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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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는 등허리를 꼿꼿하게 펼친 채 앞만 보고 있었다. 창가로부터 오전의 햇살이 끊임없이 쏟아지던 장면이 기억난다. 알렉스는 토미 옆에 앉아 있었다. 그들이 한 자리에 앉은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알렉스는 옆자리의 토미가 한 번쯤은 자신에게 말을 걸거나 시선을 마주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토미는 처음부터 끝까지 칠판을 응시하며 앉아 있었고, 이따금 시선을 내려 노트 위에 필기를 하는 것으로 그 수업에 완전히 참여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거의 도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알렉스는 쫓기듯이 필기하는 토미의 펜과 희미하게 떨리는 손등, 어지럽게 움직이다 갈피를 잡은 듯 칠판을 응시하는 토미의 불안한 시선 따위를 관찰할 수 있었다. 애쓰지 않아도 훤히 보였다. 어쩌면 지각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토미는 그 날 유일한 지각생이었고, 거의 최초의 지각인 것처럼 보였고-교사가 무슨 일이 있냐는 식으로 오히려 걱정했기 때문이었다-무언가 불만스러워 보였고 동시에 몹시 불편해보였다. 그는 교실에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온’사람이었던 알렉스 옆의 빈자리를, 그 교실에 남은 유일한 빈자리를 잠시 응시했다. 그리곤 이내 체념한 것처럼 가방을 풀고 자리로 들어왔다. 알렉스는 토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는 교내에서 유명했다. 우등생이었고 단 한 번도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었다. 같은 수업을 몇 번 들어본 적도 있고 복도에서 마주친 적도 있다. 알렉스가 아는 한 그는 굉장히 조용하고 침착했다. 재미있을 거야. 무엇이 재미있을 것인지도 모르고 알렉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우등생과 한 자리에 앉았네. 좋아, 무슨 일이 벌어질지 한 번 보자고. 그러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토미는 알렉스 옆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곤, 놀라울 정도로 소리 없이 의자를 끌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재빨리 노트를 꺼내 책상에 펼쳐놓고 필기구 세 개-펜, 하이라이트 마크, 화이트-를 나란히 늘어놓았다. 그 모습이 마치 숙련된 목수처럼 보였다. 알렉스가 대놓고 토미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알렉스의 시선을 눈치 채지 못 할 리가 만무했으므로 그것은 무관심하다기보다 오히려 필사적으로 알렉스를 차단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알렉스는 그전까진 한 번도 마음으로 들어온 적이 없던 토미의 이름을 중얼거려보아야 했다. 토미. 토미 화이트헤드. 그 이름은 호기심으로 반들거리고 있었다. 알렉스의 입술이 밀려 올라갔다.

“Hey.”

알렉스가 작게 속삭이며 토미의 손가락을 제 손가락으로 슬쩍 건드렸다. 토미는 돌아보지 않았다. 희미하게 미간에 주름을 잡았을 뿐이었다. 알렉스가 한 번 더 불렀다.

“Hey.”

이번에 토미는 알렉스를 곁눈질했다. 경고의 눈빛처럼 보였다. 알렉스는 그런 반응이 신선했다. 적어도 알렉스의 Hey는 그 이전까진 꽤 괜찮은 신호와 함께 긍정적인 응답을 들고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알렉스가 아는 한, 초면에 알렉스에게 반감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호모포비아 집단을 제외하곤. 어쨌든 호모포비아들도 알렉스의 Hey에 무응답으로 대처하지는 않았으므로 토미는 거의 최초라고 할 수 있었다. 링컨 스쿨 1교시에 진행되는 켈리포니아 로컬 역사 수업은 형편없을 뿐만 아니라 교사의 잡담이 지나쳐 영양가가 거의 없는 수업으로 유명하다. 알렉스가 맹세컨대 이 수업에서 필기할 것이 있다면 미스터 심슨의 사생활에 지극히 관심이 많은 학생이거나, 혹은 미스터 심슨이 쪽지 시험에 자신의 신혼여행지가 튀니지였는지 바르셀로나였는지를 묻는 보너스 문제를 출제할 정도로 분별력 없는 교사여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토미는 교실에 입성하자마자 멈추지 않고 무엇이든 적고 있었다. 옆에서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는 교내 최고의 미남(자기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어쨌든 사실이다)을 완전히 차단하고 말이다. 사실, 알렉스에게 별다른 목적이 있는 건 아니었다. 플러팅의 의도도 없었다. 그는 그저… 조금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알렉스가 물었다.

“오늘 왜 늦었어?”

이제 미스터 심슨은 캘리포니아의 타호 호수에 대해 설명하다 말고 자신의 보이스카우트 시절 첫 캠핑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토미는 시선을 내리깔고 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말 이상한 광경이었다. 알렉스가 손을 뻗어 토미의 노트를 건드리려고 하자, 토미가 그의 손을 밀쳐내다 말고 펜을 놓쳤다. 바닥에 떨어진 펜이 데굴데굴 구르다 말고 알렉스의 구두에 맞아 멈추었다. 순산 토미와 알렉스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햇빛 아래서 토미의 눈동자가 청록색으로 반짝였다. 알렉스는 그 속에서 토미의 신경질적인 어떤 말들을 읽어낼 수 있었다. ‘꺼져.’ 그는 허리를 굽혀 토미의 펜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토미에게 내밀었다.

“미안.”

“괜찮아.”

토미의 목소리는 그 신경질적인 눈동자에 비해 지나치게 단조로운 톤이었다.

“고마워.”

토미는 펜을 받아든 후 시선으로 인사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알렉스를 돌아보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스스로도 모르겠지만, 알렉스는 고의적으로 토미와 슬쩍 팔을 부딪쳤다. 이번에 토미는 뒤척이거나 노려보거나 꼿꼿하게 앉지 않고 알렉스의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알렉스는 똑똑히 들었다. ‘Fuck.' 오, 그래. 힘내, 알렉스. 이런 일도 있는 거지. 알렉스는 어깨를 으쓱하곤 깨끗한 자신의 노트를 덮었다. 내가 좀 성가시게 굴긴 했잖아. 그렇지? 종이 치자 토미는 깔끔하게 가방을 챙긴 후 누구보다 빠르게 교실을 나가버렸다. 제시가 다가오다 말고 멈춰 서서 알렉스의 표정을 감정했다. 너 굉장히 얼떨떨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네. 알렉스가 입술을 익살스럽게 삐죽이며 대답했다. 그럴 일이 좀 있었어. 그러고 나서, 제시가 낸시를 데리고 왔고… 정확히 점심시간 종이 칠 무렵 낸시는 알렉스의 스물 몇 번째 애인이 되어 있었다. 

알렉스는 토미를 깔끔하게 잊어버렸다. 

 

잠시 침묵이 있었다. 토미의 표정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뭐라고?”

토미는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되물었다.

“방금 뭐라고 한 거야?”

“나랑 데이트하자고.”

알렉스가 말했다.

“뭐 어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던가, 아님 영화를 빌려서 집에 가던가, 피자를 먹던가… Whatever.”

“데이트가 뭔지는 나도 알아.”

토미가 냉랭하게 대꾸했다. 알렉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오, 잘 됐네. 그럼 우리…….”

“싫어.”

토미가 딱 잘라 말했다. 알렉스는 놀랍지도 않았는데, 그건 거의 예고된 대답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는 준비되어 있었으므로 전혀 상처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그에게 이상한 전의를 불어넣었다. 알렉스가 다시 한 번 고개를 기울이고 조금 앙탈을 부렸다.

“왜?”

“첫째로, 난 바빠.”

토미는 마치 준비되어 있던 사람처럼 이유를 열거하기 시작했다.

“둘째로, 난 남자랑 데이트 안 해.”

“셋째로, 한다고 해도 너랑은 안 해.”

“넷째로, 난…….”

“워, 알겠어, 토미. 알겠어.”

알렉스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토미는 알렉스를 쏘아보았는데, 알렉스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었으므로 그는 양팔 안에 갇힌 것처럼 보였다. 토미의 체구는 알렉스가 늘 멀리서 마주칠 때마다 짐작했던 것 이상으로 작았다. 토미의 어깨는 그의 어깨와 거의 반배의 차이가 있었다. 저보다 몇 살 어리다고 해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알렉스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토미를 내려다보았다. 그게 토미를 못마땅하게 만든 것 같았다. 토미는 신경질적으로 알렉스의 팔을 치워냈다. 진동소리가 들렸다. 토미는 고개를 숙여 제 휴대폰을 확인하곤 다시 홀드를 내렸다. 알렉스가 얼굴을 찡그린 채 한쪽 눈썹을 올렸다. 

“애인이야?”

“아니.”

토미는 마치 종족 번식 외엔 별 다른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신인류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정말 그렇게밖엔 그 눈빛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새)아빠야.”

“그럼 넌 지금 솔로라는 거네?”

“그렇다고 너랑 데이트 할 생각은 없어.”

“그걸 노리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난 윤리적인 입장으로 접근한 거라고.”

알렉스가 항복이라도 한 것처럼 양손을 들어올렸다. 토미는 가방을 고쳐 맸다.

“잘 됐네. 계속 윤리적으로 살도록 노력해 봐. 내 눈엔 전혀 그렇게 될 것 같아 보이지 않지만.”

“오, 너 굉장히 단정적이다.”

“그럼 아니야?”

“아닌데.”

“그럼 가서 린다에게 사과부터 하는 게 어때?”

그 말에 알렉스의 표정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너 호모포비아야?”

“뭐라고?”

이번엔 토미가 경멸스러운 듯 눈을 치켜떴다.

“내가?”

“그래.”

알렉스가 대꾸했다. 

“진지하게 묻는 거야.”

토미는 모욕을 받은 기분이 됐다. 끔찍한 농담을 듣는 편이 훨씬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동시에 그는 알렉스가 몹시 가증스러워졌다. 그러니까 알렉스 그는 성소수자고, 그러므로 자신을 거절하면 상대는 호모포비아가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 그는 린다를 임신시켰고 분명 그에 관해 무책임하게 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 그 주차장에서, 마치 쇼의 일부처럼 화려하게 뺨을 얻어맞으며 걷어차였다. 린다는 시끄럽고 유난스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그런 일’을 당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토미는 진심으로 린다를 동정했다. 알렉스를 빌어먹을 난봉꾼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는 토미의 상상 속에서 윤리의 테두리 가장 끄트머리에 선 채 저 편할 대로 선을 넘나들고 있었다. 토미는 알렉스에 대해 단언할 수 있으며 그에 대한 판단을 유보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장담했다. 그리고 그에게 그 어떤 윤리적 비난, 혹은 인간적 지성에 대한 비판을 듣는다면, 그건 토미가 제정신이 아니거나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을 때뿐일 거라고, 아니,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걸 알렉스의 입에서 들을 이유 같은 건 없다고 완벽하게… 아주 완벽하게 생각했다.

“난 빌어먹을 호모포비아가 아니야.”

토미는 얼굴을 찡그린 채 숨을 몰아쉬려고 애썼다.

“이봐, 알렉스. 내가 너를 거절했다고 호모포비아가 되는 건 아니야. 난 네가 누구랑 자던 전혀 상관없어. 다시 말해서, 난 그냥 너한테 관심이 없는 거야. 신경 끄고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오.”

알렉스는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너 그런데도 내가 오스본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 때, 다시 진동이 울렸다. 이번엔 끊어지지 않고 연거푸 이어졌다. 토미는 알렉스와 자신의 액정을 번갈아 보다 말고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토미는 연거푸 “네, 알아요.” “네, 죄송해요.” “지금 교문 근처요.” “곧 나갈게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통화를 종료한 후 완전히 고개를 돌렸다.

“솔직히 말해서, 네가 오스본에게 사과하던 말던 그것도 내 알 바는 아니지만.”

토미는 짜증스러운 기색이었다.

“나라면 마땅히 그러했을 거야.”

그리고 그는 인사도 없나 나가버렸다. 알렉스는 자리에 못 박힌 듯이 서서, 토미가 빵,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승용차 앞에 멈추어 창문을 내린 남자와 몇 마디 대화를 하고, 뒷좌석에 타려다 멈추어 서서 다시 한 번 남자와 대화하곤…… 다시 앞좌석 문을 여는 것을 지켜보았다. 차는 요란한 라디오 소리를 내며 떠나버렸다. 주차장으로 알렉스의 Boo! 몇 장이 마구 굴러다니고 있었다. 알렉스는 손에 들린 토미의 설문지를 내려다보았다.

 

비고 : 이런 쓸데없는 짓은 왜 하는 거야?

 

“글쎄, 토미. 내가 알겠어?”

알렉스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헤이 호, 이번엔 끝까지 가보자고.”

재미있을 거야.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알렉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학교 최고의 우등생에게 차였네, 좋아, 무슨 일이 벌어질지 한 번 보자고. 

그렇게 해서, 토미 화이트헤드는 알렉스 스타일스의 타겟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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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Tom0612

급해서 그런데 종료된 채팅방 상대 어떻게 불러내?

└ 이거 완전 핑프잖아 -HHpl

 └└ 나도 잘 모르는데 -karl9

└└└ 333 핑프는 아닌 듯 -jujujm 

└ 그냥 네 프로필 들어가서 채팅 서버 접속해. 대기실에 채팅 기록 있어. -torry

 └└ 고마워. -tom0612

└ 니 학교킹카 까던 걔 아님? 뭔일인데 -df***

 └└ 그리고 넌 또 아이디 블러처리하네 -hurrion

└└└ 너 내 스토커냐? -df***

 

My Cheating History

HOSTNAME : gib22 

2017.06.24 17:00 

ip 122.101.122.92

! gib22를 호출합니다 !

 

Tommy0612 : 급해서 그런데, 이거 보면 답장 줄 수 있어?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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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은 기묘할 정도로 조용한 금요일이었다. 토미 화이트헤드와 짐 트레버는 침묵 속에서 링컨 스쿨까지 이동했다. 라디오는 15번 도로의 정체 상황을 사무적으로 알리는 중이었고 평소 시끄러운 댄스곡을 선곡하던 DJ는 재즈풍의 클래식팝을 틀어주었다. 짐은 토미에게 사소한 몇 가지를 이야기했다. 아침을 덜 먹던데 입맛이 없니? 어제 하루 종일 노트북만 보고 있던데 너무 오래 그것만 두들기고 있지 마라. 눈이 안 좋아지잖니. 늘 그렇듯 짐의 질문 혹은 염려는 지나치게 의무적인 느낌이 있었고-적어도 토미는 그렇게 생각했다-토미는 대충 ok로 모든 질문에 대답했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둘은 링컨 스쿨의 주차장에 다다르기 전까지 단 한 마디도 주고받지 않았다. 토미는 안전벨트를 푼 후 몸을 돌려 뒷좌석에 던져놓은 자신의 가방을 집어 들었다.

어제 짐은 느닷없이 뒷좌석 문을 열어젖힌 토미를 향해 다소 머뭇거리는 톤으로 물었다. “오늘은 앞좌석에 타는 게 어떻겠니.” 정말이지 뜬금없는 제안이었다. 토미는 잠시 그 자리에 뻣뻣하게 굳은 채로 어색하게 입을 벌렸다. 그는 바로 이전에 학교 최고의 킹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어떤 난봉꾼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하고 온 참이었다. 두 번의 거절은 분명 쉬운 일일 것이다.

“어…….”

토미는 머뭇거렸다.

“그래요.”

그래요… 는 무슨! 토미는 속으로 자신에게 욕을 퍼부었다. 그러나 토미의 몸은 이미 앞좌석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가방을 발아래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짐은 헛기침을 하며 라디오 볼륨을 줄였는데, 그건 토미에게 아주 불길한 징조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무슨 일 없었니?”

짐이 물었다. 토미는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뇨, 딱히요.”

그러니까 토미 화이트헤드는 방금 전 학교 최고의 킹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아니, 그만두자. 토미는 더는 생각하기를 관뒀다. 알렉스 스타일스와의 작은 해프닝은 곧 잊혀 질 것이고 마땅히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그는 대체 왜 자신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 것일까? …Nevermind.

“음, 넌 늘 아무 일이 없었다고 대답하는구나.”

짐이 우물쭈물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이제 차는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차창으로 희미하게 토미의 얼굴이 비쳤고, 그 너머로 링컨 스쿨이 빠르게 멀어지는 중이었다. 토미는 찡그리고 있었다. 짐이 지금 뭘 시도하는 거지?

“그야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요.”

“학교를 다니면서… 오, 그러니까 내 말은.”

짐은 진땀을 뺐다.

“네 일상 이야기가 궁금해서 묻는 거였단다. 어떤 문제가 있냐고 물어보는 것만은 아니었다.”

“오.”

토미는 할 말을 고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정말이지 어색하고 끔찍한 분위기였다. 토미는 자신이 짐의 제안을 거절하고 뒷좌석에 앉아야만 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더는 엠마의 핑계를 댈 수 없었지만, 머리를 굴리면 어떤 핑계든 댈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핑계든. 바보 같은 핑계라도 댔다면 짐은 알겠다고 대답했을 것이고 더는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았을 테였다. 토미의 말이 진실이라서가 아니라, 토미의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토미 혹은 엠마가 거절하면 그 이상 다가오지 않고 선을 지켰다. 토미는 그의 그런 점이 굉장히 편안하면서도 불편하게 느껴졌다. 짐이 상처받을 때마다 윽박을 지르거나 신경질을 내는 사람이었다면, 토미는 그를 증오하거나 밀어내는데 훨씬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짐은 상처를 받으면 그대로 거기 멈춰서 다가오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건… 그건 마치, 토미 같았다. 그리고 토미가 생각하건대, 침묵하는 자들이야말로 때론 가장 거대한 상처를 품고 있는 것이다. 짐이 불편했다. 짐이 정말 불편했다. 자신이 가장 손쉽게 상처 입힐 수 있는 상대가 생기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고… 그러니까, 토미는 짐이 정말로 불편했다. 

짐은 가는 내내 토미에게 어색한 대화를 시도하려고 애썼다. 토미는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으로,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표정을 지으며 하나하나에 대답했다. 그는 ok로만 대답할 수 없는 것들을 물어보았고 오래된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토미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헛헛하게 웃음을 터뜨리거나 어깨를 으쓱이기만 했는데, 짐은 그것에 용기를 받은 것처럼 자꾸만 대화를 끌어나갔다. 차가 엠마의 학교에 멈추어 섰을 때, 토미는 속으로 거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엠마가 뒷좌석 문을 열다 말고 앞좌석에 앉은 토미를 흘겨보며 시선으로 물었다. ‘너 뭐야?’ 그러거나 말거나 토미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안녕, 엠마. 오늘도 피자 먹고 싶니?”

“아니.”

엠마는 간밤에 외계인이 토미를 죽이고 그 거죽을 뒤집어쓴 후 완벽히 새로운 토미로 거듭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난 피자에 미친년이 아니야.”

저녁은 라자냐였다. 짐의 요리 실력은 정말 좋았다. 토미는 이번에 한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 차에서 그랬던 것처럼 정말 끔찍하리만큼 어색한 공기가 감도는 저녁 식사였다. 제니는 오늘도 늦는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토미와 엠마는 꾸역꾸역… 아니, 중간부터는 정말 맛있어서 진심을 담아 라자냐를 퍼먹었다. 짐의 ‘어색한 시도’는 저녁에도 계속되었다. 라자냐의 맛과는 상관없이, 토미는 분명 오늘 체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식탁 아래로 초조하게 휴대폰을 확인했다. 게시판에는 이미 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고 잠금 화면으로 알림 몇 개가 쌓여 있었다. 토미는 빠르게 눈을 굴려 내용을 훑어보았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이 hurrion과 df***가 키보드 배틀을 벌이는 것이었다. 대체 왜 남의 게시물에서 이러는 건데? 토미는 묵묵히 라자냐를 씹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짐이 물었다. “더 줄까, 토미?” “아뇨, 됐어요.” 토미는 대답했다. “전 올라갈게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체하지 않았다. 밤이 될 때까지 토미는 그가 락카 앞에서 모조리 쏟아버린 유인물들을 파일 철에 가지런히 정리하며 수시로 노트북을 들락거렸다. 채팅의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달리 뾰족한 수나 괜찮은 채팅 친구의 조언 없이, 거의 잠들 때까지, 토미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만 했다. 알렉스 스타일스는 무슨 정신으로 내게 데이트 신청을 한 거지?

“다녀올게요.”

토미가 다소 멍한 정신으로 인사했다. 

“늦지 않고 마중 나가마.”

짐은 아주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잘 다녀와라, 토미.”

토미는 건성으로 보이는 고갯짓-사실 그는 어쩔 줄 몰라 고개를 까딱일지 말지 고민하다가, 너무 늦어버린 타이밍에 마구 흔들어버린 것이다-으로 답한 후 차문을 닫았다. 짐이 오늘 아침에 침묵을 지켜준 건 굉장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토미는 뒷좌석에 탈 생각으로 가방을 미리부터 던져놓았지만, 결국 또다시 앞좌석에 앉는 끔찍한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었다. 금요일은 토미에게 굉장히 피곤한 날이 될 예정이었으므로 아침부터 짐과의 대화로 진땀을 뺐다면 토미는 그 날 점심 알렉스 스타일스의 멱살을 쥐어 잡았을 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그들은 그 날 거의 하루 종일 붙어 있어야 했다. 거의 하루 종일.

자신의 슬픈 운명을 아직 감지하지 못 한 토미 화이트헤드는 잠시 머뭇거리며 주차장을 둘러보았는데, 그곳에는 더는 Boo! 하고 사랑의 총알을 발사하는 무수한 알렉스의 얼굴도 없었고, 요란하게 트럼펫을 울리는 AL's 패거리도 없었고, 설문을 위해 뛰어다니는 제시도 없었다. 그는 아주 만족스럽게 불안한 마음을 놓아주었다. 빵! 뒤에서 클랙슨이 울렸다. 토미는 슬쩍 고개를 돌려 짐을 돌아보다가, 이내 가방을 고쳐 매곤 교문을 통과했다.

 

알렉스 스타일스는 토미의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뭔데?’

토미는 생각했다.

‘이게 대체 뭔데?’

모두의 시선이 토미 화이트헤드에게 집중되고 있었는데, 알렉스는 그 일련의 시선이 결코 기분 나쁘지 않다는 듯 작게 휘파람까지 불어댔다. 말하자면 1교시의 흔하지 않은 풍경이었고 어떤 일이 막 벌어질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교내의 모든 아이들이 생각하기에 토미 화이트헤드와 알렉스 스타일스의 교집합은 고작 해봐야 같은 영장류라는 정도였고, 굳이 또 하나의 교집합을 찾는다면 생물학적으로 남자라는 것뿐이었던 것이다. 알렉스 스타일스가 누군가의 옆자리에 자진해서 앉는 것이 결코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가 앞줄, 그것도 흔히들 모범생 혹은 너드 취급을 받는 인간들을 위해 마련된 좌석처럼 가지런히 비어있는 “지식의 로얄석”에 앉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알렉스 스타일스는 거기 앉았다. 정확히는, 토미 화이트헤드가 앉은 자리 옆에 가방을 두고 앉았다. 토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알렉스를 올려다보자, 알렉스는 예의 그 매력적인 미소를 만연하게 띄우며 고개를 기울였다.

“오, 안녕, 토미. 간밤에 생각은 좀 해봤어?”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토미가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뭘?”

“어제 내가 데이트 신청한 거.”

교실이 소리 없이 술렁거렸고 이제 교실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 번도 눈길을 준 적이 없던 교탁 앞 로얄 석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아예 책상 아래로 빠르게 텍스트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토미는 이 일련의 사태가 전혀 반갑지 않았으므로 최대한 덤덤하게 수습하고자 애썼다.

“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네가 어제 거절했잖아.”

“거절하면 보통 그걸로 끝난 거 아니야?”

“좋아, 잘 기억하고 있잖아.”

토미는 자신이 바보 같이 느껴져 입을 다물었다. 알렉스는 기분 좋은 듯 자리에 앉아 토미를 바라보았다. 토미는 그 부담스러운 관심에 응하는 대신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교실이 지나칠 정도로 조용했기 때문인데, 그건 전적으로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었던 까닭이었고, 토미는 정말로… 자신이 아직 이것을 수습할 기회가 있다면, 너무 늦지 않게 해달라고 신에게 간곡히 빌었다.

“생각 안 해봤어.”

토미는 거짓말을 했다.

“내 대답은 여전히 싫어, 야.”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그럼 나도 뭔가 물어봐야겠는데.”

알렉스가 얼굴을 찡그렸다.

“너 여자야?”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

토미가 불쾌한 듯 대꾸하자, 알렉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여자거나 남자거나 해? 아님… 뭐, 아무것도 아니라거나?”

“아니.”

토미가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아니, 왜 물어보는 건데?”

“그런 애들도 있어서?”

알렉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그럼 너 헤테로야?”

토미는 입을 다물고 알렉스를 쏘아보았다. 알렉스는 한쪽 입 꼬리를 올렸다.

“오, 그래. 음. 그럼 너 호모포비아야?”

“아니!”

토미는 이번에 정말 화를 냈다.

“한 번만 더 물어보면 네 멱살을 잡을 거야.”

“이상하네.”

알렉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대체 왜지?”

“알렉스, 네가 웬일로 앞자리에 앉아있구나.”

미스 메리엇이 서류를 내려놓고 교탁 앞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물리학 교사로 레포트를 무지막지하게 내주기로 유명했는데, 거기에 더불어 주일마다 쪽지시험을 봤다. 알렉스는 수요일에 그녀의 수업에서 거의 반타작을 했다.

“오, 쪽지시험에 대한 충격이 컸거든요.”

알렉스가 선량한 웃음을 지어보였으나 돌 심장으로 만들어져 있는 미스 메리엇은 이에 굉장히 냉담했다.

“모두에게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구나. 성적에 향상심을 가지는 건 좋은 일이지만 수업 시간에 요란스럽게 굴거나 졸게 되면 뒤로 내보낼 거다.”

“걱정 마세요.”

알렉스가 쾌활하게 웃으며 토미의 팔을 건드렸다. 토미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그를 피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수업 종이 울렸다.

알렉스의 말이 맞았다. 그는 떠들지도 졸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토미를 건드리거나 말을 걸지도 않았다. 그는 얌전히 거기 앉아서 필기를 하고, 교탁을 보고,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하여 미스 메리엇을 ‘퍽 흡족하게’ 했다. 그들은 그 수업 이후로도 다음다음 교시에 한 번 더 마주쳐야만 했는데, 알렉스는 그 때도 굉장히 자연스럽게 토미의 옆자리를 점유함으로써 모든 소란을 증폭시켰다. 점심시간이 지날 무렵 학교는 이미 새로운 가십거리로 떠들썩했다. 한 번도 그 소란에 오르내린 적이 없고, 그럴 일도 없어보였던 이름 하나가 그 주인공이었다. 토미 화이트헤드. 데이트. 거절. 그리고 다시, 토미 화이트헤드.

대다수의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잠깐만, 네가 말하는 게 내가 알고 있는 ‘그’ 화이트헤드야? 말했지만, 그리고 토미 본인은 잘 몰랐지만, 혹은 알았다면 조금 우쭐해하면서도 겁을 먹었겠지만, 그는 유명했다. 알렉스 스타일스 만큼 유명할 지도 모른다. 어쨌든 교사들도 학생들도 그가 누군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맹세컨대 그와 알렉스 스타일스 사이엔 조금의 접점도… 무엇 하나… 겹쳐지는 게 없고 또… 같이 무언가를 하는 것도 어색했고…… 그러나 그 토미 화이트헤드가 맞았다. 그가 알렉스 스타일스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았고, 거절했고, 알렉스가 다시 달라붙었다. 그러나 플러팅 하거나 삽질을 하는 것은 또 아니고, 그냥 옆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게 다였다. 정말 이상하고도 흥미로운 일이 아닌가? 

토미는 알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알렉스가 아침,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순간, 데이트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도 이 학교 곳곳에 자신의 이름이 무수한 학생들 입을 타고 배송될 거란 걸 말하지 않아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 학교의 생태를 잘 알고 있는 건 알렉스 스타일스 같은 난봉꾼들만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리고 맹세컨대 토미는 이제 이걸 수습할 기회는 거의 남지 않았고, 굳이 기회가 남았다고 친다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알렉스를 단호하게 거절하거나 바람을 맞히거나… 여하튼, 다소 매정하고 매몰찬 방법밖엔 없다고 생각했다. 둘 사이엔 접점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고, 죽을 때까지 없을 것이란 것을 모두의 앞에서 인식시키는 일. 토미에겐 바로 그런 이벤트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그런 일 따위를 시도할 생각은 없었다. 알렉스가 못마땅하긴 했지만, 그는 굳이 나서서 남을 헤집거나 상처 입히는 일을 하는 부류가 아니었다. 그렇다, 그게 바로 알렉스 스타일스와 토미 화이트헤드의 차이점이 아니겠는가! 가엾은 린다. 린다 오스본!

알렉스는 도시락을 들고 홀을 가로질러 토미의 옆자리로 왔다. 구석진 곳에 앉아 홀로 매점 샌드위치를 먹고 있던 토미는 그가 다가오는 걸 보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알렉스가 어깨를 붙잡아 토미를 앉혔다.

“아직 샌드위치가 남았잖아, 그렇지?”

알렉스가 윙크를 해서, 토미는 정말로 구토를 할 뻔했다… 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사실 이런 류의 최면은 알렉스가 정말 잘생겼으므로 거의 토미에게 들어먹는 일이 없었다. 윙크를 하던 애교를 부리던 알렉스가 하면 정말 괜찮게 보였다. 다만 토미는 ‘낯부끄럽지 않게 잘도 저런 짓을 하는 구나…’하고 감상에 빠질 뿐이었다.

어쨌든 토미는 다시 자리에 앉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샌드위치를 들었다. 그러나 식욕이 뚝 떨어져 더는 베어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그건 굉장히 맛이 없었다. 짐이 싸준 도시락이 있긴 했지만 토미는 그것을 열어보는 대신 매점에서 샌드위치를 사왔다. 그리고 그건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다……. 짐의 도시락을 꺼냈다면 알렉스가 오기 전에 그것을 해결하고 자리를 떴을 수도 있었고, 그럼 알렉스에게 발견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훨씬 맛있는 점심을 했겠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토미는 그렇게 생각했다.

알렉스는 자신의 도시락 통을 열었다.

“오, 샌드위치네.”

알렉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잠시, 토미는 그걸 좀 의외라고 생각했다. 알렉스는 얼핏 보기에 식당에서 비싼 밥을 사먹거나 외부로 나가 아무 레스토랑에서 무엇이든 주문할 인상으로 보였던 것이다. 도시락은, 그러니까… 좀 가정적이지 않은가. 짐처럼. 알렉스에게 그런 가족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지는 않았다. …Nevermind. 토미는 신경을 껐다.

“Hey, 토미.”

토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토미이.”

토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유만 알려달라니까.”

“어제 네 가지는 댔던 것 같은데.”

“세 가지야.”

알렉스가 정정해주었다.

“그게 그거지.”

토미가 대꾸했다.

“납득 가능한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내가 바쁜 게?”

“오, 아니, 그건 이해가 되긴 해.”

알렉스가 얼굴을 찡그렸다.

“정확히는 그 뒤의 두 개가. 넌 헤테로도 아닌데 남자랑 데이트도 안 하고…….”

“헤테로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어.”

“그럼 헤테로야?”

토미는 대답 대신 맛없는 매점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가 얼굴을 찡그렸다. 정말 맛이 없었다. 알렉스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 어쨌든 말이야. 그리고 설령 해도 나랑은 안 한다며.”

“그래.”

토미는 속이 메스꺼워지는 걸 느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그게 바로 이해가 안 되는 지점이야.”

알렉스가 자신의 샌드위치를 한 입 물곤 Hmm, 하고 만족스러운 신음소리를 냈다. 그는 싱싱한 양배추를 아삭아삭하게 씹으며 열정적으로 물었다.

“이것 봐.”

“뭘?”

토미는 알렉스 입에 든 양배추를 역겹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알렉스가 조금 낙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거기 말고, 내 전체적인 얼굴을 보라고.”

그래서 토미는 그렇게 했다.

“어때?”

“뭐가?”

“잘생겼잖아.”

토미는 전 인류에게 투자할 수 있는 혐오의 총량을 그 순간 다 소진해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 진짜 너무하다. 사진으로 찍어놓고 내가 심각해져야만 하는 순간에 꺼내보고 싶어. 이를테면 헌혈할 때.”

알렉스가 투덜거리자 토미가 매정하게 대꾸했다.

“그건 불법이야.”

“장난 아니거든!”

알렉스는 고개를 저었다.

“나라면, 그것도 솔로인 상태에서, 내 얼굴로 데이트 하자고 했을 때 이미 뻑갔을 거야.”

“잘 됐네, 너 혼자 데이트 해.”

“그게 데이트야?”

알렉스가 진심으로 물었다.

“너 내 얼굴이 싫어?”

토미는 좀 질렸다는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

“알렉스… 네가 잘생겼다고 모든 데이트 신청을 거절당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줄래.”

“내가 잘생겼다곤 생각하는구나.”

알렉스는 단순해보일 만큼 행복해졌다.

“그럼 뭐가 문제인데?”

“네가.”

토미는 매점 샌드위치를 포기하고 종이로 뭉쳤다. 거의 절반은 먹었지만, 그 이상 해낼 자신이 없었다.

“난 네가 싫어. 아니, 싫다기보다… 그러니까, 너랑 있는 게 싫어.”

“왜?”

토미는 시선을 내리깔았다가 홀을 가득 채운 학생들을 훑어보았다. 그들 중 대다수는 음식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몇 명은 분명하게 그들이 앉은 테이블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토미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난 조용히 지내고 싶어.”

‘그런 것치곤 존나 유명하던데.’

알렉스는 속으로 생각했지만 구태여 입으로 뱉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넌 클로짓게이구나.”

토미는 곤란하단 표정으로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다가 입술을 물었다.

“입 닥쳐.”

“왜?”

“아니니까.”

“아니야?”

토미는 다시 주변을 훑어보았다.

“아니야.”

토미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알렉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Whatever.”

잠시 침묵이 있었다. 홀 안은 온통 식기 부딪히는 소리와 달그닥 거리는 락앤락 통 소리로 시끄러웠다. 아이들이 낄낄거리며 떠드는 가운데 토미는 어색하게 테이블 아래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휴대폰이 울렸다. 토미는 허겁지겁 텍스트를 확인했다.

 

gib22 : 무슨 일인데? :>  12:14

 

“오, 이거 너희 부모님이 싸주신 거야?”

알렉스가 토미의 팔 아래에 놓인 짐의 도시락을 가리켰다. 토미는 홀드를 내리고 고개를 들었다. 

“어, 아마도.”

“대답이 이상한데.”

알렉스가 샌드위치의 마지막 조각을 털어 넣었다.

“그런데 왜 안 먹어?”

“매점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서.”

토미가 재빨리 둘러댔다. 알렉스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구석에 박힌 볼품없는 매점 샌드위치와 짐의 도시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너 입맛이 아주 특이하구나.”

“알 거 없잖아.”

“내가 맞춰볼게. 이거 네 아빠가 만든 거지?”

토미는 말문이 막혔다.

“왜 그렇게 생각해?”

“그야 널 데리러 오니까? 원래 그렇잖아. 부지런한 쪽이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는 거라고.”

알렉스는 마지막 조각을 완전히 삼킨 후 다시 한 번 윙크를 해보였다. 이번에 토미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거나 그 미소에 반항할 힘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으므로 그저 고개를 돌리기만 했다.

“따지자면 아빠지만 별로 아빠인 것도 아니야.”

토미가 말했다.

“오.”

알렉스는 눈치껏 되묻지 않았다. 토미는 처음으로 그것에 조금의 호감을 느꼈다.

“먹을래? 어차피 버릴 거야.”

알렉스는 탐탁지 않은 얼굴로 토미의 도시락을 바라보다가 코를 찡긋거렸다.

“아니, 네가 먹는 게 낫겠는데… 버리지 말고.”

“네 알 바는 아니지.”

토미가 무뚝뚝하게 대꾸했고, 알렉스는 그의 방어적인 태도에 다소 놀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여전하게도 그것에 대해 더 캐묻거나 에둘러 접근하지 않았다. 그는 거절당한 그 자리에 멈췄고, 입을 열지 않았고, 그리고 그건…… 짐을 생각나게 했다. 토미는 이제 완전히 메스꺼움을 느꼈다. 데이트를 거절했을 때처럼 굴었다면 좀 더 나았을 지도 모른다. 그럼 알렉스에게 샌드위치를 던질 수 있었을 텐데, 그럼 모두가 그것을 지켜보고 자신이 알렉스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려줄 수도… 있었다.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만약 알렉스가 그렇게 했다면, 신이 한 번의 기회를 내려줬던 셈이라고 토미는 분명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은 토미에게 더는 기회를 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이제 토미는 스스로 이 상황을 헤쳐 나가야만 했다.

그러나 토미가 이 주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어떤 시도라도 하려던 참에, 고맙게도, 알렉스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뭘 하면 나랑 데이트해줄래?”

토미는 마음속으로 이모지를 생각했다. :> 무슨 일이야? 오, 별 거 아니야, 전에 말한 걔한테서 데이트 신청을 받았어. 와, 뭐라고 대답했어? 거절했는데, 조건을 걸어보기로 했어. 어떤 조건?

‘더러운 놈!’ ‘오, 가엾은 린다 오스본! 임신했대?’ ‘그렇대!’

“네가 린다 오스본에게 사과하면.”

토미가 말했다.

“너랑 데이트할게.”

그 순간, 토미는 방금 전까지 생글거리던 알렉스의 표정이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무거운 침묵이 있었고, 모두의 웃음소리가 멀어졌고, 달그닥거리는 홀의 잡음과 작은 비명소리와 매점 앞에서 웅성거리는 군중의 웅성거림이 천천히 세계 뒤편으로, 아주 천천히 밀려났다. 그들은 잠시 진공상태에 도달했다가, 이내 순식간에 세계 한가운데로 되돌아 왔다.

“…좋아, 토미.”

알렉스 스타일스가 대답했다.

“약속한 거야. 무르는 순간 이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건 너를 박살내버릴 테니까.”

그런 후, 알렉스는 미소를 지었다. 어딘지 일그러진 것 같은 웃음이었고, 토미는 대체 그가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토미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Chatting Dialog

gib22 : 무슨 일인데? :>   12:14

Tommy0612 : 어… 그냥 좀.   17:08

Tommy0612 : 하지만 일단 다 끝났어.   17:08

gib22 : 심각한 일이었어?   17:15

Tommy0612 : 음.   17:18

Tommy0612 : 잘 모르겠는데.   17:18

Tommy0612 : 몇 가지 점을 제외하면 그럭저럭?   17:18

gib22 : 어떤 점?   17:18

Tommy0612 : 학교 최고의 가십꾼들이 한 판을 벌였고, 난 사이에 껴서 구경꾼들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한데다가, 그 싸움이 끝나자마자 공개적으로 데이트 신청을 받고, 그 뒤에 곧장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멋지게… 토했다는 점?   17:18

gib22 : oh.   17:20

gib22 : are you okay?   17:20

.

gib22 : are you really okay, Tommy?   17:22

.
.
'no.'
.
.

Tommy0612 : yes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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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이 종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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