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ara

티스토리 뷰

 토미 화이트헤드는 생각했다.

 ‘내가 잘못한 거야?’

 Nope. 토미 화이트헤드는 언제고 잘못한 적이 없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체로, 아니 거의 절대적으로, 그것은 세계와 타인의 문제였다. 부엌에서 밤낮으로 소란이 끊이지 않을 때도, 부모가 일방적으로 이혼을 통보할 때도, 갑자기 사라져버린 아버지가 메일 하나를 덜컥 보내왔을 때도, 처음 보는 남자가 어머니의 뒤를 따라 어색한 웃음을 달고 거실로 들어올 때도, Site에 가입할 때도, 아니, 그 이후에도…… 토미는 잘못한 적도, 그렇다고 잘못된 적도 없었다. 왜냐고? 

 그는 조용히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는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보아라, 세상 모든 뉴스는 떠들썩한 자들의 몫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항상 좋은 일은 아니다. 슈퍼스타가 될 깜냥이 없다면 허리를 숙이고 사는 편이 낫다. 시선과 주목, 가십과 오해 따위는 별세계의 일이었으며, 토미 화이트헤드는 이때까지 잘 해왔다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었다. 튀지 않고, 옳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고, 불의를 보면 직접 행동하기보다는 경찰을 부르는 삶. 괴로워질 때마다 생각했다. 신탁계좌, 아이비리그, 성공이 보장된 미래. 그래도 견딜 수 없이 괴로워지면 보다 있는 힘껏 생각했다. 신탁계좌, 아이비리그, 성공이 보장된 미래. 알렉스 스타일스는 거기 없었다. 없을 예정이었고 마땅히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토미 화이트헤드는 무언가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선 인생이 이렇게 꼬일 리가 없었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토미는 이불속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낯익은 큼, 소리가 났다. 짐이었다. 

 토미는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토미, 저녁 안 먹을 거니?”

 “…….”

 문 바깥에서 서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짐이 조용히 한 번 더 불렀다.

 “토미?”

 이번에도 토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짐은 층계를 내려갔다. 발자국 소리는 천천히, 무겁게 멀어졌다. 아래층에서 짐과 엠마가 대화를 주고 받는 게 들렸다. 그리고 곧 오븐 타이머가 알람을 울렸다.

 토미는 뒤척이지도 않고 누워 있었다. 책상에 얹어둔 노트북은 웅웅거리고 있었고, 휴대폰은 잠잠했다. 채팅창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나왔으니 당연했다. 새로 올린 글도 없었다. Site가 띄워줄 알람 같은 건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gib22가 게시판을 거슬러 올라가 토미의 게시물을 찾아서, 그의 이름을 누르고, 아이피를 따서 새 방을 개설하지 않는 한… 아니, 휴대폰은 영영 조용할 것이다. 애초에 상대가 일방적으로 종료한 채팅을 다시 이어가고 싶어 할 상대가 몇이나 될까? 제아무리 gib22라고 해도 말이다……. 토미는 허공을 쏘아보았다. gib22는 토미가 Site를 시작한 이례 가장 오래, 자주 교류한 온라인 친구였고, 방금 전까지 토미 인생에 닥친 최대 난관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던-적어도 토미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토미는 그것에 오히려 불편함과 불안함을 느꼈다-참이었다. 그건 토미 화이트헤드의 잘못일까? 그래, 적어도 gib22에겐 그렇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알렉스 스타일스에게는 아니었다. 토미는 생각했다. 알렉스 스타일스에겐 아니야.

 그러나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토미 화이트헤드의 잘못처럼 느껴졌다.

 

 경위에 대해 설명해야한다. 어디서부터? 토미는 알 수 없다. 자신이 알렉스 스타일스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은 어제? 아니, 좀 더 거슬러 가야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설문지를 받은 수요일? 아니다, 좀 더 거슬러 가보자. 그렇다면 알렉스 스타일스가 린다 오스본에게 뺨을 맞던 지난주 월요일? 그래, 아마 그 때부터다. 자신은 왜 하필 주차장에 서있었을까. 토미는 그곳에서 알렉스 스타일스와 눈이 마주쳤고, 그가 말을 걸었으며, 자신은 그것을 필사적으로 무시하려고… 했으나 약간의 친절-“너 코피나.”-을 베풀었다. 아니, 그게 친절 축에나 낄 수 있는 문제인가? 어쨌든 그래도 알렉스 스타일스에겐 친절로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토미 화이트헤드를 기억해냈고, 생각해보니 작년 수업도 같이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고, 그런데 '그 토미'가 자신의 설문지를 사물함에 얌전히 보관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알렉스 스타일스는 마침 솔로였다. 좋다, 모든 퍼즐은 완성되었다. 알렉스 스타일스는 어디까지나 얄팍한 흥미로 토미 화이트헤드에게 접근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뒤는 어떻게 설명하면 좋지? 토미 화이트헤드의 추론은 여기서 주춤거리고 만다. 기억속의 알렉스 스타일스가 더는 웃고 있지 않다. 그는 싸늘한 표정으로 토미 화이트헤드를 응시하고 있다.

 와우, 알렉스가 감탄한다. 그리곤 곧 입술을 비틀며 비난한다.

 “너 진짜 최악이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이상하고, 불가해하고, 최악이야.” 

 그리고 이 대화는 불과 금요일 오후에 있었던 일이다.

 토미 화이트헤드는 얼굴을 찡그린다. 그는 왜 린다 오스본에게 제대로 사과하지도 않는 주제에 나의 도덕성을 논하는 것일까?

 그것은 토미 화이트헤드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좀 더 알아봐야할 필요가 있다.

 

 “…좋아, 토미.”

 알렉스 스타일스가 대답했다.

 “약속한 거야. 무르는 순간 이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건 너를 박살내버릴 테니까.”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홀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학생들로 분주했고 주변은 어수선했다. 그들을 흘끔거리던 테이블 건너편의 시선들도 이제 어느 정도는 흥미를 잃은 듯 각자의 도시락에 집중하고 있었다. 

 토미는 알렉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딘지 위태롭고 묘한 느낌의 미소가 걸린 알렉스 스타일스의 표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반짝거려서 과연 학교 최고의 킹카라는 인상을 준다. 저 얼굴에 사랑을 고백한 모든 아이들이 그와 손을 잡고 입을 맞췄다. 몇몇은 함께 뒹굴었을 지도 모른다. 그가 말한 대로 남자든 여자든 혹은 둘 다거나 둘 다가 아닌 애들이든. 알렉스 스타일스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근거렸고, 모조리 성공했고, 최근엔 학교 최고의 퀸카와 뜨거운 연애를 하고 화려하게 걷어차이기까지 했다. 그가 토미 화이트헤드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면, 그건 알렉스 자신이 진지해서라기보다는, 그의 이력에 넣을 새 이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맹세컨대 토미 화이트헤드는 스타일스의 이력서에 자신의 이름을 기입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요컨대 “린다 오스본에게 사과해”, 다시 말하자면 “네가 임신시킨 전 여자 친구에게 진중하게 사과해”따위의 조건을 내걸 때부터, 토미 화이트헤드는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알렉스 스타일스와 데이트를 할 마음이 단 한 톨도 없었다는 셈이 된다. 게다가 말도 안 되는 조건이 아닌가? 물론 알렉스 스타일스가 린다 오스본에게 저지른 만행은 그보다 더 말이 안 되는 사건이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토미는 알렉스가 절반 정도는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점심시간이 끝난 후 락카로 되돌아갔을 때, 토미는 이미 그들이 점심시간에 나눈 대화의 절반 정도를 잊어버린 상태였다. 불행히도 5교시에 진행된 지질학 수업의 교사는 그날따라 의욕이 넘쳤고, 그 다음 교시에는 고전 쪽지 시험이 예정되어 있었다. 모든 일정이 끝났을 무렵 토미가 그 무엇도 기억하지 못 하고 있었음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밖엔 할 수가 없다. 말했지만 토미가 그 말도 안 되는 제안을 입 밖에 냈을 때부터, 그는 거의 진심을 말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알렉스 스타일스가 빠른 보폭으로 토미의 교실을 지나쳐 바로 옆 교실, 린다 오스본이 앉아 있는 B반으로 향하고 있을 때, 토미는 노트와 교재를 가방에 차례로 욱여넣는다고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그는 주변이 왁자하기 시작하자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책상을 박차고 하나 둘 빠져나가고 있었다. 토미는 가방에 마저 레포트를 집어넣은 후, 백팩을 매고 바깥으로 나왔다. 복도는 이미 린다 오스본과 알렉스 스타일스를 빙 둘러싼 구경꾼들로 가득 차있었다. 토미는 그 때까지도 이 소란의 주인공들이 대체 어떤 경위로 모이게 된 것인지는 까맣게 잊은 채로 인파를 헤치고 있었는데, 곧 익숙한 목소리에 멈추어 설 수밖엔 없었다.

 “오, 아-알-렉스, 너 정말 뻔뻔하고 구역질난다!”

 그것은 린다 오스본이었다.

 “그래?”

 그리고 알렉스 스타일스도 거기 있었다.

 토미는 구경꾼들을 재치고 앞으로 이동했다. 잠시만, 잠시만 지나갈게, 잠시만……. 하지만 사람들은 도무지 순순히 길을 비켜줄 생각이 없어 보였는데, 그건 그들이 의도한 게 아니라 모두가 린다 오스본과 알렉스 스타일스를 바라보고 있어 낑낑거리는 토미에게 신경을 써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토미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거의 엎어질 뻔했고, 다행스럽게도 누군가 이를 잡아준 덕분에 쓰러지는 꼴은 간신히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토미가 고개를 들어 그 누군가를 확인하는 순간, 그건 다행스러운 게 아니라 불행한 일이 되었다.

 알렉스는 웃고 있었다.

 “오, 왔구나, 토미.”

 “어.”

 토미는 입을 다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구경꾼들은 모두 토미를 보고 있었다. 그는 인파를 헤치다 얼결에 앞으로 떠밀려선, 소란의 한가운데로 들어와 버린 것이다! 토미의 등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왔다니?”

 토미가 어색하게 되물었지만 답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알렉스 스타일스는 지금 린다 오스본에게 사과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토미 화이트헤드와 데이트하기 위해서.

 “너 약속한 거야.”

 알렉스가 어깨를 으쓱이곤 고개를 저었다.

 “이 빌어먹을 약속을 건 건 너니까. 난 정말이지, 얘 얼굴은 다신보고 싶지 않았다고.”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알렉스.”

 린다 오스본이 언짢은 듯 대꾸했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시선으로 토미를 가리켰다.

 “얜 누구니? 너랑 뒹군 호모?”

 “뭐든 네가 알 바는 아니지, 오스본.”

 알렉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굴었다. 토미가 여전히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알렉스를 뿌리치자, 그는 순순히 토미를 놔주었다. 알렉스의 시선은 린다 오스본을 향해 꼿꼿하게 고정되어 있었고, 입가엔 여유로우면서도 위태로운 웃음이 걸려있었다. 토미는 알렉스의 옆모습과 그들을 둘러싼 구경꾼들, 그리고 마치 미어캣 무리처럼 린다의 주변을 지키고 서서 알렉스를 무시무시한 눈으로 노려보는 그녀의 친구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린다 오스본은 미어켓들의 여왕처럼 보였다.

 그녀가 고개를 기울여 머리카락을 어깨 너머로 털어냈다.

 “그래서?”

 린다가 물었다.

 “나한테 찾아온 이유가 뭔데?”

 알렉스는 토미를 한 번 돌아보았다. 시선이 마주쳤고, 알렉스는 다소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거렸다. 토미는 웃지 않았다. 그는 그저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혹은, 알렉스가 그만두고 돌아가거나. 

 그러나 그럴 일은 없어 보였다. 알렉스는 다시 고개를 돌렸고, 린다를 향해 다소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글쎄. 너에게 사과하려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군중 속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동시에 몇몇은 ‘알렉스가 드디어 제정신을 차린 모양이지.’라고 입을 모아 납득하고 있었다. 토미는 전자의 반응을 취한 사람들이 완전 돌아버린 거라고 생각했다. 

 린다 오스본은 입술을 비틀어 올리며 웃고 있었는데, 그녀의 친구들 역시 비슷한 얼굴이었다. 그들은 마치 바닥으로 떨어진 명예를 천신만고의 끝에 회복하고 방금 막 승리를 되찾은 사람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토미는 그녀가 진심으로 위안을 받길 바랐는데, 그런 것치곤 린다의 표정이 꽤나 석연치 못 했음을 아주 나중에도 부정하지 못 했다. 

 “너 정신 차렸구나, 그렇지!”

 린다가 말했다.

 “정말 기쁘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너와 다시 돌아갈 일 따위는 절대 없겠지만,”

 린다는 마치 선심을 쓰듯 그렇게 대꾸했다.

 “네가 사과한다면 어느 정도는 납득하고 너와 친구 관계를 유지할 의향은 있어.”

 “와, 그거 참 영광이네.”

 알렉스는 하나도 고맙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사양할게, 오스본. 난 그냥 사과만 하면 돼. 네가 받아주던 받아주지 않던 그것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오, 나는 받아줄 거야.”

 린다의 표정은 언젠가 자선사업의 홍보대사로 일할 때 짓던 것과 아주 유사했고 일종의 결의에 차있었다.

 “왜냐하면 내 검진결과가 나쁘지 않았거든. 난 월요일에 이미 병원에 다녀왔어.”

 “뭐라고?”

 알렉스가 얼굴을 찡그렸다. 린다는 계속해서 늘어놓았다.

 “오, 알렉스, 너도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어쨌든 네가 아직 최악의 상태는 아니어서 다행이야. 그리고 그 이전에 네가 마음을 고쳐먹고 정상이 되려고 노력한다는 것도 기뻐.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이전의 애정을 생각해서 기뻐하는 거야.”

 토미는 린다 오스본이 말하는 검진결과가 임신 혹은 그 비슷한 것에 대한 것이라면, 나쁘지 않다의 기준은 대체 무엇인지 고민해보았다. 어쨌든 린다 오스본의 기분은 나빠 보이지 않았고, 그건 토미에게 자신의 모험이 도덕적인 결과로 볼 때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었건 걸지도 모르겠다는 위안을 주었다. 물론 토미 자신은 문제를 피하려다 구덩이에 빠진 격이 되었지만, 린다 오스본은 자신에게 몹쓸 짓을 한 과거의 애인에게 사과를 들을 참인 것이다. 알렉스 스타일스의 데이트는 다시 한 번 거절하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토미가 다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긴 했지만, 그건 사실 알렉스가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었던가? 토미는 심지어 그를 위해 어떤 당위성을 마련해주기까지 한 것이다.

 문제는-토미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는데-알렉스의 상태가 나빠졌다는 것이다. 토미는 알렉스가 짧은 순간 눈을 내리깔고 작게 신음하는 것을 보았고, 동시에 “이거 진짜 못 해먹겠네.”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알렉스는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뭐, 어찌 되었던 마저 할 말은 해야겠지.”

 그는 차키를 린다 오스본에게 던졌다. 키는 짤랑거리며 깔끔한 포물선을 그렸는데, 린다는 그것을 받기 위해 손을 뻗을 필요도 없었다. 잠시 후 그것은 정확히 린다의 손에 들어가 있었고, 그녀는 알렉스를 보며 얼굴을 찡그린 채 설명을 구하고 있었다.

 “왜 그런 표정이야? 네 차 키잖아. 참, 오스본.”

 알렉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미안.”

 침묵이 있었다.

 “뭐라고?”

 린다가 되묻자, 알렉스가 눈짓으로 키를 가리키며 대꾸했다.

 “너무 늦게 돌려줘서 미안하다고. 할 말은 그게 끝이야.”

 다시 한 번 긴 침묵이 있었다. 토미는 알렉스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알렉스 역시 고개를 돌려 그 시선을 받아쳤다. 끔찍할 만큼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는 가운데, 알렉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이제.”

 “나랑 데이트 하자.”

 정적.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린다가 거의 비명에 가까운 울음소리를 질렀다. 토미는 놀라서 돌아보았는데, 알렉스가 부드럽고 단호한 손짓으로 그가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토미.”

 “이거 놔.”

 토미가 뿌리치며 뒤로 물러났다. 린다의 울음을 들은 학생들이 문밖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운집한 구경꾼들을 보고 모여들고 있었다. 주변이 점점 소란스러워졌다. 린다 오스본은 차 키를 바닥으로 집어던지곤, 하이힐을 신은 채 마구 발을 굴렀다. 그녀의 나이를 생각하자면 도무지 믿을 수 없을 만큼 우스운 광경이었다.

 “알렉스, 넌 정말 무례하고 뻔뻔하고 끔찍해!”

 린다는 씩씩거리며 욕을 퍼부었다.

 “넌 지금 나를 완전 우습게 만든 거야, 알고 있어?”

 모두가 마치 어떤 쇼를 보는 것처럼 린다로부터 눈을 떼지 못 하고 있는 가운데, 토미는 복도 끝에서부터 걸어오는 미스 메리엇을 발견하곤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소란에 휩싸여 있다는 걸 교사에게 알리고 싶은 생각은 추어도 없었다. 군중들이 웅성거리고 있었고 이제 모든 소리는 토미에게 굉장히 크게 다가오고 있었다. “들었어?” “뭐가?” “방금 알렉스가 데이트라고 한 거 맞지?” “방금 쟤한테 데이트 신청한 거야?” “이름이 뭐더라? 어제 들었는데…… 아, 맞아.”

 토미 화이트헤드!

 세상이 빙글빙글 돌면서 급격히 속이 안 좋아졌다. 배가 부글거리고 있었고 모든 기운이 역류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점심에 억지로 꾸역꾸역 욱여넣은 샌드위치 때문일 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런 것 같았다. 목구멍으로 신 양배추물이 연거푸 넘어오고 있었다. 토미는 입을 틀어막고 몇 걸음 더 뒷걸음질 쳤다. 알렉스가 토미의 어깨를 붙잡고 작게 흔들었다. “토미? 토미, 너 괜찮아?” 알렉스의 목소리는 귓가로 들어오지 못 하고 웅웅거리며 흩어졌다. 토미는 입을 벌리다 말고 꾹 다문 채 작게 신음했다. 괜찮을 리가… 없었다!

 “토할 것 같아…….”

 “뭐라고?”

 알렉스가 고개를 기울였다. 바싹 닿은 귓가로 토미가 한 번 더 웅얼거렸다.

 “토할 것 같으니까, 저리 꺼지라고, 알렉스…….”

 이제 귓속으로 파고드는 모든 게 비명처럼 들렸다. 린다 오스본이 발을 구르며 내는 하이힐의 소리, 아이들의 웅성거림과 알렉스의 속삭임, 미스 메리엇의 고함소리가 고장난 테이프처럼 길게 늘어지다가…… 완벽히 정지했다. 바로 그 순간, 양배추의 신물이 코로 맹렬하게 넘어오더니 목구멍을 타고 반죽이 된 샌드위치가 치솟았다. 토미는 알렉스를 빠르게 밀쳐내곤 벽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구토했다.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가… 차차 페이드인 되었다. 풍경이 돌아오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최악이야.’

 토미는 생각했다. 복도의 모두, 심지어는 린다 오스본까지 얼어붙은 채 자신을 보고 있었다. 역겨운 느낌이 깔깔하게, 그리고 끊이지 않고 목구멍으로 넘어왔고, 토미는 그것을 도무지 제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락카에 기댄 채 속수무책으로 뱃속에 든 모든 것을 게워냈다. 구토감에 눈물이 났다.

 그리고… 모든 게 끝났다. 미스 메리엇이 인파를 헤치고 다가오고 있었다.

 “다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토미는 대답하려고 했다. 교수님, 설명하자면요, 라고 무엇이든 변명하고자 했다. 혹은 책임을 전가하고 도망갈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교수님, 제가 설명하자면, 이라고 토미는 운을 떼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은. 이 모든 것은……. 그 순간, 알렉스가 토미를 망설임 없이 안아 올리면서 생각은 거기서 끊어졌다.

 “다들 좀 비켜줘.”

 알렉스는 토미를 어깨에 얹은 채 그의 두 다리를 팔로 감아 단단하게 지탱했다. 그 과정에서 엉망이 된 토미의 옷이나 시큼한 냄새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토미를 그대로 들어 올린 후, 미스 메리엇이 걸어오는 반대 방향, 그러니까 알렉스가 왔던 길을 성큼성큼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홍해처럼 갈라져 둘이 지나갈 수 있도록 비켜섰다. 토미는 작게 신음했는데, 이번엔 고통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자책 때문이었다. 그러나 알렉스가 부드럽게 토미의 뒤통수를 쓸어주는 순간, 믿을 수 없게도 그 모든 상념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오로지 완성되지 못 한 생각만이 남았다. 알렉스 스타일스가 그를 보건실로 옮기는 동안, 토미 화이트헤드는 머릿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교수님, 제가 설명하자면요. 이 모든 일은 결코 저나 린다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것은 전부……, 이 모든 것은 전부……,

 알렉스 스타일스 때문이에요.

 까무룩 정신을 잃어버리는 드라마틱한 전개는 일어나지 않았다. 토미는 알렉스의 품에 안긴 채 한 층을 건너 보건실까지 이송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같은 학년뿐 아니라 타 학년-심지어는 몇 명의 교사까지-이 목격했다는 점에서, 토미 화이트헤드의 다음 주 월요일은 꼬여도 단단히 꼬일 것이 분명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알렉스가 토미를 매트리스 위에 앉혀놓았을 때, 토미 화이트헤드의 기분은 나락으로 떨어져있었다. 알렉스가 휴지를 들고 오자 토미는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내리깔고 차갑게 대꾸했다.

 “그냥 가.”

 “농담이지?”

 알렉스는 무릎을 접고 앉아 토미의 턱을 부드럽게 들어 올리려 했는데, 토미는 손을 휘둘러 그를 쳐냈다.

 “됐다니까.”

 “너 대체 왜 이렇게 심술을 부리는 거야?”

 “심술이라고?”

 토미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딴 사과를 오스본에게 해놓고, 소란은 있는 대로 다 피운 후에, 어쨌든 약속을 지켰으니 나와 뭐라도 해보겠다고 구는 거야, 지금?”

 토미가 바닥을 쏘아보며 무시무시하게 내뱉었다.

 “난 정말이지 네가 싫어, 알렉스 스타일스. 넌 뭐라도 된 것처럼 사방팔방을 벌집 쑤시듯이 쑤시고 다니지만, 그래도 사리분별은 할 줄 알았어. 넌 네 스스로가 마치 관대하고, 차별적이지 않고, 모두를 사랑하고, 그래서 동시에 모든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유감스럽게도 넌 내게 있어 정말 형편없는 사람이야. 아니, 굳이 나뿐만 아니라 이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걸. 린다 오스본에게 네가 어떤 짓을 했는지 생각해보라고.”

 알렉스는 휴지를 쥔 채 굳어 있었다. 토미의 시야로 알렉스의 손이 보였다. 그는 휴지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너는… 린다한테 그러면 안 됐어. 그리고 난 처음부터 너랑 데이트 할 생각 같은 거 없었어. 그것에 별로 미안함을 느끼진 않아. 어쨌든 네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따지고 보면 오히려 너는 나한테 고마워해야하는 셈이지. 알렉스, 네가 내 환심을 사려고 이렇게 구는 거 난 전혀 달갑지도 않고 고맙지도 않아. 넌 정말 얄팍하고…….”

 “너 진심이야?”

 알렉스는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되물었다.

 “얄팍하다니, 뭐가? 넌 방금 오스본이 어떤 말을 내뱉었는지 보고 오는 길이야. 토미, 그리고 넌 호모포비아도 아니랬고, 내가 뭘 하던 알 바 아니라고 했었지. 그리고 지금 네 태도를 봐!”

 “내가 뭘?”

 토미는 시큰거리며 토기를 쓸어내렸다. 그는 스스로도 자신이 다소 지나치게 반응하고 있음을 깨달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이미 절반 이상의 진심을 쏟아낸 참이었고 속은 여전히 매슥거렸다. 그렇게 토해냈는데도 불구하고 속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문득 최악의 금요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였으면서도 토미를 앞좌석에 태웠고, 하필 라디오 DJ는 조용한 재즈 팝을 틀어주었으며, 알렉스는 모두의 앞에서 자꾸만 토미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고,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수락해서 그를 곤란하게 만들었으며, 심지어는 그 조건을 이용해 린다 오스본에게 배로 상처를 입혔다. 토미 화이트헤드는 알렉스 스타일스가 싫었다. 아니, 이번 주만의 일도 아니었고 저번 주의 일도 아니었다. 알렉스가 린다 오스본에게 뺨을 얻어맞던 지난주 월요일보다도 훨씬 더, 어쩌면 이번 학년보다 더 멀리, 작년, 혹은 제작년에도… 토미는 그를 싫어하고 있었다. 그건, 알렉스 스타일스가 잘나서도 아니었고, 그가 잘난 집안이어서도 아니었고, 난봉꾼이어서도 아니었다. 그는……. 그는 토미와 비슷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모든 걸 해내고… 있어왔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을. 

‘커밍아웃’을. 

 

Tommy0612 : 쉬운 문제가 아니잖아. 난 가볍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불신해. 16:57

gib22 : 네가 말한 그 알렉스처럼? 16:57

Tommy0612 : 그래. 16:58

Tommy0612 : 걔처럼. 16:58

 

 “그래, 내 태도 말이지. 알렉스, 전에도 말했지만 난 린다 오스본과 네 사이에 벌어진 일 따위에 깊은 관심은 없어.”

 토미가 말했다.

 “하지만 솔직히… 네가 언젠가 이런 문제에 휘말리기를 늘 바라고 있었어.”

 “무슨 뜻이야?”

알렉스가 날카롭게 되물었다.

“난 너를 직접적으로 싫어할 구실이 필요했던 모양이야.”

토미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알렉스, 네가 방금 그런 일을 겪게 되어서 참 기쁘다. 넌 돌려받은 거고, 난 비로소 널 싫어할 완벽할 구실을 찾은 셈이지.”

끔찍한 정적이 흘렀다. 알렉스는 휴지를 움켜쥔 채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인 토미의 뒤통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정확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고, 토미 화이트헤드의 사고방식을 따라잡을 수도 없었고, 그것을 따라잡을 시도도 딱히 하고 싶지는 않았다. 헤이호, 이번엔 끝까지 가보자고. 머릿속의 목소리가 비웃고 있었다. 그러니까 알렉스 스타일스, 뭘 기대한 거야? 네가 건드린 건 생각보다 더 형편없는 인간인 것 같은데. 저 자식 완전 미친 거 아니야? 알렉스, 말해 봐, 알렉스! 어쩔 거야, 끝까지 갈 거야? 계속 해볼 거야? 알렉스는 생각했다. ‘no.' 

 “토미.”

 알렉스가 말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난 지금부터 영영 꺼져주겠어. 하지만 그 전에 진지하게 말하는데, 넌 빌어먹을 호모포비아야.”

 “그리고 넌 인간쓰레기고.”

 토미가 대꾸했고, 알렉스는 이번에는 결코 웃지 않았다.

 “놀랍네! 그거 참 고맙다.”

 그는 쓰레기통에 휴지를 던져 넣으며 싸늘하게 대꾸했다.

“난 린다 오스본한테 사과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솔직히 방금 것도 사소한 문제였지. 난 그걸 대충 제시에게 맡길 셈이었어. 굳이 얼굴 보면서 키를 돌려줄 필요는 없잖아, 안 그래? 너도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빌어먹을 정도로 아주 잘 알고 있었을 테니까 말이야. 맞아, 네가 그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걸었을 때, 난 네가 오기를 부린다는 걸 알았지. 네가 날 싫어하는 것쯤은 나도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그거 알아, 화이트헤드? 난 너를 작년, 아니 재작년부터 알고 있었고, 네가 나를 싫어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어. 하지만 그게 그 흔히들 말하는 깍쟁이들의 태도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내가 거기에 도전한 건 맞아. 그걸 얄팍하다고 말해도 난 별로 상관 안 해. 어차피 내 연애사는 모두 얄팍한 채로 시작했었거든. 하지만 맹세컨대 네가 린다 오스본과 똑같은 족속인 걸 알았더라면 이런 바보 같은 조건은 받아들이지도 않았어. 사리분별이라, 오, 나도 그 정도는 할 줄 알아, 화이트헤드! 난 린다 오스본에게 전혀 사과할 것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왜냐하면 난 잘못한 적이 없거든. 그리고 네가 그것에 대해 뭐라 참견할 여지 같은 건 없어.”

“아, 그래.”

토미는 빈정거렸다.

“그럼 우리의 개인적인 일로 인해서 결국 오스본만 불쌍하게 된 거네, 그렇지?”

“너 진짜 최악이다.”

알렉스가 얼굴을 구겼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이상하고, 불가해하고, 최악이야.” 

토미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알렉스의 표정을 마주보곤 몹시 당황했다. 토미는, 단 한 번도 알렉스 스타일스가 그런 표정을 지을 수도 있는 사람이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건 그가 생각하는 알렉스가 지나치게 가벼워서도 있었고, 그런 충격을 받을 만큼의 양심과 마음이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린다 오스본에게 진작 사과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았고, 토미 화이트헤드는 죄책감을 느껴야 할 타이밍인 것 같았다.

알렉스 스타일스는 상처를 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네가 이런 사람이라서 유감스럽다, 화이트헤드. 널 제대로 알진 못 했지만, 어쩐지 난 네가 괜찮은 놈일 거라고 생각했었어.”

알렉스는 지친 것처럼 중얼거렸다.

“뭐, 난 늘 사람을 고르는데 서투르지.”

그리고… 그는 떠났다. 보건실 문이 닫혔고, 토미 화이트헤드는 홀로 시트 위에 남겨졌다. 옷에서부터 토사물 냄새가 진하게 피어오르는 가운데 토미는 방금 전까지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를 진지하게 곱씹어보았다. 그는 분노에 취한 채 얼떨떨한 상태에 놓였고, 알렉스의 반응을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마음 한 편으론 상관 쓰지 말라고 아우성을 치는 내면의 목소리들과 맞서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토미 화이트헤드는 마음이 찝찝해졌다. 알렉스 스타일스에게 자신이 틀린 말을 했었나? 아니다. 알렉스 스타일스에게 필요 이상으로 대꾸했었나? 그렇다. 토미는 오스본의 일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몰아붙였고 비난했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린다의 일은 알렉스의 잘못이었다. 전적으로, 그랬다.

하지만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 사실 그건 알렉스도 토미도 흥분해서 도무지 알아차리질 못 했던 것인데, 그들이 주고받은 대화는 조금씩 어긋나있었다. 전개도 당위도 엉성하고 이상했으며, 결과적으로 그들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분노하고 있었다. 그리고 알렉스 스타일스는 상처를 받았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토미가 전적으로 린다를 지지하고 알렉스에게 비난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그게 왜?

…Nevermind. 토미가 중얼거리며 일어났다. 휴대폰으로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짐의 전화였다. 반짝거리는 화면 위로 gib22가 보냈던 메시지가 떠있었다.

 

gib22 : 무슨 일인데? :> 12:14

 

토미는 가만히 내려다보았고, 짐의 전화가 끊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짐이 늘 그렇듯 포기했을 때, 홀드를 풀고 gib22에게 답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Tommy0612 : 어… 그냥 좀.   15:08

Tommy0612 : 하지만 일단 다 끝났어.   15:08

 

뭐라고 설명해야만 좋을까? 학교 최고의 가십꾼들이 한 판을 벌였고, 그 사이에 껴서 구경꾼들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한데다가, 공개적으로 데이트 신청을 받고, 그 뒤에 곧장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멋지게 토한 금요일이다. 짐은 주차장에서 토미를 기다리고 있으며 곧 다시 전화를 걸 테고 오늘 저녁은 피자도 라자냐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토미 화이트헤드는 방금 알렉스 스타일스와 완전히 틀어졌다. 앞으로 알렉스 스타일스는 결코 토미의 삶에 침범할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고, 그건 바로 토미가 바라던 전개였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마음 한 구석이 이렇게 찜찜한가? …Nevermind. 이제 주문을 외울 차례였다. 그게 뭐였더라? 그래, 신탁계좌, 아이비리그, 성공이 보장된 미래. 다시 한 번 외운다. 신탁계좌, 아이비리그, 성공이 보장된 미래.

‘알 게 뭐야.’

엉망진창이 된 토미 화이트헤드가 보건실을 나선다. 고개를 숙이고 걸으며 눈을 감는다. 비틀거리면서도 꾸준히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다음 주 월요일, 미스 메리엇의 급작스러운 수술 일정으로 생긴 부재가 초래할 비극을 알았더라면, 토미는 그 날 짐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 피자든 라나쟈든 무엇이든 잔뜩 퍼먹고 몸에 문제를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을 것이다. 

토미 화이트헤드와 알렉스 스타일스의 앞에는, 다음 주 내내 한 자리에 앉아 지루하기 짝이 없는 캘리포니아 로컬 역사 수업을 들으며, 미스터 심슨의 무용담을 들을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지. 아무렴.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