 것이 훨씬 좋을지도 몰라. 그가 직접 이 일을 해결할 필요는 없다. 여태까지 그래왔듯이. 문제가 발생하면 토미는 뒤로 물러나는 쪽을 택했다. 맞서 싸우지 않아도 해결에 보탬이 될 수만 있다면 비난을 피할 수 있었다. 알렉스 스타일스는 계속해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토미는 주먹을 짧게 쥐었다가 놓았다. 그리고 락카 뒤로 치워진 의자를 끌고 와 밟고 올라섰다. 

“워, 워, 워, 지금 뭐하는 거야?”

몸을 숨기고 숨어있던 린다의 패거리들이 내려오라는 눈짓을 보냈다. 토미는 흘끔, 그들을 내려다보곤 공중에 걸린 양동이로 손을 뻗었다. 린다의 패거리 중 하나가 달려들어 의자를 붙잡았다.

“야, 방해하지 마. 죽고 싶어?”

“야, 저 새끼 알렉스랑 굴렀다던 그 호모 아니야?”

“진짜냐?”

“토미 화이트헤드잖아.”

락카 뒤에 몸을 구긴 채 눈짓을 보낸 남학생이 토미를 노려보았다.

“알렉스 뒤치다꺼리 하려고 온 거야, 이 샌님아?”

“이런 짓은 그만둬.”

토미는 목소리를 짜냈다. 몸이 덜덜 떨렸다. 그는 이런 상황을 한 번도 맞닥뜨려 본 적이 없었다. 현관 복도로 다가오던 알렉스가 머뭇거리며 멈추어 섰다. 그는 의자 위에 올라서 천장으로 손을 뻗은 토미를 발견하곤 고개를 젖혀 천장에 매달린 양동이를 바라보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놈이 작게 소리를 질렀다.

“야, 야, 잭, 들켰어. 완전 망했다고.”

“그럼 억지로 여기까지 끌고 오면 되지.”

의자를 붙잡은 잭이 으르렁거리며 등받이를 뒤로 훅 빼냈다. 중심을 잃은 토미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붙잡다 놓친 양동이가 위에서 마구 시계추마냥 흔들렸다. 머리 위로 금속음에 섞인 출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잭은 토미의 멱살을 틀어쥐고 가볍게 들어올렸다.

“씨발, 야. 끼어들지 마. 이건 우리들과 저 새끼의 일이라고.”

토미가 헐떡거리며 잭의 손목을 쥐었지만 린다 때와는 달리 떼어내기 쉽지 않았다. 그의 악력은 지나치게 세고 단단했다. 어쩌면 토미가 너무 약골이었는지도 모른다. 

“교수님께 말씀드리겠어.”

토미가 이를 악물었다.

“너희가 오늘 내내 한 짓은 징계감이야.”

“오호, 그래? 같은 호모라고 감싸주는 거야? 존나 눈물겹네.”

잭이 바싹 토미를 끌어당기고 흔들었다.

“난 하-나-도 무섭지 않아, 이 새끼야. 슨생님한테 이를 고에요(이 때 잭은 일부러 입을 쭉 내밀고 조롱하듯 중얼거렸다) 어디 해 봐. 어떤 일이 벌어지나 보자고.”

머리 위로 양동이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토미는 반사적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가, 안간힘을 다해 몸부림치며 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발로 차고 붙잡고 꼬집고 할퀴었다. 잭은 욕지거리를 하면서도 비웃으며 낄낄거리다가, 토미의 멱살을 갑자기 놔주었다. 토미가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바로 그 순간, 줄이 툭 끊어지면서 잭의 머리 위로 계란물이 양동이 째 통째로 떨어졌다. 꽝, 소리와 함께 계란물이 사방으로 쏟아졌다. 토미는 뺨에 튀긴 끈끈한 물방울을 손가락으로 훔치며 락카 쪽으로 기어 물러났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양동이를 뒤집어 쓴 채 굳은 잭을 올려다보았다. 락카 뒤편에 숨었던 린다의 패거리들이 경악하며 바라보는 가운데, 잭은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서있었다. 토미는 후들거리는 팔로 지탱하며 비틀비틀 일어났다. 

잭이 양동이를 집어던졌다. 끈끈한 바닥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양동이가 현관 쪽으로 굴러갔다. 토미는 다리에 힘이 풀려 락카 쪽에 간신히 기대어 있었다. 잭은… 잭은 흡사 막 양수에서 깨어난 괴물처럼 보였다. 끈끈한 물을 뒤집어 쓴 얼굴이 분노로 인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가 분노에 찬 비명을 지를 때, 토미는 곧장 뒤를 돌았다. 그러나 곧 덜미가 잡혔다. 교복 카라를 붙잡은 잭이 토미를 자신의 앞으로 질질 끌고 왔다.

“호모 새끼, 죽여 버리겠어!”

토미는 순간 자신의 눈앞이 새하얗게 반짝이는 경험을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락카에 기대어 쓰러져 있었고, 코에서 끈끈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픔은 그 모든 상황을 파악한 이후에도 전혀 소식이 없다가, 토미가 고개를 드는 한순간에 몰려왔다. 끔찍한 얼얼함이 왼쪽 뺨으로 맹렬히 퍼지기 시작했다. 잭은 한 방으론 만족하지 못 했는지 한 번 더 휘두를 기세였다. 토미는 어깨를 움츠린 채 눈을 꾹 감았다. 누군가 비명을 질렀고, 복도로 내달리는 발소리들을 들었다. 잭의 주먹은 소식이 없었다. 에버릿 교수-그녀는 수학 교사였다-의 고함과 잭과 패거리들의 욕지거리가 들렸다. 내달리는 발소리들이 조용해지자, 토미는 창백하게 질린 채 천천히 눈을 떴다.

알렉스 스타일스가 거기 있었다.

토미는 아까보다 훨씬 더 겁에 질렸다. 공포에 대한 감각은 아니었고, 난처함에 가까웠다. 그러나 토미는 자신이 왜 그렇게까지 알렉스에게 곤욕스러움을 느끼는지 확신하지 못 하고 있었다. 그가 욕을 하거나 혹은 이제 와서 뭘 어쩔 것이냐고 말한다면 도무지 대답할 말이 없었는 지도 몰랐다. 해명할 할 용기도 없었을 뿐더러 스스로도 수습하기엔 일이 너무 크게 벌어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이유를 통틀어, 토미는 그러니까 알렉스의 반응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알렉스 스타일스의 표정은 아주… 이상했다. 이상하다는 것은 토미가 전혀 예상하지 못 한 얼굴이었다는 뜻이다.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토미에게 다가와 곧장 팔 사이로 손을 집어넣은 후, 가볍게 들어 그대로 안아 올렸다. 맙소사… 라고 알렉스가 중얼거렸다. 토미는 후들거리는 몸으로 그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려고 애썼다. 몸이 기울어지자 코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알렉스는 조심스럽게 토미의 정수리를 감싸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한 후,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곧장 복도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토미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진동했다. 토미가 신음하며 몸을 바르작거리자, 알렉스가 조용히 속삭였다.

“미안해, 토미. 쉬, 쉬. 괜찮을 거야. 교수님을 불러왔으니까. 고마워. 미안해, 토미.”

공포와 긴장으로 굳어져있던 토미의 몸이 그제야 천천히 풀어졌다. 얼얼한 뺨으로 아득한 아픔이 느껴지는 가운데, 반쯤 정신을 놓은 토미가 힘없이 알렉스의 품에 늘어진 채 조용히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보건실로 향하는 동안, 알렉스는 토미의 정수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연거푸 쉬, 쉬, 하고 달래주었다. 모두가 바라보았지만 토미는 눈을 꾹 감았다. 정말이지 이번만큼은 그런 문제들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그랬던 것이다.

 

토미가 받지 않는다. 

휴대폰을 붙들고 학교 현관을 바라보던 짐은 결국 전화를 끄고 라디오를 틀었다. 시시한 음악과 뉴스가 나오는 채널을 번갈아 뒤적거리던 그는 학교 정문으로 후다닥 뛰쳐나오는 몇 명의 무리를 발견했다. 그중 한 명은 온통 엉망으로 어질러진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귀가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패거리들은 우왕좌왕 주차장으로 흩어졌다. 교사가 소리를 치며 현관에서 뛰쳐나왔다. 짐은 자신의 차 뒤편으로 우다다 달려오는 남학생의 상태를 백미러로 확인하곤 경악했다.

“맙소사, 꼴이 왜 그러니?”

“알 바 없잖아요.”

잭이 씹어뱉었다.

“그거 풀이니?”

짐이 얼굴을 찡그렸다.

“아뇨.”

잭이 으르렁거렸다.

“그냥 신경 끄라고요! 선생이 묻거든 저 못 봤다고 하세요. 씨발, 호모새끼 때문에…….”

“그런 말은 쓰는 게 아니다.”

짐이 엄숙하게 지적하자 잭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다가, 이내 욕지거리를 하며 다른 차로 뛰쳐나갔다. 짐은 라디오를 끄곤 잠시 한숨을 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요즘 애들이란!”

그는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 후, 다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긴 신호음이 이어졌다. 아주 긴 신호음이었다.

 

알렉스는 찬장에서 연고와 거즈 따위를 찾아 책상에 늘어놓곤, 침대에 걸터앉은 토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토미는 입을 다문 채 눈으로 알렉스가 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알렉스가 토미의 인중에 거즈를 가져다대자, 그는 그 손을 붙잡은 후 거즈를 빼앗아 쥐었다.

“내가 할게.”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이곤 연고를 건넨 뒤 책상 의자에 천천히 주저앉았다. 토미를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정리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토미는 알렉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가 왜 토미에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대할 수 있고, 지금처럼 상냥하게 대하는 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동시에, 알렉스가 물어봐주기를 바랐다. 왜 자신이 뛰어들었는지… 그럼 사과를 할 생각이었다. 사과를 하고, 해명을 하고, 그리고……. 그리고 뭐? 넌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 토미는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곧 토미는 자신이 더는 알렉스가 자신에게 어떤 명분이나 타이밍을 줄 때까지 기다려선 안 되는 처지임을 깨달았다. 그건 너무 뻔뻔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일들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모든 일이. 토미는 천천히 거즈를 떼어냈다.

“미안해.”

토미는 작게 중얼거렸다. 

알렉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되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토미는 용기를 잃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계속해서 말할 수 있었다.

“오늘… 점심시간 이후에 알았는데 말이야.”

토미는 자신의 얼굴이 달아오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네가 왜 린다랑 헤어졌는지…….”

변명할 생각은 없었는데도 내뱉고 보니 그렇게 들렸다. 그것이 토미는 몹시 창피했다.

“나는 너와 린다가… 임신 때문에 헤어진 줄 알았어.”

“알아.”

알렉스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아까 제시가 말해주더라.”

“음, 미안해. 걔네가 그런 이유로 너를 괴롭혀왔다는 걸 알았다면 나는…….”

“Hey, Tommy.”

알렉스가 다가와 토미의 손을 붙잡아 올렸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거즈로 인중을 눌렀다.

“너 코피나.”

그 말에, 토미가 고개를 들어 알렉스 스타일스를 바라보았다. 노을이 지면서 알렉스의 갈색 머리카락과 섬세한 속눈썹이 황금색으로 빛났다. 그제야 토미는 복도에서 마주친 후 내내 알렉스가 짓고 있던,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는 토미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의미는 없었다. 알렉스가 시선을 내리깔고 희미하게 웃자 토미는 그가 자신의 사과는 진작 받아들였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방금 그 말이 지난주 월요일 주차장에서 토미가 알렉스 스타일스에게 처음으로 건넨 것-미움과 열등감 속에서도 기어코 튀어나왔던 호의(토미는 그것을 이제 ‘걱정’이라고 마음껏 부르기로 했다)-과 동일한 성질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토미가 따라 희미하게 입 꼬리를 올리자, 알렉스는 손을 거두곤 퉁퉁 부어오른 토미의 뺨을 살짝 건드렸다가 떼어냈다.

“미안해.”

알렉스가 말했다.

“뭐가?”

토미가 물었다.

“따지고 보면 원인은 전부 나니까.”

알렉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음.”

토미가 말끝을 흐렸다.

“그렇게 생각해?”

“아니야?”

“아니야.”

토미가 대답했다.

“정말 아니야.”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둘은 동시에 토미의 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계속 울리더라. 안 받아?”

알렉스가 물었다. 토미는 액정을 확인한 후 휴대폰을 시트에 뒤집어놓았다. 

“응.”

진동소리는 연거푸 이어지다가 곧 끊겼다.

“새 아빠야.”

토미가 말했다. 알렉스는 한쪽 입 꼬리를 올렸다.

“그렇구나.”

“난… 별로 좋아하지 않아.”

이번에 알렉스는 대답하지도 그렇다고 되묻지도 않았다. 토미는 잠시 다리를 작게 흔들거리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그래도 이제 가봐야겠어.”

“오, 그래.”

알렉스가 물러나 침대 아래에 세워둔 토미의 백팩을 건넸다.

“고마워.”

토미는 가방을 멨다. 전화가 다시 울렸지만 이번에도 토미는 받지 않았는데, 알렉스 역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인사했다.

“내일 보자, 토미.”

“응.”

토미가 희미하게 미소 짓자, 알렉스 역시 씩 웃었다.

“레포트 잊지 마.”

알렉스가 말했다.

 

gib22 : Hey, Tommy.   13:01

 

토미는 노트북을 펼치고 답장을 보냈다.

 

Tommy0612 : Hi, Gibson.   17:10

Tommy0612 : 오랜만이야.   17:10

Tommy0612 : 먼저 연락 줘서 고마워.   17:10

Tommy0612 : 미안해.   17:10

 

짐이 불러 아래층에 내려갔다오니, 답장이 와있었다.

 

gib22 : 괜찮아 :>   17:22

gib22 : 그냥 걱정되어서 연락한 거야.   17:22

gib22 : 학교 일은 마무리 됐어?   17:23

 

토미가 타자를 쳤다.

 

Tommy0612 : 응.   17:23

Tommy0612 : 그럭저럭.   17:23

Tommy0612 : 오해가 있었는데 풀렸어.   17:23

gib22 : 걔랑?   17:23

Tommy0612 : 응, 걔랑.   17:23

gib22 : 다행이네.   17:24

Tommy0612 : 말없이 사라진 거 정말 미안해.   17:24

gib22 : 괜찮아, 크게 신경 안 썼어.   17:24

gib22 : 그럼 넌 걔랑 어떻게 되는 거야?   17:24

Tommy0612 : 뭐가?   17:24

gib22 : 데이트 할 거야?   17:24

 

토미는 답장을 치지 못 하고 멈췄다. 화면이 깜빡이더니 메시지 하나가 더 올라왔다.

 

gib22 :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17:24

 

토미는 입술을 질겅질겅 씹다가, 이내 머뭇거리며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Tommy0612 : 잘… 모르겠어…….   17:25

 

왜냐하면 알렉스는 데이트가 아닌 레포트를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미는 이미 그를 한 번 찼다.

 

Tommy0612 : 잘 모르겠어, 정말로.   17:26

 

곧 이어 화면으로 gib22의 한숨 가득한 이모지가 올라왔다. 

장담컨대, 그건 우리 모두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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